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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8 10:41

H-MART에서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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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한하다. 딸은 나이가 들어가며 엄마를 닮아간다. 사춘기 시절 엄마가 다그칠때면 “난 엄마처럼 안 살거야” 외쳐댔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이 엄마를 너무도 닮았다. 아이들을 야단치며, 거친 말을 내뱉을 때 스스로 놀란다. 그렇게 듣기 싫은 소리를 내가 아이들에게 쓰고 있다니? <H 마트에서 울다> 책 이름이 관심을 끌었다. 일주일이면 한번쯤은 들르는 마트가 제목이어서 그렇고, ‘울기는 왜 우나?’ 그래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제목보다 긴 여운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책의 저자 미셸 정미 자우너는 혼혈인이다. 엄마는 한국인, 그리고 이탈리아계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그녀는 사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소속의 싱어송라이터이다. 그러기에 글의 흐름은 감성을 더욱 자극하는 듯 하다. 소설인 줄 알았는데 수필형식으로 쓰여져 있다. 왜 작가는 H-마트에 가면 울게 되는 것일까? 바로 엄마가 해 주던 한국 음식에 대한 강한 향수 때문이다.

 

 작가는 엄마를 말한다. 엄마는 내가 완벽한 한국인 식성을 갖도록 키웠다. 말하자면 훌륭한 음식 앞에서 경건해지고, 먹는 행위에서 정서적 의미를 찾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음식 하나하나에 대한 선호가 분명했다. 김치는 알맞게 익어 적당히 새콤한 맛이 나야 했고, 삼겹살은 바싹 구운 것이어야 했다. 찌개나 전골은 입안이 델 정도로 뜨겁지 않으면 차라리 안먹느니만 못했다. 음식을 미리 장만하는 것은 말도 안되었고 우리는 그날그날 당기는 음식을 바로바로 만들어 먹었다. 음식은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고리 모양의 달콤한 짱구과자를 열손가락에 끼고 흔들어대던 모습, 한국 포도를 먹을 때 껍질에서 알맹이를 쪽 빨아 씨를 훅 뱉던 법을 가르쳐 주던 엄마. “그 나무에 올라가지 말라고, 엄마가 몇 번이나 말했어” 울라치면 “울긴 왜울어! 엄마가 죽은 것도 아닌데” “다리 떨지마 복 나가” 우리가 자라며 흔히 듣던 엄마의 잔소리였다. 작가는 H 마트에 갈때마다 엄마에 음성, 체취가 묻어나 울고 또 운다. 결국 책 내용은 H 마트를 둘러보다가 야채나 식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점점 잊혀져가는 엄마의 잔상을 끄집어 내려는 애절함이 주를 이룬다.

 

 혼혈인의 가장 큰 과제는 정체성을 찾는 성장 과정이다. 엄마는 성장해 가는 딸에게 애정어린 간섭(?)을 하기 시작한다. 곱게 자란 딸이 혹시라도 곁길로 갈까봐 머리 모양부터, 걸음걸이, 말투, 옷매무새까지 세세히 참견을 하신다. 딸은 그 모든것이 통제로 느끼게 되고 갈등은 증폭되어 진다. 아마 모녀의 그림은 대동소이 한 것 같다. 미셀은 공교롭게도 투병하는 엄마의 모습속에서 엄마의 뿌리를 찾아 가면서 본인의 정체성도 찾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를 돌보기 위해 고향으로 떠난다. 간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엄마라고 해도. 무엇보다 아픈 엄마에게 한국 음식을 하나도 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절망한다. 미셸은 자신의 사랑을 음식으로 표현하리라 다짐한다. 엄마가 한입이라도 더 드실 수 있도록 한식을 배우려 애썼다. 엄마가 어릴때 해주던 음식을 흉내 내고자 노력하고 기억을 더듬어 요리하는 모습이 애절하다.

 

 엄마의 병세가 중해지면서 비로소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직 엄마를 위해서. 다행히 엄마에게 면사포를 쓴 모습을 보여 주게 된다. <H 마트에서 울다>는 이미 고인이 된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성장과정에서 부딪혔던 엄마와의 갈등, 엄마의 병수발을 들며 겪었던 엄마를 위한 책인 것 같다. 엄마와의 일상을 담담하게 때로는 애절하게 써내려 갔다. 슬프지만 결코 슬프지 않은 듯 하면서도 책을 덮으면 가슴이 먹먹해 지는 느낌이다. 숨을 거둔 엄마에게 수의를 입히는 과정은 가슴이 아린 현실이 된다.

 

 책의 표지에는 “엄마가 이제 내 곁에 없는데 내가 한국인일 수 있을까?” 그 답이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라고 쓰여있다. 엄마의 당부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라” 미소가 번진다. 음식과 음악은 음으로 시작한다. 음식에 엄마가 있고, 오늘도 마트를 돌며 엄마의 냄새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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