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7.09.28 17:08

누나, 가지마!

조회 수 5513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이별.png

 

 KBSUHD 다큐멘터리 순례를 방영했다. 흐르는 강물조차 얼어붙은 영하 30, 혹독한 추위가 찾아온 인도 라다크 깍아 지른 협곡 사이로 수행자들의 행렬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외줄 하나에 온 몸을 의지한 채 순례 길을 걷는 수행자들의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애처롭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순례의 길이고 우리 모두는 그 길을 걷는 순례자.”라는 명제 아래 묵묵히 걸음을 내딛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은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펼쳐지는 영상은 얄미울 정도로 아름답다. 아니 경이롭다.

 

 제 1부는 안녕, 나의 소녀시절이여로 막을 연다. 인도 최북단, 히말라야 산골 소녀 쏘남 왕모가 가난 때문에 출가의 길을 택하는 이야기이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사는 라다크 사람들은 8개월 이상 지속되는 영하 20도의 긴 겨울 때문에 1년에 한 번 밖에 농사를 짓지 못한다. 대부분 보리와 가축을 통해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아간다. 열여섯 소녀, ‘쏘남 왕모에게는 부모와 다섯 형제, 20마리가 삶의 전부이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세 명의 동생들은 도시에서 가정부와 수행자로 살아가고 있다.

 

 ‘쏘남 왕모역시 도시에서 가정부 일을 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양을 키우며 살아가지만 가난 말고도 그녀를 위협하는 존재 때문에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언제 나타나 양들을 죽일지 모르는 야생동물 설표’(눈 표범)때문이다. ‘설표로부터 양을 지키기 위해 긴장과 두려움 속에 밤을 지새우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애처롭다. 천혜의 자연 속을 뛰노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사이로 해맑게 웃는 소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열여섯이다. 가난으로 인해 선택의 여지가 없던 쏘남 왕모는 다른 세 형제들처럼 출가의 길을 택한다. 떠나기 전날, ‘쏘남 왕모는 어린 남동생을 품에 안고 다독이며 잠을 청한다. 누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동생이 하는 말 누나, 가지마!” 남매가 안고 울먹이는 장면에서 울음이 터져버렸다. 그러면서 누이 생각이 스쳐갔다.

 

 이별은 항상 아프다. 나는 초등학교를 5곳이나 다녔다. 경찰인 아버지의 전근을 따라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한다지만 끈끈하게 사귀어놓은 친구들과 헤어지는 일은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군인 트럭 앞자리에 앉아 친구들을 향해 마냥 흔들어대던 양손. 통신시설이 전무하던 그 시절에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항상 눈물 자욱이 흥건했다. 이별에 능숙한 삶을 살았지만 무엇보다 목회하던 교회 성도들에게 이별을 고하고 미국으로 떠나오던 시간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아픔의 장면이다. 그러기에 한국에 가면 그분들은 반드시 만나 서로 소식을 묻는다.

 

 나에게도 누이가 있다. 누이는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장의 자리를 감당해야 했다. 혼기가 찼지만 누나는 결혼을 미루고 생업에 매어 달렸다. 소녀의 감성을 지닌, 사교성이 뛰어나고, 억척스러울 만큼 근면한 성품의 누이는 그렇게 나이를 먹어갔다. 누이는 항상 그렇게 우리랑 영원히 살줄로만 알았다.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혼기를 훨씬 넘어서 혼담이 오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가족들을 앉혀놓고 누이는 결혼발표를 했다.

 

 누이와 나는 4년 동안 자취를 했었다. 전근을 자주 다니던 아버지는 내가 6학년이 되자 중학생이던 누이를 설득하여 자취를 시키셨다. 그렇게 중 3이 될 때까지. 뒤돌아보니 누이가 참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지만 여중생인 누이가 장애를 가진 남동생을 챙기며 살아야 했으니 얼마나 고충이 컸을까? 그러다가 20대 초반에 아버지가 떠나갔을 때 누이의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누이는 <대왕코너> 매장 직원으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곳을 전전하며 가족들을 부양했다. 온갖 고충을 감내하며 일을 한 누이 덕분에 우리 가정은 흔들림 없이 버텨낼 수 있었다.

 

 누이가 결혼 발표를 하고 난 날 밤, 나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수도 없이 혼잣말을 되뇌었다. “누나, 가지마!” 영상을 보며 쏘남 왕모의 동생들이 얼마나 아픈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을 생각하며 애잔한 마음이 번져왔다.

 

 떠나간 누나를 손꼽아 기다리며 살아야 할 어린 가슴을 누가 달래줄까? 그 아픈 과정을 잘 견뎌내며 단단하고 굳건히 자라나기를 희망할 뿐이다.


  1. No Image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고교 시절에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은 박계형의 소설이었다. 그녀의 소설은 우선 단순하다. 그러면서도 책을 읽다가 실눈을 뜨고 ‘뜨락’을 바라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간혹 야한 장면이 여과 없이 표현되어 당황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사춘기 ...
    Views2597
    Read More
  2. No Image

    개 팔자의 격상

    동물 중에 사람과 가장 가까운 존재가 개일 것이다. 개는 어디에나 있다. 내가 어릴때에도 동네 곳곳에 개가 있었다. 그 시절에 개는 정말 개 취급을 당했다. 개집도 허술했고, 있다고해도 지저분하기 이를데 없었다. 개가 먹는 것은 밥상에서 남은 음식찌꺼...
    Views2921
    Read More
  3. No Image

    눈 뜨면 이리도 좋은 세상

    감사의 달이다. 한해를 돌아보며 그동안 누려왔던 은혜를 되새김해 본다.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 분들을 생각한다. 지난 3년의 세월동안 우리는 코로나에 휩싸여 살아야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균이 번지며 일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제 거추장스럽던...
    Views3098
    Read More
  4. No Image

    등대

    항구마다 바다를 마주한 아름다운 등대가 있다. 등대는 가야 할 길을 몰라 방황하는 배와 비행기에 큰 도움을 주며, 때로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도 한다. 등대 빛을 알아볼 수 있는 최대 거리를 ‘광달거리’라 한다. 한국에서 광달거리가 큰...
    Views2783
    Read More
  5. 외다리 떡장수

    최영민(48)은 다리 하나가 없다. 어릴 적에는 부모에게 버려진 아픔이 있다. 열살이 되던 해, 하교 길에 횡단 보도를 건너다 버스에 치어 왼쪽 다리를 잃었다. 사고 후 그는 너무 절망해서 집안에 틀어박혀 살았다. 그러다가 매일 도서관을 찾는 일이 일상이 ...
    Views3251
    Read More
  6. 가을 창가에서

    사람마다 계절의 감각을 달리 느낀다. 여성들은 봄의 감성에 손쉽게 사로잡힌다. 나는 가을을 탄다. 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면 원인 모를 외로움이 살며시 고개를 내어민다.홍릉의 가로수 마로니에 잎이 흐드러지게 날리는 것을 보며 사춘기를 넘어...
    Views3531
    Read More
  7. 천국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다

    태초에는 숫자가 없었다. 그래서 열손가락을 사용했고, 셈을 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다가 오늘날 통용되는 아라비아 숫자까지 발전을 해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각자에게 번호가 주어진다. 키가 작은 아이부터 숫자가 주어졌다. 어릴 때부터 키가 작았던...
    Views3924
    Read More
  8. 남편의 위상

    “결혼 안하는 남자”라는 영상을 보았다. 소위 전문직에 종사하는 엘리트 총각들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도 결혼을 안 하는 현대의 자화상을 담아낸 영상물이었다. 인물, 신장, 집안, 학력 모두 상당한 수준에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거기다가 전문...
    Views4092
    Read More
  9. 내게 한사람이 있습니다

    우연히 차를 몰다가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 때문에 미소를 짓기도 하고 입을 ‘삐죽’여 보기도 한다. 나를 행복하게 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내 눈에서 눈물이 나게 했던 야속한 한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은 안 좋은 생각은 다 걷어 ...
    Views4128
    Read More
  10. 보람과 아쉬움

    매년 가을이면 기대하던 밀알의 밤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열일을 젖혀놓고 매년 참석하는 분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밀알의 밤 준비는 행사 3개월 전에 출연자를 결정하는 기획에 들어가고, 19년째, 40일 금식을 이어가며 준비하게 된다. 힘은 들지만 마음...
    Views3974
    Read More
  11. No Image

    마음 속 어린아이

    사람은 누구나 궁금함에서 삶을 시작한다. 그것을 호기심이라고 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좁다. 사람의 즐거움은 다양하다. 우선 오감을 자극시켜 주는 즐거움이 있다. 사람의 인지능력은 시력을 통해 가동되는 경향이 높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고 싶...
    Views4320
    Read More
  12. No Image

    이태백

    칼럼 제목을 보고 옛날 당나라의 풍류 시인 “이태백”을 떠올렸다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의 약자이다. 희망에 부풀어 살아야 할 청년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선 지 오래이다. 실로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Views4395
    Read More
  13. 행복의 샘, 밀알의 밤

    미국 역사상 최대의 재벌은 록펠러이다. 그는 만고의 노력 끝에 억만 장자가 되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보통 돈만 많아도 행복할 것이라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55세에 그는 불치병을 만나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형 선고를 받게 ...
    Views4393
    Read More
  14. No Image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인생사에 사랑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 사랑으로 태어나고 사랑으로 사람은 성장한다. 우연히 “회장님댁 사람들”이라는 영상을 보았다. 장장 22년을 방영한 인기 드라마 <전원일기>를 재구성하는 케이블방송이었다. 마침 <쎄시봉>팀들이 출연...
    Views4519
    Read More
  15. No Image

    밥상의 주인은 밥이다

    팬데믹을 지나며 놀라는 것은 물가가 너무 올랐다는 것이다. 차 운행이 필수인 미국에서 개솔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인들을 만나 식사를 할라치면 음식 가격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런치 스페셜?’ 옛날이야기이다. 저렴한 스페셜이...
    Views4326
    Read More
  16. No Image

    철학자의 인생론

    한때 ‘철학계의 삼총사’로 불리우며 다양한 철학논리를 펼친 학자들이 있다. 김형석(연대), 김태길(서울대), 안병욱 교수(숭실대)이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 하지 않는가? 나야 대학 초년생때 <철학개론>마저도 고루하게 생각했던 장본인...
    Views4637
    Read More
  17. No Image

    아미쉬(Amish) 사람들

    사람들은 유명하고 소중한 것이 가까이에 있으면 그 가치를 모르는 것 같다. 사실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데 말이다. ‘필라델피아’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이 있다. 영화 “록키”에서 주인공이 뛰어올라 두 손을 높이 들고 환호하...
    Views4791
    Read More
  18. 장애인들의 행복한 축제

    여름이 다가오면 장애인들과 장애아동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바로 “동부 사랑의 캠프”이다. 어떤 때는 밀알선교센터 달력이 다 찢기워 나가고 7월이 펼쳐져 있는 진풍경도 연출된다. 하지만 지난 3년 멈춰서야만 하였다. 끔찍한 팬데...
    Views4568
    Read More
  19. No Image

    그 강 건너편

    사람마다 살아가며 잊지 못할 인연이 있다. 내 생애에 꼽으라면 단연 천정웅 목사님이다. 나를 오늘의 나로 가꾸어 준 멘토이다. 그분은 정말 건강했다. 20대 초반, 교회 청년부에서 ‘아야진’(동해 휴전선 근처 마을)으로 하기수련회를 갔던 때였...
    Views4458
    Read More
  20. No Image

    눈은 알고 있다

    사람에게는 오감이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이 감각이 살아있어야 사람은 살맛이 난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농인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수화, 구화를 통하여 청각 마비의 핸디캡을 커버하며 살아간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명적인 후유...
    Views456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