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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초보부터 시작한다. 처음은 다 어설프고 우수꽝스러워 보이지만 인생은 다 초보부터 시작하였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초보」하면 생각나는 것이 운전이다. 장애인이기에 운전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했는데 누가 “한국도 장애인들을 위해 운전면허 시험장에 장애인 차량을 구비해 놓았다.”는 귀띰을 해 주면서 운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더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이야 핸드폰만 가지고도 정보를 검색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시스템이 개발되지 않은 때였다. 찾고 찾다보니 장애인들이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유일한 운전학원이 강서구 김포공항 근처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살던 중곡동에서 강서구 운전학원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일단 버스를 타고 청량리에 내려 1호선 전철을 탄다. 시청 앞에서 다시 버스를 이용하여 강서구 운전학원에 도착하면 족히 세 시간은 넘게 걸렸다. 하지만 일주일에 세 번씩 운전을 배우러 가는 그때 너무도 행복했다. 성심을 다한 끝에 강서면허 시험장에서 운전면허증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1991년이다. 낙방을 거듭하다가 드디어 합격하여 너무 좋아서 운전면허증만 들여다보고 걷다가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쳤다는 일화가 나올 정도로 그 당시 운전면허 획득은 삶의 쾌거였다. 세상에 모든 것을 가진 정도의 환희가 밀려왔다.

 

 문제는 차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운전을 너무도 하고 싶었다. 매일 운전면허증을 가슴에 품고 다니고, 나중에는 강대상에 올려놓고 기도를 드렸다. 그러다가 드디어 차가 생겼다. 중고 싸구려 차였지만 처음 운전을 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장애가 있는 오른쪽 다리를 집고 힘겹게 다니던 곳을 운전을 하고 다니니 얼마나 편리하던지! 거의 매일 차를 몰고 다녔다. 아내는 겁도 없이 초보운전인 내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 마냥 좋아했다. 하마터면 큰 사고를 당할뻔 한적도 있지만 열심히 차를 몰았다. 교인들과 아내는 차 뒤편에 “초보운전” 표지판을 달고 다닐 것을 권유하였다. 하지만 그런 표지판을 달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했다. 처음부터 누가 뭐라든 내 페이스대로 고집스럽게 운전을 했다.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둘러보니 한창 “마이카”시대가 시작되어서인지 의외로 많은 초보운전자들이 희한한 표지판을 달고 운전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운전하고 있음” “삼천리 금수강산 무엇이 급하리 목숨은 단하나 밖에 없음” “3시간째 직진 중”부터 “뽀짝 부트지 마세요” “언덕길 시동 잘 꺼짐” “어린이가 타고 있어요” “좌우 백밀러 전혀 안보임” “R아서 P해요”라는 표지판이 있는가 하면 아기 고양이 그림을 붙이고는 “뒤에서 화내지 말아주세요” “왕초보, 밥하고 나왔어요” “남편이 아가와 타고 있어요. 우리 남편 화나면 개됩니다”에 “어제 면허 땄음”까지 가관이었다. 그중에서도 잊혀지지 않은 문구가 바로 “미치겄쥬? 나는 환장하겄슈!”이다. 앞에서 ‘알짱’거려 화가 치밀다가도 그 문구를 보며 웃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어느새 운전면허를 딴 지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미국에 와서 다시 운전면허증을 따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그 고비를 넘어 이제는 운전이 생활화되어 있다. 하지만 나에게도 초보시절이 있었다. 사이드 밀러를 볼라치면 차가 이리저리 쏠리고 바짝 긴장하여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던 때가 말이다. 사람들은 능숙해지면 처음 순간을 잊어버린다. 마치 태어나면서 운전을 터득한 것처럼 착각을 하고 산다. 아니다. 누구든 초보부터 시작한다. 그 초보 시절에 기본기를 단단히 익혀야 한다. 방향등(깜빡이)를 안 넣고 차선을 변경하거나 회전을 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운전대만 잡으면 폭군이 되는 사람도 있다.

 

 초보 운전을 잘못 익혀서이다. 처음이 중요하다. 바로 배워야 한다. 아무리 오랜 세월 동안 운전을 했다하더라도 과신은 금물이며 나와 타인의 안전을 배려하는 운전술이 필요하다. 잘하는 운전보다는 “안전한 운전”이 더 중요하다. 운전뿐이랴! 이런 말이 있다. “운전과 목회는 영원한 프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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