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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사에 사랑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 사랑으로 태어나고 사랑으로 사람은 성장한다. 우연히 “회장님댁 사람들”이라는 영상을 보았다. 장장 22년을 방영한 인기 드라마 <전원일기>를 재구성하는 케이블방송이었다. 마침 <쎄시봉>팀들이 출연하여 눈길을 끌었다. 조영남이 부른 “사랑없인 난 못살아요”가 가슴에 파고 들었다. “♬ 밤 깊으면 너무 조용해 책 덮으면 너무 쓸쓸해. 불을 끄면 너무 외로워 누가 내 곁에 있으면 좋겠네. 이세상 사랑없이 어이 살수있나요 다른사람 몰라도 사랑없인 난 못 살아요” 그렇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수가 없다.

 

 누구에게나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아련한 사랑이 있다. 때로는 짝사랑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중 3때 처음 사랑을 만났다. 한 학년 아래. 유난히 키가 크고 눈이 동그랗던 아이. 말투와 애교가 도가 넘지 않게 적당하던 그 아이가 내게로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우연이 필연이 되어 우리는 양평 곳곳을 누비며 풋풋한 사랑을 나누었다. 기차가 달리는 정겨운 모습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남한 강변 숲속에서, 흰눈이 덮힌 하얀 들판에서 가슴을 가득 채워갔다.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 같던 우리의 사랑은 내가 서울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희미해져 갔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통이 발달되어 있는때가 아니어서일까? 거리가 멀어지며 마음도 멀어지는 것인지? 그렇게 그 아이와의 인연은 일단락되어 갔다.

 

 그 아이는 내가 보고 싶을때면 대왕코너에서 일하던 누이를 만나곤 갔다는 것을 나중에야 들을 수 있었다. 고교시절, 보다 성숙하고 진중한 여고생을 만나며 그 아이의 모습은 지워져갔다. 이후 신학생이 된 이후에는 사랑의 비중을 이성에 두는것이 주님께 송구스러운 일처럼 느껴져 연애에는 초연했던 것 같다. 어쩌다 이성을 사귀어도 결혼을 전제하다보니 어린 날처럼 마냥 풋풋한 교제를 하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결국은 사모상이었다. 초점을 여기에 맞추다보니 대학시절부터 허물없이 지내던 여사친도 점점 멀어져갔다.

 

 인간사 모를일이다. 어느날, 전도사의 눈에 주일학교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자매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도 평범한 은행원이었다. 주일학교 회계일을 맡기게 되다보니 필요한 물품을 함께 구입하는 횟수가 늘어가고 평시에 발견하지 못했던 매력에 빨려들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우리 진지하게 만나보자!”는 내 제의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이내 조근조근 교제가 이어졌다. 하지만 결혼얘기가 나오며 자매는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였다. 내 장애 때문이었을까? 자존심이 강한 나는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하여 이기적인 이별을 통보했다.

 

 대학원 졸업여행을 제주도로 떠났다. 3일째 일정은 제주도 관광의 정점인 한라산 등반에 나섰다.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망각하고 과감하게 도전을 하였지만 등정 한시간만에 나는 포기를 선언하였다. 등산은 무리였던 것이다. 그때 산을 오르던 여교역자 반에 한 자매도 나와 뜻을 함께하게 되었다. 다른 학우들과 교수들은 등정을 이어갔지만 우리는 방향을 바꾸어 주춤거리며 하산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라산 등정을 포기한 패잔병(?)으로 하산을 하는 처지였지만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지고 우리는 이후 연인이 되었다.

 

 참 많이도 쏘다녔다. 방배동 카페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 주기도 하고, 남산을 오르며 서울 전경을 감상하기도 했다. 비 오는 날 임진각으로 향하던 기차여행은 지금 생각해도 운치가 넘쳤다. 하지만 그것도 나의 마지막 사랑은 아니었다. 결혼적령기에 와있었기에 나는 그 자매에게 청혼을 했다. 며칠 후, 자매는 노골적으로 집안에서 나를 받아들이기를 부담스러워 한다고 전해왔다.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그렇게 장애는 내 결혼의 장애물로 다가서 있었다.

 

 그러다가 새로운 자매를 만나 찐한 연애를 하고 부부가 되었다. 내 장애를 개의치 않고 한 남자로 받아준 지금의 아내가 그래서 고맙다.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풀어놓을 만큼 세월이 깊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져 간다는 것이다. 아픈 사랑의 상처는 새로운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다. 혹시 그런 분이 있다면 새로운 사랑을 꿈꾸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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