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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차를 몰다가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 때문에 미소를 짓기도 하고 입을 ‘삐죽’여 보기도 한다. 나를 행복하게 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내 눈에서 눈물이 나게 했던 야속한 한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은 안 좋은 생각은 다 걷어 가는가 보다. 지금 이 순간에 서서 생각 해 보면 다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 사람이 있었기에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 사람이 있었기에 아파하다가 철이 들었다. 그러기에 그 한사람, 한사람이 너무도 소중해 보인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장 많이 찾았던 곳은 명동 사거리에 있는 “케익파라”였다. 명동 한복판에 있는 제과점이었는데 2층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똑같이 눈 두 개, 코 하나, 입하나 인데 생긴 모양이 다 다르고 표정이 각각인지 신기하기만 했다. 신앙의 눈이 뜨이고 믿음이 새로워지면서 그 사람들을 지으신 하나님에 대해 경외심을 품게 되었다.

 

 청년 시절. “케익파라”에서 하루 종일 기다린 한사람이 있었다. 함께 시를 나누고 음악을 듣고 명동 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마냥 걸었던 한사람이 있었다. 중앙 극장 뒷골목에서 ‘튀김’을 먹으며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던 한사람이 있었다. 만나면 헤어지기 싫고, 헤어져서 돌아가는 길에 늘 바래다주고 싶은 한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핸드폰이란 편리한 기계가 있지만 그때는 오직 공중전화만이 우리를 이어주는 통신 수단이었다. 전화기 앞에 서면 손가락이 그 사람에게 자꾸 쏠려갔다. 마음이 기쁠 때도 다이얼을 돌렸고, 마음이 울적 할 때도 전화를 걸었다. 

 

 어지러웠던 내 방을 치워놓고 한 번 초대해 보고 싶은 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병들어 아파할 때, 병문안을 와 줬음 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우연히 길을 걷다 눈이 마주치면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드는 한 사람이 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아무런 이유 없이 날을 만들어 선물을 주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기다렸다가 가끔은 놀란 얼굴을 짓게 하고픈 한 사람이 있다. 눈물을 흘리며 보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영화 얘기처럼 배신한 걸 후회하는 한 남자에게 다시 돌아와 줬음 하는 한 사람이 있다. 다시 시간을 돌려서 그때로 갈 수 있다면 절대 헤어지고 싶지 않은 한 사람이 있다.

 

 눈 내리는 날, 2층 커피숍 문턱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렇게 기다리고픈 한 사람이 있다. 복잡한 주말, 늦은 오후 많은 사람들 중 ‘혹시나 있을까?’ 찾아보고픈 한 사람이 있다. 내 목숨을 백번 주어도 아깝지 않은 한 사람이 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내 자존심을 버릴 만큼의 한 사람이 있다. 늘 새로운 모습만을 보여주고픈 한 사람이 있다. 여름바다보다는 겨울바다를 같이 가고픈 한 사람이 있다. 하얀 세상에서‥ 하얀 옷을 입고 하얗고 깨끗한 얘기만을 꺼내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밤을 꼬박 같이 새워보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길을 걷다 만나면 “미안해”란 말을 해주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내 친구들처럼 가끔 가다 ‘툭~ 툭~’ 때려주기도 하고 장난으로 윽박질러 보고도 싶은 한 사람이 있다. 노래 가사처럼 언제나 내 마음에 와 닿는 한 사람이 있다. 숨김없이 편하게 모든 걸 다 말해 주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내게도 한 사람이 있다. 하얀 눈을 좋아하구. 아가의 미소를 좋아 하구. 장난을 좋아 하구. 솔직함을 좋아하구. 마음이 여리구. 상처도 잘 받는 그런 한사람이 있다. 지쳐있구. 상처받아있구. 외로워하구.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그런 느낌을 주는 그 사람에게 내가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더운 여름날의 작은 그늘이 되고 싶었다. 뺨가를 스치는 미풍이길 바랬고, 새벽 풀잎에 달리는 더 작은 이슬이고 싶다. 위로이고 싶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로, 소슬한 바람을 타고 억새풀 숲속에서 깊은 여운으로 다가오는 그런 한사람이 있다. 그 한사람과 가을을 보고 싶다. 가을은 갈이란다. ‘금방 간다’는 뜻인 듯 싶다. 막간의 커튼을 열고, 잠시 보였다가 아쉽게 사라져가는 가을을 만나기는 싫다. 누구나의 가슴에는 한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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