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3.03.24 14:47

도랑

조회 수 568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서종(양평)에서 나는 3년동안 초등학교를 다녔다. 지제, 강상, 양평초등학교를 거쳐 아버지의 인사이동을 따라 산골 깊이 서종초등학교로 전학을 해야 했다. 지금은 카페촌이 들어서고 골짜기마다 분위기 좋은 별장이 즐비한 곳이 되었지만 당시는 촌(村)이었다. 이왕이면 학교가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하면 좋으련만 아버지는 항상 지소 근처로 정하셨다. 서종은 문호리가 주를 이루는데 상, 하로 나뉜다. 우리 집은 상문호리(무내미)에, 학교는 하문호리에 있었다. 부실한 다리로 등하교를 하는 것은 어린 나에게 고된 일이었다. 집을 나서 오솔길을 걷다가 한길로 접어들고, 교회가 자리한 산등성이를 돌아 한참을 걷다보면 학교 정문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나 익숙한 시골학교의 정경이 펼쳐졌다. 정문을 통과하여 운동장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철봉대, 평행봉, 그네등 놀이터가 자리하고 저만치 중앙에 교무실과 교실이 가지런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서종초등학교가 아름다운 것은 북한강변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은 강바람 때문에 몹시도 춥고 괴롭지만 봄, 여름, 가을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수업을 하다가 창을 내다보면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강을 건너가는 나룻배와 파아란 강과 하늘이 조화를 이루며 정겹게 다가왔다. 건너편이 마석이었으니까 아마 5일 장을 보러 가는 행렬인듯했다.

 

 우리 동네는 뒷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옹기종기 집들이 자리하며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상상력을 키워준 곳은 자그마한 도랑이었다.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도랑물이 차올라 찰랑거렸고 봄에는 올챙이들이 알에서 깨어나는 모양을 볼수있었다. 여름에는 송사리 떼의 향연이 눈길을 끌었다. 옆집은 재관이네 집이었고 도랑을 저만치 두고 중간에 우물이 자리했다. 그때 우물은 아낙네들의 빨래터였고, 스트레스 해소장이었으며 동네 소식이 오가는 근원지였다. 우물은 동네 길목에 자리하였기에 오가는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눔과 동시에 사람들의 동태가 파악되는 지점이었다.

 

 도랑은 개구쟁이들의 풍성한 놀이터였다. 장마가 지나면 고기를 잡는다고 저마다 족대를 들고나와 도랑 풀숲을 뒤졌다. 제법 수입이 좋았다. 미꾸라지와 붕어가 주를 이루었지만 때로는 피라미와 제법 큰 고기들이 잡히며 모두의 탄성을 자아냈다. 아마 강에서 고기들이 물결에 밀려 상류로 헤엄을 쳐서 올라온 모양이었다. 무더운 여름. 선풍기도 없던 시절.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열대야에는 숨이 턱턱 막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때 도랑은 우리에게 피난처였다. 전기도 없던 시절이라 알몸으로 도랑에 뛰어들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킥킥’거리며 도랑에서 몸을 식히고 우물물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면 꿀잠을 잘 수 있었다.

 

 가끔 걸터앉아 도랑을 들여다보면 온갖 광경이 물속에 투영되었다. 오가는 물고기들, 개구리들의 귀여운 헤엄질, 물방개와 풍뎅이, 소금쟁이의 신기한 몸짓, 그리고 거울처럼 비추어지는 하늘과 구름의 향연, 곁에 선 대추나무의 자태까지 그렇게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며 한여름의 향연은 절정을 이루었다. 어린 가슴에 차곡차곡 모든 것이 채워져 갔고 이제 그 소중한 추억을 조금씩 들추어내며 글을 쓰고 있다. 도랑을 거슬러 시냇물을 지나쳐 올라가면 정배리 뚝방이 나타나는데 자그마한 저수지처럼 물이 고여있었다. 물론 천수답을 하던 당시 논과 밭에 비상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수영을 제법 할 줄 아는 우리에게는 노천 수영장이었다. 

 

   20대 초반 여름. 추억이 그리워 서종을 찾았다. 힘겹게 건너던 다리, 시냇물은 왜 그리 작아보이던지? 크게만 보이던 초등학교는 실로 손바닥만 했다. 어렸기에 커보였던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도랑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민물 매운탕이 먹고 싶어 그때 사귀었던 친구들과 도랑을 뒤지며 밤고기를 잡다가 ‘대행’이가 뱀에 물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음날 병원을 찾았을 때 대행의 다리는 두배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미안하기도하고 기가막혀 서로를 바라보며 웃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자그마한 도랑은 어린 나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안겨준 원천이었다. 다리에 앉아 도랑에 발을 담그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엮어내던 그 시절로 단 한번만 돌아가고 싶다.


  1. No Image

    등대

    항구마다 바다를 마주한 아름다운 등대가 있다. 등대는 가야 할 길을 몰라 방황하는 배와 비행기에 큰 도움을 주며, 때로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도 한다. 등대 빛을 알아볼 수 있는 최대 거리를 ‘광달거리’라 한다. 한국에서 광달거리가 큰...
    Views3983
    Read More
  2. No Image

    결혼하고는 완전 다른 사람이예요!

    결혼 3년 차에 접어든 새댁이라면 새댁이 내뱉은 말이다. 연애할 때는 그렇게 친절하고 매너가 좋았는데. 그래서 ‘이 남자하고 살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결혼해 살아보니 “말짱 꽝”이다. 연애 할 때는 이벤트로 깜짝깜짝 놀라...
    Views3984
    Read More
  3. 윤슬 =2024년 첫 칼럼=

    아버지는 낚시를 즐기셨다. 공직생활의 여유가 생길때마다 도구를 챙겨 강을 찾았다. 지금처럼 세련된 낚시가 아닌 미끼를 끼워 힘껏 강으로 던져놓고 신호를 기다리는 “방울낚시”였다. 고기가 물리면 방울이 세차게 울린다. 아버지는 잽싸게 낚...
    Views4010
    Read More
  4. No Image

    개 팔자의 격상

    동물 중에 사람과 가장 가까운 존재가 개일 것이다. 개는 어디에나 있다. 내가 어릴때에도 동네 곳곳에 개가 있었다. 그 시절에 개는 정말 개 취급을 당했다. 개집도 허술했고, 있다고해도 지저분하기 이를데 없었다. 개가 먹는 것은 밥상에서 남은 음식찌꺼...
    Views4062
    Read More
  5. No Image

    이제, 희망을 노래하자!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펼쳐질 미지의 세계에 대해 기대감을 가진다. 더 나아지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연초에 쏟아지는 예측은 사람들의 희망을 앗아간다. 무엇보다 예민한 것은 경제전망이다. 꼭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
    Views4065
    Read More
  6. No Image

    H-MART에서 울다

    희한하다. 딸은 나이가 들어가며 엄마를 닮아간다. 사춘기 시절 엄마가 다그칠때면 “난 엄마처럼 안 살거야” 외쳐댔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이 엄마를 너무도 닮았다. 아이들을 야단치며, 거친 말을 내뱉을 때 스스로 놀란다. 그렇게 듣기 싫은 ...
    Views4229
    Read More
  7. No Image

    눈 뜨면 이리도 좋은 세상

    감사의 달이다. 한해를 돌아보며 그동안 누려왔던 은혜를 되새김해 본다.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 분들을 생각한다. 지난 3년의 세월동안 우리는 코로나에 휩싸여 살아야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균이 번지며 일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제 거추장스럽던...
    Views4339
    Read More
  8. 외다리 떡장수

    최영민(48)은 다리 하나가 없다. 어릴 적에는 부모에게 버려진 아픔이 있다. 열살이 되던 해, 하교 길에 횡단 보도를 건너다 버스에 치어 왼쪽 다리를 잃었다. 사고 후 그는 너무 절망해서 집안에 틀어박혀 살았다. 그러다가 매일 도서관을 찾는 일이 일상이 ...
    Views4585
    Read More
  9. 가을 창가에서

    사람마다 계절의 감각을 달리 느낀다. 여성들은 봄의 감성에 손쉽게 사로잡힌다. 나는 가을을 탄다. 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면 원인 모를 외로움이 살며시 고개를 내어민다.홍릉의 가로수 마로니에 잎이 흐드러지게 날리는 것을 보며 사춘기를 넘어...
    Views4709
    Read More
  10. 천국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다

    태초에는 숫자가 없었다. 그래서 열손가락을 사용했고, 셈을 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다가 오늘날 통용되는 아라비아 숫자까지 발전을 해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각자에게 번호가 주어진다. 키가 작은 아이부터 숫자가 주어졌다. 어릴 때부터 키가 작았던...
    Views5130
    Read More
  11. 남편의 위상

    “결혼 안하는 남자”라는 영상을 보았다. 소위 전문직에 종사하는 엘리트 총각들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도 결혼을 안 하는 현대의 자화상을 담아낸 영상물이었다. 인물, 신장, 집안, 학력 모두 상당한 수준에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거기다가 전문...
    Views5328
    Read More
  12. 보람과 아쉬움

    매년 가을이면 기대하던 밀알의 밤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열일을 젖혀놓고 매년 참석하는 분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밀알의 밤 준비는 행사 3개월 전에 출연자를 결정하는 기획에 들어가고, 19년째, 40일 금식을 이어가며 준비하게 된다. 힘은 들지만 마음...
    Views5438
    Read More
  13. 내게 한사람이 있습니다

    우연히 차를 몰다가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 때문에 미소를 짓기도 하고 입을 ‘삐죽’여 보기도 한다. 나를 행복하게 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내 눈에서 눈물이 나게 했던 야속한 한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은 안 좋은 생각은 다 걷어 ...
    Views5440
    Read More
  14. No Image

    인생의 평형수

    만물은 항상 평형을 유지하려는 본성을 지닌다. 때로 외부로부터 충격이 가해지며 평형상태가 무너질 때가 있는데 이 찰나에 미미하나마 다시 평형상태로 되돌아가려는 힘을 복원력이라고 한다. 복원력이 가장 중요하게 적용되는 것이 물위에 배이다. 급격한 ...
    Views5452
    Read More
  15. No Image

    마음 속 어린아이

    사람은 누구나 궁금함에서 삶을 시작한다. 그것을 호기심이라고 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좁다. 사람의 즐거움은 다양하다. 우선 오감을 자극시켜 주는 즐거움이 있다. 사람의 인지능력은 시력을 통해 가동되는 경향이 높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고 싶...
    Views5493
    Read More
  16. No Image

    나는 멋진 사람

    대부분 핸드폰을 열면 가족사진이나 풍경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독특하게 내 폰은 배경이 나다. 언젠가 가족모임을 가지면서 독사진을 찍었는데 내 웃는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이다. 며칠 전, 지인과 대화 중에 내 핸드폰을 보며 “특이하시네요. 핸드폰 ...
    Views5578
    Read More
  17. No Image

    미치겄쥬? 나는 환장하겄슈!

    인생은 초보부터 시작한다. 처음은 다 어설프고 우수꽝스러워 보이지만 인생은 다 초보부터 시작하였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초보」하면 생각나는 것이 운전이다. 장애인이기에 운전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했는데 누가 “한국도 장애인들...
    Views5610
    Read More
  18. No Image

    밥상의 주인은 밥이다

    팬데믹을 지나며 놀라는 것은 물가가 너무 올랐다는 것이다. 차 운행이 필수인 미국에서 개솔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인들을 만나 식사를 할라치면 음식 가격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런치 스페셜?’ 옛날이야기이다. 저렴한 스페셜이...
    Views5613
    Read More
  19. No Image

    생일이 뭐길래?

    평범한 주부의 고백이다. 며칠 전에 생일을 지나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고 했다. 하필 전날이 작은 딸의 생일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을 위해 미역국을 끓이고 딸 친구들을 초대하여 자그마한 파티도 열어주었다. 즐겁고도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Views5630
    Read More
  20. 행복의 샘, 밀알의 밤

    미국 역사상 최대의 재벌은 록펠러이다. 그는 만고의 노력 끝에 억만 장자가 되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보통 돈만 많아도 행복할 것이라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55세에 그는 불치병을 만나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형 선고를 받게 ...
    Views563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