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8.06.22 14:16

야학 선생

조회 수 4424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야학.jpg

 

 

  20대 초반 그러니까 신학대학 2학년 때였다. 같은 교회에서 사역하는 김건영 전도사께서 주일 낮 예배 후 할 말이 있다.”며 다가왔다. 우리는 비어 있는 유년주일학교 예배 실 뒤편 탁자에 마주 앉았다. 용건은 나에게 야학 선생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매일 사당동까지(당시 우리 집은 청량리) 학교에 다니기도 버거운데 야학까지 담당하기에는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전도사님의 너무도 간곡한 부탁이라 거절하기도 그렇고 생각 할 여유를 달라고 했다.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전도사님의 부탁에 응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야학이 열리는 곳은 월곡동이었다. 드디어 야학 첫 수업을 위해 출발하였다. 청량리에서 전철을 타고 성북역까지 갔다. 그곳에서 버스를 다시 타고 몇 정류장을 지나 내렸다. 당시 월곡동은 개발되기 전이라 허허벌판에 허술한 집들과 공장들이 드문드문 서있는 풍경이었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그것도 캄캄한 밤중에 지정한 공장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드디어 높은 회색 담이 처진 공장에 당도했다. 기다리고 있던 선배 야학 선생의 인도를 따라 2층 교실로 들어섰다.

 

  자그마한 공간, 머리위에 켜져 있는 형광등 불빛, 그리고 책상에 앉아 있는 30여명의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공원들이었고 대부분 여공들이었다. 이내 소개를 받고 단에 섰다. 모두다 이미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았다. “제 이름은 이재철 입니다. 지금 신학대학에 다니고 있는 신학생이구요. 오늘부터 여러분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가 끝나자 그들은 박수로 환대 해 주었고, 웃으며 자기들끼리 무어라 속삭였다.

 

  당시는 70년대 후반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기에 시골에서 많은 10대들이 무작정 상경을 하는 때였다. 운이 좋아 친척이 있는 친구들은 보증을 서주어 공장에 취직을 했다. 일은 엄청나게 하면서도 대부분 낮은 임금을 받고 공장에서 일하는 그들의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공부에 대한 열의가 되살아나게 되었고, 그들의 장래를 위해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마련해 준 공간이 야간학교였다. 검정고시 과정을 공부시키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당시 야간학교에는 나이가 든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당시 나는 23세였다. 학생들은 대부분 16살에서 20살까지였고 어떤 학생은 나의 누이 나이 정도까지 보이기도 했다. 20대 초반의 내 외모는 꽤나 매력이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거기다 음악을 가르쳤으니 학생들의 인기는 얼마안가 나에게 쏠려 버렸다. 1주일에 단 한번 찾아가는 야간학교였지만 행복했다. 처음 야간학교를 찾아갈 때 코에 스며들던 월곡동 골목의 풋풋한 풀 향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음악을 가르치다보면 그들은 이론보다는 노래를 부르는 실기시간을 더 좋아했다.

 

  가끔 기타를 들고 가서 풍금과 맞춰 함께 노래를 불렀다. 분위기가 고조되면 기타를 치며 내가 독창을 했다. 음악시간은 그들의 삶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기쁨의 시간이었다. 음악책에 나와 있는 노래를 부르며 그들은 모두 아련한 꿈을 꾸고 있었다. 이제 세월이 지나 기억이 흐릿해 졌지만 많은 시간들을 그들과 함께 지내며 꿈을 심었다. 소설 상록수(작가 심훈)의 주인공 채영신의 심정으로 대화 속에서도 소망어린 단어를 많이 구사한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야학선생은 그해 가을, 10 · 26 사건이 터져 시국이 어수선해지면서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사람이 누리는 즐거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는 즐거움이고, 다른 하나는 배우는 즐거움이다. 그들은 노는 즐거움 대신 배우는 즐거움을 택했던 사람들이었다. 공부를 가르치는 동안 그들 중에는 눈으로 말하는 학생도 있었고, 노래로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어느 하늘아래에서 누군가의 어머니로 살아가고 있을 그들의 모습이 문득 그리워진다.

 


  1. 아버지를 만나야 한다 5/7/2015

    누구에게나 아버지가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느낌과 생각이 다르다. 어머니는 편하다. 아니 만만하다. 아버지는 어렵다. 아니 걸끄럽다. 한 사나이를 상담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아버지는 타인처럼 느껴져 힘이 들다.”는 고백이었다...
    Views69285
    Read More
  2. 아버지의 마음 12/8/2012

    누구에게나 아버지가 있다. 어머니의 사랑은 살갑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가늠하기가 어렵다. 사춘기 때에는 감히 아버지에게 ‘이유 없는 반항’을 해 보기도 하였다. 나이가 들어가며 저만치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아버지는 항상 나를 바라보고...
    Views63517
    Read More
  3. 아버지의 시선 11/13/15

    나의 아버지는 엄한 분이였고 항상 어려웠다. 동리 분들과 어울리실 때는 퍽 다정다감한 것 같은데 자식들 앞에서는 무표정이셨다. 그것이 사춘기시절에는 못 마땅했다. 이유 없는 반항을 하며 대들어보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셨다. 나이가 들어가며...
    Views72767
    Read More
  4. 아빠 죽지마 7/3/2015

    “사랑하는 우리 가족 중에 건강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잠도 좁은 방에서 다 같이 자야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으니까요.” 뇌병변 장애 1급으로 누워계신 아버지, 힘든 간병생활로 얻은 허...
    Views69541
    Read More
  5. No Image

    아빠, 내 몸이 할머니 같아

    장애인사역을 하면서 가장 가슴이 아플 때는 희귀병을 앓는 장애인을 만날 때이다. 병명도 원인도 모른 채 고통당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와 가족들은 커다란 멍에를 지고 가는 듯 한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2개의 희귀질병 앓고 있는 김새봄 양. 대학입...
    Views32713
    Read More
  6. 아빠가 너무 불쌍해요

    새해가 시작되었다. 부부가 행복하려면 배우자의 어린 시절을 깊이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 가정사역을 할 때에 만난 부부이야기이다. 처음 시작하는 즈음에 ‘배우자의 어린 시절 이해하기’ 숙제를 주었다. 마침 그 주간에 대구에서 시어머니 칠순...
    Views10665
    Read More
  7. 아쉬움 2/20/2015

    지난 1월 호주에서 열렸던 AFC(아시안 컵 축구대회)에서 한국은 아쉽게도 준우승에 머물렀다. 나는 한국 축구가 아시아에서는 최강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55년 동안 아시안 컵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 갔다. 금번 대회에 우리나라는 &...
    Views65963
    Read More
  8. 아우토반을 달리며 5/1/2013

    유럽에 왔다. 꿈에 그리던 독일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토록 오고 싶었던 독일을 가슴에 품던 날, 정겨운 봄비가 나를 반겼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독일 RE 기차 편을 이용해 카셀로 향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정경은 미국과는 전혀 달랐다....
    Views78053
    Read More
  9. 아이가 귀한 세상

    우리가 어릴 때는 아이들만 보였다. 어디를 가든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다. 한 반에 60명이 넘는 학생이 오밀조밀 앉아 수업을 들어야만 하였다. 복도를 지날 때면 서로를 비집고 지나갈 정도였다. 그리 경제적으로 넉넉할 때가 아니어서 대부분 행색은 초라했...
    Views37640
    Read More
  10. 아이를 깨우는 엄마의 소리

    새날이 밝았다. 창가로 눈부시게 쏟아지는 아침햇살이 싱그럽다. 단잠으로 쉼을 누리고 맞이하는 새아침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시간이다. 그런데 많은 가정들이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등교해야 할 아이를 잠자리에서 깨...
    Views56486
    Read More
  11. 아이스케키

    한 여름 뙤약볕이 따갑다. 목이 말라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마시다가 문득 어린 시절에 추억이 떠올랐다. 나는 초등학교 때 시골에서 살았다. 날씨가 더워지면 냇가로 멱(수영)을 감으러 가서 더위를 식혔다. 배가 고프면 주로 감자나 옥수수를 먹었다...
    Views7904
    Read More
  12. 아픔까지 사랑해야 한다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한다. 진정 삶이란 그렇게 풀어내기 힘든 과제일까?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별 어려움 없이 다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만 힘들고 꼬이는 생을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들어가 보면 나보다 더 허덕거리며 살고 ...
    Views25911
    Read More
  13. 안동 영명학교  4/29/2011

    날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집회를 인도하며 분주하게 한국에서의 일정을 감당하고 있다. 8일(금) 그리운 한 가족을 향해 안동으로 길을 재촉했다. 한국 밀알 총단장 성경선 목사님은 나를 안동까지 친절하게 라이드 해 주었다. 내가 안동으로 향하는 이유는...
    Views78785
    Read More
  14. 알아차리기  8/4/2011

    사람들은 정보를 얻기 위해 많은 일들을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신문을 보거나 인터넷을 시작한다. “아니!” 감탄사를 연발하며 새로운 소식에 반응을 한다. 남성들은 선천적으로 뉴스를 너무도 좋아한다. 모임에 갔을때에 정보를 많이 담고 있는...
    Views70646
    Read More
  15. 애타는 “엘렌”의 편지

    엘렌은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한국명은 “김광숙”이다. 그녀의 생모는 시각장애를 가진 딸을 키우기가 버거웠던지 어느 날 마켓에 버려두고 사라져 버렸다. 엘렌은 고아원으로 인도되어 살게 되었고, 4살 때 미국 볼티모어에...
    Views60392
    Read More
  16. 야구 몰라요!

    매우 친숙한 목소리, 걸쭉한 입담, 야구인다운 외모. 수십 년간 야구해설가로 명성을 날리며 모두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남자. 그는 야구해설을 하다가 종종 외쳤다. “야구, 몰라요!” 상상을 초월하는 역전극이 벌어질 때나 경기흐름이 예상을 벗...
    Views61057
    Read More
  17. 야매 부부?

    지금은 오로지 장애인사역(밀알)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목회를 하면서 가정 사역을 하며 많은 부부를 치유했다. 결혼을 하고 마냥 행복했다. 먼저는 외롭지 않아서 좋았고 어여쁘고 착한 아내를 만났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허니문이...
    Views32011
    Read More
  18. 야학 선생

    20대 초반 그러니까 신학대학 2학년 때였다. 같은 교회에서 사역하는 김건영 전도사께서 주일 낮 예배 후 “할 말이 있다.”며 다가왔다. 우리는 비어 있는 유년주일학교 예배 실 뒤편 탁자에 마주 앉았다. 용건은 나에게 “야학 선생을 해 달...
    Views44246
    Read More
  19. 약한자여, 그대 이름은 목사라!

    이런 이야기가 있다. 미국에서 한인 목회를 하는 어느 목사님이 선교지 방문차 태국에 가게 되었다. 현지에서 선교사님을 따라 시내 관광을 하는 중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한다. 가까이 가보니 코끼리가 쇼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코...
    Views55644
    Read More
  20. 얄미운 12월의 손짓 12/18/2012

    12월이다. 세월이 왜 이리 빠른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이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우연히 집에 들른 사촌형이 “지금은 세월이 안가지? 나이 들어봐라. 세월이 점점 빨라진단다.”고 말할때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무료한 날들이 많았기에 어서 세...
    Views7605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