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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03:35

낯설다 12/6/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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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서 자란 나에게 서울은 별천지였다. 어쩌다 서울에 올라치면 준비과정이 복잡하였다. 시골촌놈이 서울에 온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30분이면 오는 서울을 그때는 버스로 두 시간이 더 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성능도 시원치 않은 버스로 달리다보니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나보다. 지금은 두 시간이 별것이 아닌데 어린 나이에는 차멀미를 이겨내며 타고 가는 시외버스가 참 괴로운 여정이었다. 때로는 기차로 서울에 왔는데 그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오직 완행기차밖에 없는 시절이었기에 서울로 오는 역명을 일일이 다 외우고 있을 정도였다.

서울은 화려하였다. 무엇보다 청량리역에서 화장실에 들렀다가 위에 있는 줄을 잡아다녔더니 물이 쏟아지며 배설물을 씻어내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였다. 역전을 나서서 광장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내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다. 먼저는 엄청난 인파였고 오가는 수많은 차량 때문이었다. 서울을 잘 아는 누이는 길을 건너는데 두려움이 없었지만 나는 길을 건너가는 것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결국 누이는 내 손을 낚아챘다. 누이에 잔소리를 들어가며 간신히 길을 건너면 우리가 가야하는 곳으로 향하는 버스를 또 타야만 하였다.

서울에 첫발을 디디며 나는 서울을 품었다. “언젠가는 서울에 오리라” 그것이 어린 소년의 작은 꿈이었다. 그 꿈은 고등학교를 서울로 진학하며 이루어졌다. 오랜 경찰생활을 하시던 아버지는 동료들이 많은 청량리 경찰서 앞에 ‘구멍가게’를 여셨다. 제법 운치 있는 길목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가게에서 우리 가족의 서울생활은 시작되었다. 밤에 곤한 잠을 자다가도 담배를 사려는 아저씨들이 철문을 두드려서 잠을 깨어야 하는 애로사항도 있었지만 사모하던 서울에 살게 되었다는 설레임에 마냥 행복하였다. 문제는 지리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대왕코너가 있는 청량리 로터리에 서면 사방팔방으로 길이 뚫려서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밤이 되면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는 네온사인이 사춘기에 접어든 내 가슴에 꿈을 주었다.

신기함과 낯설음이 겹쳐지는 서울생활은 또 다른 신비의 경험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서울은 나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서울체질이었다. 아니 시골보다는 도시가 더 좋았다. 그렇게 친숙해진 서울에서 꼬박 30년을 살았다. 워낙 사람들 사귀기를 좋아하고 학교 다닐 때부터 오지랖이 넓었던 나는 서울지리에 대해서는 택시기사보다 더 자세히 아는 경지에 이르렀다. 아마 나처럼 서울을 좋아했던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 결정적인 예로 부목사 생활을 하다가 지방에서 청빙을 받았는데 “서울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내 삶에 서울은 가장 중심부였고 나의 청춘이 묻어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40대 중반, 30년을 살았던 서울을 뒤로하고 미국행을 결심하였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날아가던 그때에 너무도 아쉬웠던 것은 서울과의 이별이었다. 로스엔젤레스를 거쳐 필라델피아에서 밀알선교단 사역을 감당해온지 어느새 8년의 세월이 흘렀다. 때로는 향수병에 힘든 시간도 보냈지만 어렵게 시간을 내어 한국방문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8년 만에 다시 찾아온 서울. 너무도 그립던 서울. 그냥 그대로 있었으면 하는 기대감은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입성하면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얄밉게도 서울은 너무도 변해있었다. 분명히 나는 한국 사람이다. 서울을 30년이나 누벼왔건만 서울은 나를 너무도 낯설게 맞이해 주었다. 중 3때 본격적으로 만났던 서울은 자신을 버리고 미국에서 살다온 나에게 “너 없이도 나는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하는 듯이 너무도 발전해 버렸다. 서울에 살던 때는 자가용이 있었기에 전혀 탈일이 없었던 전철과 버스를 타고 앉아 서울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중이다. 그런데 옛날 내가 친숙해 있던 서울이 아니다. 세련되어 보이기는 하는데 가슴에 담았던 그 모습이 다 사라져 버려 너무 아쉽다. 아니 낯설고 얄밉다. 마치 처음 미국 땅에 도착하여 겪어야했던 낯설음을 그렇게 친숙했던 서울에서 느끼고 있다. 그렇게 슬쩍 서울과 ‘스킨쉽’을 하고는 이제 필라델피아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모든 것이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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