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1783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인생의 짐.jpg

 

 

  인생이 가볍다는 말은 없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를수록 생의 무게는 버겁기 그지없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이 마냥 즐거웠다. 어쩌다 먹는 짜장면, 별것도 아닌 음식이 우리를 흥분시켰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은 항상 정겨웠다. 저녁을 든든히 먹은 후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동네 마당으로 나가면 웬지모를 설레임이 가슴에 밀려왔다. TV, 흥미를 유발할 변변한 도구도 없던 그 시절에는 자연이 우리의 품이었다. 달이 밝은 때는 달빛을 벗 삼아,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는 캄캄함을 받아들이며 다채로운 놀이를 즐겼다. 어깨동무를 하고 온 동네를 돌며 아이들을 모으고, 남녀 구별없이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던 그 시절이 내어밀면 손에 잡힐듯하다.

 

  나는 경찰 아버지를 둔 이유 하나로 초등학교를 5곳이나 옮겨 다녔다. 정들면 헤어지던 그런 환경 속에서도 가슴의 정겨움을 잃지 않은 것은 항상 나무와 들과 산을 쏘다니며 뒹굴었던 덕분인 것 같다. 세월의 흐름 속에 사람은 언젠가, 어디에서든 다시 만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까맣게 잊혀졌던 그 누군가를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마주 칠 때에 감격이 인생길에 찾아오게 된다. 그러면서 그 얼굴에 삶의 무게가 내려앉아 있음도 발견한다. 성숙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낯선 느낌이다.

 

  누구나 등에 견디기 힘든 짐을 지고 살아간다. 그 무게를 감당하다보니 자신이 변해가는 것조차 감지하지 못하며 나이가 들어간다. 짐이 없는 인생은 로망일 뿐이다. 등에 짐이 있기에 세상을 바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버겁기도 하지만 등에 있는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게 되는 것이다. 이제 와 돌아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해준 귀한 선물이었다. 등에 짐이 없었다면 사랑을 몰랐을 것이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도 알게 되었다. 등의 짐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다. 성숙의 경지로 끌어가기도 한다. 내 등에 짐으로 겸손과 소박함의 기쁨을 깨달았다.

 

  평생을 아프리카 선교에 헌신했던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어느 모임에서 자신의 숨겨놓았던 가정사를 밝혔다. 어느날, 집을 나가버린 방탕한 아들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 사실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크나큰 아픔이요, 고통이었다. 하지만 리빙스턴의 연설은 사람들의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를 거역하고 세상 길을 가버린 그 아들을 생각하면서 그는 늘 남들 앞에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어려움을 당하거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외면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아프리카 선교에 최선봉에 섰던 그에게도 아프고 무거운 짐이 있었던 것이다.

 

  배를 운항할 때에 반드시 밑바닥에 채워 넣는 물이 있다. 이것을 평형수’(ballast water)라고 한다. '평형수'는 외부의 조류나 파도에 의해 배가 심하게 흔들릴 때 복원력을 발휘해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평형수를 넉넉히 채운 배는 외부 충격으로 선체가 기울어도 원 상태로 재빨리 복원되지만. 평형수가 부족하면 배가 중심을 잃고 뒤집어지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다. 인생은 먼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항해 도중 험한 조류와 파도를 만나거나 가족 중에 사고를 당하거나 사업을 하다 부도를 맞기도 한다. 그런 일로 내 삶의 배가 전복되지 않으려면 미리 평형수를 채워두어야 한다. 나에게 기쁨의 '평형수'가 충분하다면 고난의 위기에서 삶을 추스릴 수 있을 것이다.

 

  내 등에 짐이 있는 것이 당장은 힘들고 괴로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를 나되게 한 소중한 멍에임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살아갈 힘은 외부에서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것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우리 삶에 크고 작은 근심거리들이 당장은 우리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만 어쩌면 내 인생을 지탱해 주고 균형을 잡아주는 선박 평형수일 수도 있다. 따라서 내 등에 짐이 커다란 은총임을 깨달아야 한다.

 

 

 

 

 

 


  1. 누군들 자장가가 그립지 않으리 3/18/2013

    그는 시인이다. 필체가 날카롭고 예리하다. 서른이 훨씬 넘어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태중에 아이를 갖게 된다. 아내가 임신 6주차에 접어들었을 때에 ‘양귀비 씨앗만하다’는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듣게 된다....
    Views75131
    Read More
  2. 누구를 만나는가? 8/16/2014

    사람은 만남을 통해 성장하고 행복을 만들어 간다.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나 인생이 표류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시원치 않은 사람인데 만남을 통해 삶이 도약하는 경우도 있다. 만남은 참 신비롭다. 사람이 짐승을 만나면 짐승이 되고 신을 만나면 신...
    Views67545
    Read More
  3. No Image

    누구나 장애인

    초청받은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예배 후 친교를 시작하면 하나둘 내 곁에 모여든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목사님, 저도 장애인입니다.”이다. 일단 거부감이 들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장애가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누군가...
    Views5777
    Read More
  4. 누구나 가슴에는 자(尺)가 들어있다

    사람들은 다 자신이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의롭고 정직하게 산다고 자부한다. 사건과 사람을 만나며 아주 예리하고 현란한 말로 결론을 내린다. 왜 그럴까? 성정과정부터 생겨난 자신도 모르는 자(尺) 때문이다. ‘왜 저 사람은 매사에 저렇게 ...
    Views40249
    Read More
  5. 누가 알리요, 부모의 심정을!

    “장애인 아들 감금 폭행한 비정(非情)의 목사 부부” 언젠가 한국에서 보도된 신문 기사 제목이다. 목회자가 장애를 가진 아들을 감금하고 폭행까지 하다니! 그것도 10년 동안이나. “발에 긴 쇠사슬을 묶어 도망을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rdq...
    Views61883
    Read More
  6. 누가 ‘욕’을 아름답다 하는가?

    사람은 만나면 말을 한다. 조용히, 어떨 때는 큰 소리로, 부드럽게 말을 할 때도 있지만 거칠고 성난 파도가 치듯 말을 하기도 한다. 말 중에 해독이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욕’이다. 세상을 살면서 욕 한마디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나는 비기...
    Views7689
    Read More
  7. 노인의 3苦

    나이가 들어가니 어르신들을 만나면 묻는 것이 연세이다. 어떤 분은 “얼마 안 먹었습니다.”하고는 고령의 나이를 드러낸다. 분명히 나이를 물었는데 대답은 태어난 연도를 대답하는 분도 계시다. 머리로 계산을 하려면 복잡한데 말이다. 어제도 9...
    Views56672
    Read More
  8. 노년의 행복

    요사이 노년을 나이로 나누려는 것은 촌스러운(?)일이다. 워낙 건강한 분들이 많아 노인이라는 말을 사용하기가 송구스럽다. 굳이 인생을 계절로 표현하자면 늦가을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늙는 것이 서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삶의 수확을 거두는 시기가 노...
    Views29272
    Read More
  9. 노년의 아름다움 12/2/2013

    2013년의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다. 숨 가쁘게 달려 오다보니 어느새 한해의 끝자락이 보인다. 이제 곧 ‘2014년’이 친한 척을 하며 다가오겠지. 오랜 세월 청춘을 바쳐 몸담았던 직장을 정년퇴직한 분의 넋두리이다. 퇴직을 하자마자 소홀했던 ...
    Views65294
    Read More
  10. 넌 날 사랑하기는 하니?

    “넌 나를 사랑하니?”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남편은 가끔 섭섭함을 이렇게 토로했다. “사랑하지. 아니면 왜 같이 살겠어?” 남편은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했다. “같이 산다고 사랑하는 건가?” 나도 남편에게 섭섭함...
    Views56571
    Read More
  11. No Image

    너는 자유다!

    오래전 “Who am I ?”라는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에 “정글만리”를 펴낸 조정래 선생이 출연하였다. 노구의 비해 낭랑한 목소리와 소년의 미소가 정겹게 다가왔다. 강연 내내 푸근하게 떠올라 있는 미소와 너그러움이 참 편안하게 느껴...
    Views6012
    Read More
  12. 냄새

    누구나 아침에 눈을 뜨면 냄새를 느끼며 하루를 시작한다. 날씨, 온도, 집안분위기를 냄새로 확인한다. 저녁 무렵 주방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를 맡으며 식탁의 기쁨을 기대한다. 아내는 음식솜씨가 좋아 움직이는 소리만 나도 기대가 된다. 나는 계절을 냄새...
    Views33158
    Read More
  13. 내적치유의 효험

    상처가 상처인지도 모르고 살던 때가 있었다.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판국에 내면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 되어가고 삶의 여유가 생기면서 사람들에게는 참 평안을 누리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자연스럽게 찾아 왔다. 환경이 ...
    Views64875
    Read More
  14. 내게 한사람이 있습니다

    우연히 차를 몰다가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 때문에 미소를 짓기도 하고 입을 ‘삐죽’여 보기도 한다. 나를 행복하게 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내 눈에서 눈물이 나게 했던 야속한 한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은 안 좋은 생각은 다 걷어 ...
    Views5440
    Read More
  15. 내가 그리는 가을 그림

    사계절이 주는 의미는 다양하다. 철이 없을 때는 기온의 차이로만 느꼈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계절의 감각이 새롭게 다가온다. 여자는 봄에 예민하고 남자는 가을을 타는가보다. 봄의 의미는 신비이다. 여자는 참으로 신비한 존재이다. 사춘기 시절에 접어들며...
    Views58389
    Read More
  16. 내가 3일간 눈을 뜰 수 있다면 2/7/2015

    장애를 가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하나님은 공평하셔서 그 장애를 다른 방법으로 대처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해당이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두 눈을 볼 수도 없고, 듣지도 못하며, 언어구사도 안 되는 삼중고(三重苦)의 고통을 안...
    Views69451
    Read More
  17. 내 옷을 벗으면

    사람들은 모두 옷을 입는다. 아침에 샤워를 마치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무슨 옷을 입고 나갈까?’를 고민한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옷에 예민하다. 옷 입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과 추구하는 삶의 방향을 엿볼 수 있다....
    Views50102
    Read More
  18. 내 심장을 쏴라! 9/9/2013

    한 소설가가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정신병원에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영감에 사로잡힌다.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하다 할지라도 정신병원 이야기를 추측으로만 쓸 수는 없었다. 그녀는 정신병원에 직접 들어갈 획기적인 발상을 하게 된다. 작가는 선...
    Views63768
    Read More
  19. 내 목소리가 들려?

    사람들은 각자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각자의 지문이 다르듯이 사람들은 독특한 목소리를 소유하며 살고 있다. 나는 20대 초반, 교회 ‘어린이 성가대’를 지휘한 경험이 있다. 음악적인 재능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지만 지휘는 ‘문외...
    Views59374
    Read More
  20.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인생이 가볍다는 말은 없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를수록 생의 무게는 버겁기 그지없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이 마냥 즐거웠다. 어쩌다 먹는 짜장면, 별것도 아닌 음식이 우리를 흥분시켰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은 항상 정겨웠다. 저녁을 든든히 먹은 후 ...
    Views1783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