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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스친다. 그렇게도 무덥던 날들이 이렇게 맥없이 꺾일 줄이야. 새벽에 창문을 열면 신선한 바람이 상쾌함을 안겨 준다. 그렇게 영적인 시간을 가지며 하루를 연다. 9월을 기다린 적이 있었다. 아마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젊은 날이었을게다. ‘조금만 시원한 바람이 불면 얼마나 좋을까?’ 열망하며 가을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제는 9월이 무섭다. 뒤따라오는 10월이 있기 때문일까? 세월이 흐르는 것에 둔감하던 때가 있었다. 아니 ‘어서 세월이 흘러주기를’ 고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세월의 흐름 앞에 숨을 쉬기조차 힘들어 지는 나이에 왔다.

나는 철저히 원고설교를 한다. 덕분에 40년 가까운 세월의 설교원고가 고스란히 서재에 꽂혀있다. 내가 자라난 홍릉교회(제기동)에서 전도사 임명을 받고 주일학교를 지도하며 어린이들에게 외치던 설교원고를 들추어본다. 유치하긴 하지만 흥미 있고 진지한 복음이 담겨져 있다. 마루 바닦으로 된 교육관에서 두 눈을 ‘똘망’거리며 설교를 듣던 아이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헤아려보니 그 아이들이 이제는 40대 후반에 엄마, 아빠다. 신학대학 4학년에 올라가며 중고등부 전도사로 임명을 받았다. 주일학교처럼 과도한 제스처를 쓰지 않아도 학생들은 영적으로 통했다. 1980년 말 나는 성숙을 위해 내가 자라던 본 교회를 떠났다.

전혀 생소한 교회에서 청년 대학생들을 가르치며 20대가 무르 익어갔고 31살 목사안수를 받던 그날은 통곡에 가까운 감격이 있었다. 30대 중반에 그렇게 원했던 담임목회가 시작되었다. 첫사랑이었기에 강단에 설 때마다 행복하고 설레이는 심정으로 목회를 했다. 무서운 것도 없었고 눈을 뜨면 밀려오는 목회비전이 나를 날마다 새롭게 했다. 노회에서 만나는 선배 목사님들을 보면서도 내가 젊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 채 목회에 심취했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설교원고에 시선이 머물렀다. 나이가 들어야 알 수 있는 것들을 마치 체험한 것처럼 설교한 내용을 보면서 등골이 시려왔다.

그러고 보면 목사들은 설교로 인생을 미리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 그 내용을 보니 어설프기 그지없다. 허구가 많이 드러난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어 먹었다. 젊은 날의 열정은 어설픔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아쉽지만 2, 30년 전에 상상으로 외치던 말씀을 체험하며 증거하는 특권이 주어지기에 소중하다. 나이를 먹은 만큼 영성과 설교도 깊어지는 것을 보며 위로를 받고 있다. 세월은 많은 것을 가져가지만 나이의 숫자만큼 성숙한 삶을 살도록 도우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가을을 맞는다.

49살이 되던 해에 오랜 지기인 친구 목사와 식사를 하며 읊조렸다. “쉰(50)이 되는 것은 정말 너무 싫다.” 그런데 어느새 50대가 깊어간다. 한여름에 내리쬐던 뙤약볕이 강렬했는지 이제 초록이 지쳐간다.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이 나는 가을을 탄다. 습기가 전혀 없는 가을 공기는 마음을 신선하게 해주는 유익도 있지만 가슴 한켠을 서늘하게 만드는 심술쟁이이다. 두꺼워지는 옷만큼 가을기운이 깊은 상념에 잠기게 한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추억을 더듬으며 가을을 숨 쉰다.

우연히 우리 시대 감성 가수인 박인희의 “세월아!”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그때 이런 노래가 있었던가!’하며 가사에 빠져 들었다. “♬ 가는 줄 모르게 가버린 시절 그 날의 고운 꿈 어디로 갔나 내 손을 잡으며 이야기하던 그 사람 지금은 어디로 갔나 세월아 너만 가지 사람은 왜 데려가니 세월아 너만 가지 사람은 왜 데려가니 노을진 창가에 마주 앉아서 못다한 말들이 너무 많았지 영원히 못 잊을 그리움 두고 그 사람 지금은 어디로 갔나♪”

그러고 보면 세월의 흐름 속에 곁을 스쳐간 사람들이 많기도 많았다. 떠나보낸 사람, 뇌리에서 잊혀진 사람들. 세월은 오늘도 흐른다. 세월아 조금 쉬었다오지 그러니?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어 섰는데 세월은 고장도 없나보다. “세월아 너만 가지 사람은 왜 데려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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