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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인이다. 필체가 날카롭고 예리하다. 서른이 훨씬 넘어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태중에 아이를 갖게 된다. 아내가 임신 6주차에 접어들었을 때에 ‘양귀비 씨앗만하다’는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듣게 된다. 그날 사내는 전율한다. 한 여자를 사랑했고, 그 여자를 곁에 두었고, 그 곁에서 생겨난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시인은 수많은 갈등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한다. 이 무수한 고심의 날들은 텁텁한 재생 종이에 묵묵히 출산 일기로 묶였다.

사랑하는 한 여인, 그리고 그 몸속에 자라나는 아기. 이런 모든 것들이 꽃밭처럼 그의 책에 담겨갔다. 아이를 갖고 낳는 40주간 시인은 ‘마치 제 자신의 태어남을 다시 경험한 듯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아가가 태어나고 이제는 자장가로 그의 싯귀는 무르익어갔다. 그의 글을 읽다가 불현듯 어리디 어린 시절에 엄마가 불러주던 ‘자장가’가 떠올랐다. “자장자장 우리 아기, 우리 아기 잘도 잔다. 꼬꼬닭아 울지 마라, 우리 아기 잠을 깰라. 멍멍개야 짖지 마라, 우리 아가 잠을 깰라.” 내가 커가면서 “아가”는 “아들”로 바뀌었다. 반복되는 어조에 자장가와 편안한 엄마의 냄새가 나를 금방 잠들게 했다.

“The World Sings Goodnight”이라는 음반이 있다. 짧으면서도 각 나라 자장가의 원형이 되는 33개의 곡들이 오롯이 담겨있는 특이한 음반이다. 언어는 다르지만 마음의 고요와 평온을 느끼게 해 준다.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의 자장가도 들어있다. ‘우리 아기 착한 아기 소록소록 잠들라’로 시작하는 ‘김대현’이 작곡한 자장가다. 세상 모든 자장가들이 그렇듯 이 음반에 실린 곡들도 단순한 리듬에 실린 다정다감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집시의 자장가 가사에는 고단한 삶의 흔적이 배어난다. ‘귀여운 아가야, 어서 잠들 거라. 그리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내일 아침 일찍 먼 길을 떠나야 한단다.’ 브라질은 ‘네 엄마는 시장에 가셨고, 아버지는 일하러 가셨단다.’는 노래를, 아프리카 세네갈에서는 ‘아가야, 엄마와 아빠는 지금 네 곁엔 없지만 너에게 줄 선물을 한아름 안고 곧 오실 거야.’라고 부른다. 또한 네팔은 ‘아가야, 울지 마렴. 엄마는 일을 하러 가야 한단다.’며 아침마다 아기와 떨어져야 하는 엄마의 슬픈 마음을, 에티오피아는 ‘자장자장 아가야, 엄마가 너를 위해 맛있는 것을 사가지고 오실 거란다.’며 굶주림을 다독이고 있다.

나라와 언어는 달라도 아가가 편히 잠을 자고 건강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부모 마음은 동일 한 것 같다. 자장가는 먼저 고요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분위기는 밝지 못하다.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며 저 심연 깊은 곳에 있는 삶의 아쉬움을 넋두리처럼 토해낸 것이 아닐까? 우리는 기억한다. 세계 3대 자장가를 말이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브람스”의 곡이다. 1970년대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세계 자장가 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이름만대도 다 아는 거장 음악가들의 자장가가 성악가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타고 울려 퍼졌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전문 성악가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한 자장가는 다름 아닌 한국에서 온 60대 할머니의 나지막한 읊조림이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검둥개야 우지 마라. 우리 아기 잘도 잔다….” 할머니의 ‘웅얼웅얼’ 거리는 노래를 들은 아기들은 90초 만에 잠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가장 훌륭한 자장가는 뱃속에서부터 들어오던 엄마의 숨소리와 심장박동 소리와 비슷한 곡이다. 반복 구조의 단조로운 리듬과 멜로디가 아기에게 편안한 잠을 안겨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래 자장가는 얼마든지 가사를 변형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우리 어머니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깊어가는 겨울밤. 많은 상념 속에서 사무치게 그리운 것은 그 옛날 무릎에 뉘이고 불러주던 어머니의 자장가이다. 오늘도 자장가를 부르며 아가를 재우는 수많은 젊은 부부들과 이 글을 나누고 싶다. 누군들 자장가가 그립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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