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2.01.21 09:49

그쟈?

조회 수 883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여사친.jpg

 

 

 

  철없던 시절에 친구들끼리 어울려다니며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다가 끝에 던지는 말이 있었다. “그쟈?” 무척이나 정겨움을 안기는 말이다. 인생을 살아보니 더딘 듯 한데 빠르게 지나는 것 같다. 지루한 듯한데 돌아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있었다. 손에 잡힐 듯 기억이 생생한데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비슷한 연배끼리 만나면 하는 소리가 있다. “똑같으시네요? 여전하세요하지만 지인들의 자녀들을 보면 세월이 얼마나 무섭게 속도를 내고 있는지 알아차린다. 자주 만나는 세대의 사람들은 세월을 느끼는 감각이 무뎌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조금만 아래를 내려다보면 무척이나 멀리 왔음을 깨닫게 된다. 그쟈?

 

  젊을 때는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는 것이 흥미로웠고 소위 성공하고 싶었다. 앞만 보고 달려가며 무언가 채워지면 우쭐하고 처지면 낙담이 찾아왔다. 36. 신내동에서 첫 담임 목회를 시작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씻은 후 교회로 향한다. 새벽예배를 인도하고 오로지 교회에만 머물렀다. 그렇게 온종일 목양실에서 말씀에 몰두하고 기도를 많이 하던 때가 그때였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진정한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내 청춘을 드렸다. 한편으로는 대형교회를 꿈꾸면서 말이다.

 

  어릴 때부터 한 교회에서 어울리며 부대끼며 자란 친구가 있다. 부목사직을 사임한 친구는 새로 개발되는 분당에 교회개척을 한다는 포부를 전해왔다. 1996년 첫 입주가 시작될 때에 그는 분당시범단지에 상가를 분양받아 1호로 교회를 개척했다. 설립예배 참석차 처음 찾아간 분당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확실히 신도시다운 세련됨과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같은 충에 이미 개척교회가 4개나 들어서 있었다. 이후 5개월이 지났을때인가? 내가 목회하는 교회는 100여명의 성도들이 출석하고 있었는데 친구 목사 교회는 이미 500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개척 3년 만에 대지를 구입하여 새예배당을 건축하고 입당을 했다. 입이 벌어졌다. 뭔가 모를 자괴감이 찾아왔다. 새예배당을 다녀 온 후 한숨만 나왔다. 비교의식에서 찾아온 절망감이 나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이후 지금까지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깊어가며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장애인 곁에 있는 내 모습이 더 대견하고 행복하다. 그쟈?

 

  사춘기에 가장 큰 관심은 이성이었다. 어느 날, 과외공부를 하다가 여중아이들과 미팅을 했다. 남중이었기에 푸릇푸릇한 같은 또래 여학생을 만난다는 것은 심장이 터질 듯이 가슴을 설레이게 했다. 빵집에서 만난 10명의 남 · 녀 학생들은 수줍은 듯 능숙한 척하며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흔한 방법인 소지품으로 짝을 정하고 만나기는 함께하되 짝을 지어 교제하기로 하였다. 두 번쯤 만났을까? 모임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 때문이었다. 일이 얽히려니 하필 그 즈음에 내가 짝사랑하던 문희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겁 없이 양다리를 걸쳤고, 소문은 금새 퍼져나가 강력한 여학생들의 항의를 받으며 그룹 미팅은 끝이 나 버렸다. 그때는 얼마나 미안하고 민망하던지? 세월이 지나고나니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풋풋한 추억이다. 그쟈?

 

  한국에 살 때에 미국에서 온 사람을 만나면 경외감을 느꼈다. 와우, 미국? 꿈의 나라, 언제나 한번 가보려나? 생김새도 경이로워 보였다. 미국에서 사는 것 자체가 동경의 대상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그곳에서 능숙하게 영어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져서이다. 그래서 던졌다. “영어도 잘하시겠네요?”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미국에 왔다. 그리고 내 생에 가장 긴 세월을 살고 있다. 살아보니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영어? 그렇게 쉽게 정복되는 영역이 아니었다. 한국에 가면 사람들이 묻는다. “영어 잘 하시겠네요?” 시크하게 대답한다. “남이 하는 정도는 합니다.” 아주 적합한 대답이다. 미안한 표현이지만 살아보니 미국생활이 이제 신선하지 않다. 그쟈?

 

  그쟈?”그렇지?”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그 말에는 많은 뉘앙스가 있다. 동의를 구한다기보다 친근함을 안기며 한 울타리에 있음을 느끼게 하는 정겨운 단어이다. 추위를 이겨내다보면 봄이 오겠지? 코로나도 언젠가는 지나가지 않겠어? “그쟈?”      

 

 

 


  1. No Image

    눈은 알고 있다

    사람에게는 오감이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이 감각이 살아있어야 사람은 살맛이 난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농인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수화, 구화를 통하여 청각 마비의 핸디캡을 커버하며 살아간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명적인 후유...
    Views4582
    Read More
  2. No Image

    때 이른 성공

    신동이란 어린 나이에 별스런 재주를 나타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지식은 물론, 예 · 체능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할때에 그런 명칭이 붙는다. 일단 그를 낳은 부모들이 자긍심을 느끼고, 주위 사람들의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시대에도 신...
    Views4573
    Read More
  3. No Image

    발가락 시인

    이흥렬 씨. 그는 선천적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에게 가장 큰 애로사항은 언어소통이다. 사람을 만나면 힘겹게, 너무도 힘겹게 말을 이어가야 한다. 말들은 쉽사리 그의 입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한동안 그의 온 몸을 휘젓고 다닌 끝에야 가까스로 그...
    Views4378
    Read More
  4. No Image

    나는 멋진 사람

    대부분 핸드폰을 열면 가족사진이나 풍경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독특하게 내 폰은 배경이 나다. 언젠가 가족모임을 가지면서 독사진을 찍었는데 내 웃는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이다. 며칠 전, 지인과 대화 중에 내 핸드폰을 보며 “특이하시네요. 핸드폰 ...
    Views4361
    Read More
  5. No Image

    미치겄쥬? 나는 환장하겄슈!

    인생은 초보부터 시작한다. 처음은 다 어설프고 우수꽝스러워 보이지만 인생은 다 초보부터 시작하였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초보」하면 생각나는 것이 운전이다. 장애인이기에 운전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했는데 누가 “한국도 장애인들...
    Views4375
    Read More
  6. No Image

    생명의 신비

    장애인에게 결혼은 넘어가야 할 큰 장벽이다. 보통 청년들은 자연스럽게 짝을 만나고 결혼을 한다. 하지만 장애라는 아픔을 안고 사는 장애인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장애인사역을 하는 분들이 나누는 명언 아닌 명언이 있다. “여자 천사...
    Views4482
    Read More
  7. No Image

    가정을 한 글자로

    장성하여 혼기가 차면 짝을 찾아 결혼을 한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이미 긴 세월 결혼생활을 해 온 분들에게 묻고 싶다. ‘만약 지금의 배우자가 아닌 그 시점에서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어떤...
    Views4608
    Read More
  8. No Image

    누구나 장애인

    초청받은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예배 후 친교를 시작하면 하나둘 내 곁에 모여든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목사님, 저도 장애인입니다.”이다. 일단 거부감이 들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장애가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누군가...
    Views4488
    Read More
  9. No Image

    어차피 인간은 외로운 존재인가?

    한국에 가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함이다. 물론 목사이기에 여러 교회를 다니며 설교를 하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고국의 품이 그리워 찾아가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회귀본능이 고개를 든다. 어린 나이에 이민을 온 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Views4675
    Read More
  10. No Image

    그 이름 그 사람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다. 사실 이름은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붙여지는 고유명사이다. 이름은 태어나서만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태에 잉태된 순간에 붙여지는 이름도 있다. 바로 ‘태명’(胎名)이다. 태명이 태명으로 끝나는 경...
    Views4587
    Read More
  11. No Image

    웃으면 행복해져요!

    사람과 짐승이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만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는 웃지 못한다. 사람만이 다양한 소리를 내며 웃을 수 있다. 하기에 웃음을 “만국공통어”라고 한다. 웃음소리만 들어서는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구분이 안...
    Views4643
    Read More
  12. No Image

    죽고 싶은 당신에게

    택시를 탔다. 기사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뜬금없이 “자신이 자살 시도를 세 번이나 했었다”고 털어놓는다. 저으기 당황하며 이유를 물었다. “나이 어린 젊은 진상 손님들로 인해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었습니다.” 상상이 갔다. 줄곧...
    Views4455
    Read More
  13. 아, 청계천!

    나는 지금 한국 방문 중이다. 중요한 일정 중에 하나는 한국 장애인의 날에 나의 모교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채플에서 설교를 하는 귀한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20일(수) 오전 11:30분. 강단에 올라 무릎을 꿇었다. 가슴 한켠에서 무언가 ‘울컥&rsqu...
    Views4669
    Read More
  14. No Image

    생일이 뭐길래?

    평범한 주부의 고백이다. 며칠 전에 생일을 지나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고 했다. 하필 전날이 작은 딸의 생일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을 위해 미역국을 끓이고 딸 친구들을 초대하여 자그마한 파티도 열어주었다. 즐겁고도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Views4502
    Read More
  15. No Image

    산다는 건 그런거지!

    감동 없이 사는 삶은 형벌이다. 사람들은 만나면 습관적으로 묻는다. “요즈음 재미가 어떠세요?” 혹은 “신수가 훤한 것을 보니 재미가 좋으신가봐요?” 재미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삶에는 모름지기 재미가 있고 감동이 있어야 한다...
    Views4613
    Read More
  16. No Image

    몸은 영혼을 담은 그릇

    사람은 영혼과 육체를 가지고 있다. 영혼은 그냥 영(靈)이라고하고 육체는 몸이라고 한다. 몸은 “모음”의 준말이다. 다 모여 있다는 말이다. AI 시대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뇌는 못 따라간다. 뇌에서 Enter를 치면 몸은 그대로 움직인다. ...
    Views4749
    Read More
  17. No Image

    인생의 평형수

    만물은 항상 평형을 유지하려는 본성을 지닌다. 때로 외부로부터 충격이 가해지며 평형상태가 무너질 때가 있는데 이 찰나에 미미하나마 다시 평형상태로 되돌아가려는 힘을 복원력이라고 한다. 복원력이 가장 중요하게 적용되는 것이 물위에 배이다. 급격한 ...
    Views4287
    Read More
  18. No Image

    도랑

    서종(양평)에서 나는 3년동안 초등학교를 다녔다. 지제, 강상, 양평초등학교를 거쳐 아버지의 인사이동을 따라 산골 깊이 서종초등학교로 전학을 해야 했다. 지금은 카페촌이 들어서고 골짜기마다 분위기 좋은 별장이 즐비한 곳이 되었지만 당시는 촌(村)이었...
    Views4477
    Read More
  19. No Image

    너는 자유다!

    오래전 “Who am I ?”라는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에 “정글만리”를 펴낸 조정래 선생이 출연하였다. 노구의 비해 낭랑한 목소리와 소년의 미소가 정겹게 다가왔다. 강연 내내 푸근하게 떠올라 있는 미소와 너그러움이 참 편안하게 느껴...
    Views4704
    Read More
  20. No Image

    아내의 존재

    내가 어릴때는 아버지의 존재가 너무도 커보였다. 형제끼리 이방 저방을 오가며 장난을 치고 호들갑을 떨며 어수선하다가도 아버지가 퇴근을 하고 집에 오시면 일순간 조용해 졌다. 식사 중에 대화를 하면 “밥풀이 튄다”고 절제를 시켰고, 밥숟가...
    Views468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