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3.12.08 20:57

숙명, 운명, 사명

조회 수 287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살아있는 사람은 다 생명을 가지고 있다. 생명, 영어로는 Life. 한문으로는 生命-분석하면 살 ‘生’ 명령 ‘命’ 풀어보면 “살아야 할 명령”이 된다. 엄마의 태로부터 태어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살라는” 명을 수행해야만 한다. 어떤 분은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뇌하기도 한다. 하지만 삶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냥 사는 것이다. 살다보면 Life가 형성되어 간다.

 

 어린 시절, 방학 숙제 중에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일기였다. 모처럼 찾아온 해방감에 정신없이 놀다보니 개학은 다가오고 주어진 과제는 간간히 준비를 해왔지만 정작 밀려버린 일기가 난제가 된다. 날씨부터 어떠했는지 생각이 가물가물하고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결국 내용은 대동소이해 진다. 일어나서 밥먹고, 친구들과 돌아다니며 놀고, 잠을 잤다는 그렇고 그런 비슷한 내용으로 일기를 채워갔던 것 같다.

 

 그렇다. 한주간을 돌아보라! 특별히 새로운 것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아침에 차를 몰고 그 길로 출근을 한다. 간간히 점심에 지인들을 만나 음식을 먹고 담소를 나눈다. 이후 그길로 운전하여 집에 당도한다. 거의 매일 309 도로를 탄다. 611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한 주간이 흘러 한 달이 가고, 이제 친숙했던 한해를 떠나보내는 시간에 와있다.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았어도 내게 주어진 일들을 차분히 감당하고 오늘 최선을 다했다면 잘 산 것이다.

 

 일본의 인재 육성 전문가인 마쓰오 가즈야가 쓴 <50부터 뻗어가는 사람, 시들어가는 사람>에는 ‘숙명’ ‘운명’ ‘사명’ ‘천명’ ‘수명’으로 구분되는 다섯 가지 인생을 소개하고 있다. 숙명(宿命)은 ‘깃드는 명’, 즉 날 때부터 우리 안에 깃들어서 바꿀 수 없는 것을 말한다. 부모, 성별, 국적, 내 신체. 그것은 숙명이다. 운명(運命)은 ‘흐르는 명’이다. 흘러가는 인생인데, ‘표류할 것인가 항해할 것인가?’는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 아무 뜻 없이 운명을 탓하며 사는 것은 결코 진취적인 삶이 되지 못한다.

 

 사명(使命)은 ‘쓰는 명’이다. 무엇을 위해 이 목숨을 사용할 것인지 성찰하고 실천하는 삶을 말한다. 천명(天命)이 있는데 ‘부여 받은 명’이다. 운명과 사명이 인간이 생각하는 삶이라면, 천명은 하늘이 계획하고 바라는 나의 인생이라 할 수 있다. 수명(壽命)은 ‘하늘이 정한 삶의 시간’이다.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이 인생의 답으로 들린다. “하나님,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를 주시고,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50. 쉰살-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나이이다. 그 시간은 나에게 멀게만 느껴졌었다. 그러나 그 선을 넘어선지 벌써 오래이다. 12월 1일(토) <다니엘기도회>를 26년 동안 이끌었던 오륜교회 담임 김은호 목사가 조기 은퇴(65세)를 했다. 감동이 밀려왔다. 1만명 성도를 뒤로하고 그는 젊은 후배에게 담임을 물려주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선한 열매가 맺어지려면 꽃이 떨어져야 한다. 내려서야 할 때를 아는 그분의 신앙에 경외감이 밀려왔다. 필라 교계에서도 평생을 한 교회에 헌신해 온 목회자들이 하나둘 은퇴를 하고 있다.

 

 목표를 향해 돌진하고 열정을 불살라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50이 되면 속도를 늦춰야 한다. 손을 떼야 할 때가 다가오는 세대이다. 인생 후반전은 50부터 판가름 난다. 생각의 틀이 바뀌면서 삶의 자세도 서서히 안정적인 모습을 가지게 된다. 감정은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발을 담그는 것이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 비우기, 가벼워지기, 그리고 뛰어들기, 용기와 상상력, 과거의 영광에서 내려오는 법을 익혀야만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 성공의 욕구만큼이나 필요한 것이 바로 좌절 면역력이다. 결국 유연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숙명을 타고 태어나 운명을 따라 살다가 사명을 깨달아 여기까지 왔다. 사명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 현명하다.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위해 달리는 삶은 나이가 들수록 아름답고 가슴이 벅차온다. 늦게 피는 꽃도 아름답다.


  1. No Image

    그 강 건너편

    사람마다 살아가며 잊지 못할 인연이 있다. 내 생애에 꼽으라면 단연 천정웅 목사님이다. 나를 오늘의 나로 가꾸어 준 멘토이다. 그분은 정말 건강했다. 20대 초반, 교회 청년부에서 ‘아야진’(동해 휴전선 근처 마을)으로 하기수련회를 갔던 때였...
    Views4814
    Read More
  2. No Image

    눈은 알고 있다

    사람에게는 오감이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이 감각이 살아있어야 사람은 살맛이 난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농인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수화, 구화를 통하여 청각 마비의 핸디캡을 커버하며 살아간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명적인 후유...
    Views4832
    Read More
  3. No Image

    때 이른 성공

    신동이란 어린 나이에 별스런 재주를 나타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지식은 물론, 예 · 체능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할때에 그런 명칭이 붙는다. 일단 그를 낳은 부모들이 자긍심을 느끼고, 주위 사람들의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시대에도 신...
    Views4834
    Read More
  4. No Image

    발가락 시인

    이흥렬 씨. 그는 선천적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에게 가장 큰 애로사항은 언어소통이다. 사람을 만나면 힘겹게, 너무도 힘겹게 말을 이어가야 한다. 말들은 쉽사리 그의 입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한동안 그의 온 몸을 휘젓고 다닌 끝에야 가까스로 그...
    Views4636
    Read More
  5. No Image

    나는 멋진 사람

    대부분 핸드폰을 열면 가족사진이나 풍경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독특하게 내 폰은 배경이 나다. 언젠가 가족모임을 가지면서 독사진을 찍었는데 내 웃는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이다. 며칠 전, 지인과 대화 중에 내 핸드폰을 보며 “특이하시네요. 핸드폰 ...
    Views4642
    Read More
  6. No Image

    미치겄쥬? 나는 환장하겄슈!

    인생은 초보부터 시작한다. 처음은 다 어설프고 우수꽝스러워 보이지만 인생은 다 초보부터 시작하였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초보」하면 생각나는 것이 운전이다. 장애인이기에 운전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했는데 누가 “한국도 장애인들...
    Views4740
    Read More
  7. No Image

    생명의 신비

    장애인에게 결혼은 넘어가야 할 큰 장벽이다. 보통 청년들은 자연스럽게 짝을 만나고 결혼을 한다. 하지만 장애라는 아픔을 안고 사는 장애인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장애인사역을 하는 분들이 나누는 명언 아닌 명언이 있다. “여자 천사...
    Views4730
    Read More
  8. No Image

    가정을 한 글자로

    장성하여 혼기가 차면 짝을 찾아 결혼을 한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이미 긴 세월 결혼생활을 해 온 분들에게 묻고 싶다. ‘만약 지금의 배우자가 아닌 그 시점에서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어떤...
    Views4832
    Read More
  9. No Image

    누구나 장애인

    초청받은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예배 후 친교를 시작하면 하나둘 내 곁에 모여든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목사님, 저도 장애인입니다.”이다. 일단 거부감이 들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장애가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누군가...
    Views4742
    Read More
  10. No Image

    어차피 인간은 외로운 존재인가?

    한국에 가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함이다. 물론 목사이기에 여러 교회를 다니며 설교를 하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고국의 품이 그리워 찾아가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회귀본능이 고개를 든다. 어린 나이에 이민을 온 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Views4885
    Read More
  11. No Image

    그 이름 그 사람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다. 사실 이름은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붙여지는 고유명사이다. 이름은 태어나서만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태에 잉태된 순간에 붙여지는 이름도 있다. 바로 ‘태명’(胎名)이다. 태명이 태명으로 끝나는 경...
    Views4813
    Read More
  12. No Image

    웃으면 행복해져요!

    사람과 짐승이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만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는 웃지 못한다. 사람만이 다양한 소리를 내며 웃을 수 있다. 하기에 웃음을 “만국공통어”라고 한다. 웃음소리만 들어서는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구분이 안...
    Views4875
    Read More
  13. No Image

    죽고 싶은 당신에게

    택시를 탔다. 기사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뜬금없이 “자신이 자살 시도를 세 번이나 했었다”고 털어놓는다. 저으기 당황하며 이유를 물었다. “나이 어린 젊은 진상 손님들로 인해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었습니다.” 상상이 갔다. 줄곧...
    Views4648
    Read More
  14. 아, 청계천!

    나는 지금 한국 방문 중이다. 중요한 일정 중에 하나는 한국 장애인의 날에 나의 모교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채플에서 설교를 하는 귀한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20일(수) 오전 11:30분. 강단에 올라 무릎을 꿇었다. 가슴 한켠에서 무언가 ‘울컥&rsqu...
    Views4870
    Read More
  15. No Image

    생일이 뭐길래?

    평범한 주부의 고백이다. 며칠 전에 생일을 지나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고 했다. 하필 전날이 작은 딸의 생일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을 위해 미역국을 끓이고 딸 친구들을 초대하여 자그마한 파티도 열어주었다. 즐겁고도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Views4697
    Read More
  16. No Image

    산다는 건 그런거지!

    감동 없이 사는 삶은 형벌이다. 사람들은 만나면 습관적으로 묻는다. “요즈음 재미가 어떠세요?” 혹은 “신수가 훤한 것을 보니 재미가 좋으신가봐요?” 재미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삶에는 모름지기 재미가 있고 감동이 있어야 한다...
    Views4831
    Read More
  17. No Image

    몸은 영혼을 담은 그릇

    사람은 영혼과 육체를 가지고 있다. 영혼은 그냥 영(靈)이라고하고 육체는 몸이라고 한다. 몸은 “모음”의 준말이다. 다 모여 있다는 말이다. AI 시대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뇌는 못 따라간다. 뇌에서 Enter를 치면 몸은 그대로 움직인다. ...
    Views4962
    Read More
  18. No Image

    인생의 평형수

    만물은 항상 평형을 유지하려는 본성을 지닌다. 때로 외부로부터 충격이 가해지며 평형상태가 무너질 때가 있는데 이 찰나에 미미하나마 다시 평형상태로 되돌아가려는 힘을 복원력이라고 한다. 복원력이 가장 중요하게 적용되는 것이 물위에 배이다. 급격한 ...
    Views4509
    Read More
  19. No Image

    도랑

    서종(양평)에서 나는 3년동안 초등학교를 다녔다. 지제, 강상, 양평초등학교를 거쳐 아버지의 인사이동을 따라 산골 깊이 서종초등학교로 전학을 해야 했다. 지금은 카페촌이 들어서고 골짜기마다 분위기 좋은 별장이 즐비한 곳이 되었지만 당시는 촌(村)이었...
    Views4694
    Read More
  20. No Image

    너는 자유다!

    오래전 “Who am I ?”라는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에 “정글만리”를 펴낸 조정래 선생이 출연하였다. 노구의 비해 낭랑한 목소리와 소년의 미소가 정겹게 다가왔다. 강연 내내 푸근하게 떠올라 있는 미소와 너그러움이 참 편안하게 느껴...
    Views504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