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4.01.05 14:27

윤슬 =2024년 첫 칼럼=

조회 수 313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윤슬.png

 

 아버지는 낚시를 즐기셨다. 공직생활의 여유가 생길때마다 도구를 챙겨 강을 찾았다. 지금처럼 세련된 낚시가 아닌 미끼를 끼워 힘껏 강으로 던져놓고 신호를 기다리는 방울낚시였다. 고기가 물리면 방울이 세차게 울린다. 아버지는 잽싸게 낚시줄을 잡아채며 끌어당긴다. 고기의 몸부림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서서히 다가온다. 그때 느끼는 환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과묵한 아버지도 탄성을 지르며 어깨에 힘이 들어가셨다. 하지만 그런 광경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가끔 물고기가 낚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루해하며 돌수제비를 할라치면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낚시는 세월을 낚는거란다!”

 

  강변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 윤슬”(달빛이나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 일어난다. 아침에 보면 고기들이 튀어 올라 향연을 펼치는 것처럼 눈이 부시다. 어린 내 눈에는 윤슬이 고기비늘이 햇볕에 반사되는 것처럼 보였다. 윤슬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양, 색깔, 느낌이 달라진다. 아침에는 신선한 느낌을 준다. 서서히 달아오르는 오후가 되면 감청색 강물이 시원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윤슬의 강한 매력은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저녁 무렵이다. 황혼에 물들어 일렁이는 윤슬은 신비감을 준다. 저만치 미지의 세계가 그려지듯 윤슬은 하루에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가슴에 품고 어둠 속으로 잠이 든다.

 

  새해가 밝았다. 마치 아침녘 강물처럼 눈부신 윤슬이 다가온 것이다. 언젠가 함께 식사를 나누던 후배가 물어왔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먹던 내게 갑자기 던져진 진지한 질문에 움찔했다. “아니, 뜬금없이 인생이 무엇이냐고?” “나이 50이 깊어 가니 불현듯 인생이 무엇인지 의구심이 들어서요후배는 결혼을 일찍했다. 그래서인지 어느새 아들이 결혼을 해서 아이가 둘이다. 밑에 여동생이 지난 5월 아들을 낳았다.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가 손자가 세명이 된 것이다. 그 와중에 인생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대답했다. “인생? 그냥 사는 거야싱거운 대답에 우리는 함께 마주 보며 웃었다. 청량리 노숙자들이 나의 소중한 친구 밥퍼 최일도 목사가 끓여준 라면을 한창 먹고 있었다. 밤새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자던 그들에게 라면 국물은 해장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외쳤다. “, 삶은 무엇인가?”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곁에 있던 두목인듯한 사나이가 숟가락으로 그의 머리를 내려치면서 말했다. “삶은라면이지 뭐야?” 질문은 던진 그는 , 삶은라면이지하고 그냥 먹더란다. 웃픈 이야기다.

 

  인생이 무얼까? 농담이 아니고 그냥 사는거다. 아침햇살에 눈부시게 반사되는 윤슬처럼 인생은 다 거창한 꿈을 안고 출발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 꿈을 이루어가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인생들은 나이가 들어가며 서서히 꿈의 범위와 기대치가 낮아지고 어느 순간 물흐르듯 평범히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새해가 무엇일까? 따지고 보면 달력을 갈아 걸뿐이다. 20231231일과 202411일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연도, , 세월이 약간 바뀌었을 뿐이다. 새해가 왔다고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결국 새해는 내 마음에 있다. 나이 든 청춘이 있고, 젊은 늙은이가 있다. 대나무가 비바람에도 부러지지 않고 곧게 높이 자라는 이유를 아는가? 첫째 곁가지가 없어서 그렇고, 둘째는 매듭을 지어서 그렇다. 어느 정도 자라면 멈추고 마디를 만들어서 매듭을 지은 덕분에 강한 태풍에도 부러지지 않는 유연성이 생기는 것이다.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삶의 매듭을 짓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월요일 새해 11일을 시작했다. 주말에 한 주간을 마무리한다. 그러다가 30일이 차면 달의 이름을 바꾼다. 자라고 매듭짓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인생이다. 나는 지금 어디만큼 가고 있는 것일까? 어느 정도 성숙한 삶을 살고 있을까? 내 계획과 결심이 내 인생에 어느 정도의 파급효과를 주는 것일까? 돌아보니 별 효과가 없다. 주어진 오늘을 그냥 사는 것이다. 윤슬이 해의 각도에 따라 모양과 분위기를 달리하듯 우리는 오늘도 같은 장소, 환경이지만 새로운 인생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1. No Image

    그 강 건너편

    사람마다 살아가며 잊지 못할 인연이 있다. 내 생애에 꼽으라면 단연 천정웅 목사님이다. 나를 오늘의 나로 가꾸어 준 멘토이다. 그분은 정말 건강했다. 20대 초반, 교회 청년부에서 ‘아야진’(동해 휴전선 근처 마을)으로 하기수련회를 갔던 때였...
    Views4814
    Read More
  2. No Image

    눈은 알고 있다

    사람에게는 오감이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이 감각이 살아있어야 사람은 살맛이 난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농인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수화, 구화를 통하여 청각 마비의 핸디캡을 커버하며 살아간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명적인 후유...
    Views4832
    Read More
  3. No Image

    때 이른 성공

    신동이란 어린 나이에 별스런 재주를 나타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지식은 물론, 예 · 체능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할때에 그런 명칭이 붙는다. 일단 그를 낳은 부모들이 자긍심을 느끼고, 주위 사람들의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시대에도 신...
    Views4833
    Read More
  4. No Image

    발가락 시인

    이흥렬 씨. 그는 선천적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에게 가장 큰 애로사항은 언어소통이다. 사람을 만나면 힘겹게, 너무도 힘겹게 말을 이어가야 한다. 말들은 쉽사리 그의 입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한동안 그의 온 몸을 휘젓고 다닌 끝에야 가까스로 그...
    Views4636
    Read More
  5. No Image

    나는 멋진 사람

    대부분 핸드폰을 열면 가족사진이나 풍경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독특하게 내 폰은 배경이 나다. 언젠가 가족모임을 가지면서 독사진을 찍었는데 내 웃는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이다. 며칠 전, 지인과 대화 중에 내 핸드폰을 보며 “특이하시네요. 핸드폰 ...
    Views4642
    Read More
  6. No Image

    미치겄쥬? 나는 환장하겄슈!

    인생은 초보부터 시작한다. 처음은 다 어설프고 우수꽝스러워 보이지만 인생은 다 초보부터 시작하였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초보」하면 생각나는 것이 운전이다. 장애인이기에 운전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했는데 누가 “한국도 장애인들...
    Views4736
    Read More
  7. No Image

    생명의 신비

    장애인에게 결혼은 넘어가야 할 큰 장벽이다. 보통 청년들은 자연스럽게 짝을 만나고 결혼을 한다. 하지만 장애라는 아픔을 안고 사는 장애인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장애인사역을 하는 분들이 나누는 명언 아닌 명언이 있다. “여자 천사...
    Views4730
    Read More
  8. No Image

    가정을 한 글자로

    장성하여 혼기가 차면 짝을 찾아 결혼을 한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이미 긴 세월 결혼생활을 해 온 분들에게 묻고 싶다. ‘만약 지금의 배우자가 아닌 그 시점에서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어떤...
    Views4832
    Read More
  9. No Image

    누구나 장애인

    초청받은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예배 후 친교를 시작하면 하나둘 내 곁에 모여든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목사님, 저도 장애인입니다.”이다. 일단 거부감이 들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장애가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누군가...
    Views4740
    Read More
  10. No Image

    어차피 인간은 외로운 존재인가?

    한국에 가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함이다. 물론 목사이기에 여러 교회를 다니며 설교를 하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고국의 품이 그리워 찾아가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회귀본능이 고개를 든다. 어린 나이에 이민을 온 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Views4885
    Read More
  11. No Image

    그 이름 그 사람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다. 사실 이름은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붙여지는 고유명사이다. 이름은 태어나서만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태에 잉태된 순간에 붙여지는 이름도 있다. 바로 ‘태명’(胎名)이다. 태명이 태명으로 끝나는 경...
    Views4813
    Read More
  12. No Image

    웃으면 행복해져요!

    사람과 짐승이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만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는 웃지 못한다. 사람만이 다양한 소리를 내며 웃을 수 있다. 하기에 웃음을 “만국공통어”라고 한다. 웃음소리만 들어서는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구분이 안...
    Views4875
    Read More
  13. No Image

    죽고 싶은 당신에게

    택시를 탔다. 기사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뜬금없이 “자신이 자살 시도를 세 번이나 했었다”고 털어놓는다. 저으기 당황하며 이유를 물었다. “나이 어린 젊은 진상 손님들로 인해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었습니다.” 상상이 갔다. 줄곧...
    Views4648
    Read More
  14. 아, 청계천!

    나는 지금 한국 방문 중이다. 중요한 일정 중에 하나는 한국 장애인의 날에 나의 모교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채플에서 설교를 하는 귀한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20일(수) 오전 11:30분. 강단에 올라 무릎을 꿇었다. 가슴 한켠에서 무언가 ‘울컥&rsqu...
    Views4870
    Read More
  15. No Image

    생일이 뭐길래?

    평범한 주부의 고백이다. 며칠 전에 생일을 지나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고 했다. 하필 전날이 작은 딸의 생일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을 위해 미역국을 끓이고 딸 친구들을 초대하여 자그마한 파티도 열어주었다. 즐겁고도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Views4697
    Read More
  16. No Image

    산다는 건 그런거지!

    감동 없이 사는 삶은 형벌이다. 사람들은 만나면 습관적으로 묻는다. “요즈음 재미가 어떠세요?” 혹은 “신수가 훤한 것을 보니 재미가 좋으신가봐요?” 재미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삶에는 모름지기 재미가 있고 감동이 있어야 한다...
    Views4831
    Read More
  17. No Image

    몸은 영혼을 담은 그릇

    사람은 영혼과 육체를 가지고 있다. 영혼은 그냥 영(靈)이라고하고 육체는 몸이라고 한다. 몸은 “모음”의 준말이다. 다 모여 있다는 말이다. AI 시대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뇌는 못 따라간다. 뇌에서 Enter를 치면 몸은 그대로 움직인다. ...
    Views4962
    Read More
  18. No Image

    인생의 평형수

    만물은 항상 평형을 유지하려는 본성을 지닌다. 때로 외부로부터 충격이 가해지며 평형상태가 무너질 때가 있는데 이 찰나에 미미하나마 다시 평형상태로 되돌아가려는 힘을 복원력이라고 한다. 복원력이 가장 중요하게 적용되는 것이 물위에 배이다. 급격한 ...
    Views4509
    Read More
  19. No Image

    도랑

    서종(양평)에서 나는 3년동안 초등학교를 다녔다. 지제, 강상, 양평초등학교를 거쳐 아버지의 인사이동을 따라 산골 깊이 서종초등학교로 전학을 해야 했다. 지금은 카페촌이 들어서고 골짜기마다 분위기 좋은 별장이 즐비한 곳이 되었지만 당시는 촌(村)이었...
    Views4694
    Read More
  20. No Image

    너는 자유다!

    오래전 “Who am I ?”라는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에 “정글만리”를 펴낸 조정래 선생이 출연하였다. 노구의 비해 낭랑한 목소리와 소년의 미소가 정겹게 다가왔다. 강연 내내 푸근하게 떠올라 있는 미소와 너그러움이 참 편안하게 느껴...
    Views504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