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5347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바람과 풍차.jpg

 

 바람이 분다. 얼굴에 머물 것 같던 바람은 이내 머리칼을 흔들고 가슴에 파고든다. 나는 계절을 후각으로 느낀다. 봄은 뒷곁에 쌓아놓은 솔가지를 말리며 흘러들었다. 향긋하게 파고드는 솔 향이 짙어지면 기분 좋은 현기증이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게 했다. 여름은 굴뚝 근처에 번져가는 곰팡이를 스쳐가는 ‘퀘퀘한 내음’으로 다가왔다. 선풍기도 없던 시절에 부채질은 더운 열기를 돋우워 잠자리를 설치게 했다. 어쩌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덕에 겨우 꿈나라로 향할 수 있었다. 가을은 스산한 기운으로 오동나무 잎을 훑으며 다가섰다. 바람이 부는 대로 쏠려 다니는 낙엽 구르는 소리가 세월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겨울은 전깃줄을 타고 휘몰아치며 아이우는 소리를 내며 불어댔고, 그럴때면 우리는 온돌 깊숙이 몸을 숨겼다.

 

 바람 중에 가장 예쁜 “하늬바람”이 있다. 사실 ‘하늬바람’은 농부나 뱃사람들이 ‘서풍’을 부르는 말이다. ‘하늬’는 뱃사람의 말로 서쪽이란다. 따라서 ‘하늬바람’은 맑은 날 서쪽에서 부는 서늘하고 건조한 바람을 말한다. 습하고 무더운 ‘된마(동남풍)’에 상대되는 바람이다. 무더운 여름철에 부는 ‘하늬바람’은 말의 느낌만큼이나 실제로도 상쾌한 느낌을 주는 바람이다. 때늦은 장마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끈적이는 습도 때문이었다. 후덥지근한 장마도 지나가며 이파리 무성한 숲길에서는 매미 소리가 요란하고, 언덕배기로 서늘한 하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어느덧 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다.

 

 뉴햄프셔 주에 있는 ‘White Mountain’ 정상에 오른 적이 있다. 방갈로를 나서자 세찬 바람은 친구의 선글라스를 허공으로 냅다 날려버렸다. 난감해 하는 친구를 향해 다른 친구가 소리쳤다. “그래도 바람을 맞는 것이 그렇게 건강에 좋단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며 웃어댔다. 바람은 때로 모든 것을 앗아간다. 미국 남부에 몰아치는 ‘토네이도’는 그동안 쌓아놓았던 모든 것을 공중분해 시켜 버린다. 태풍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태풍이 몰아치며 저 깊은 바닷 속을 휘저어놓기에 바다가 기나긴 세월의 흐름에도 청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청춘들에게는 자신도 가누지 못하는 바람이 있다. ‘질풍노도’라고 하지 않는가? 왜 그리 쏘다녔는지? 수업만 끝나면 달려가 죽치고 앉아있던 명동 ‘케잌파라’ 3층은 지금 생각해도 아련한 추억의 창이다. 고교시절에 여름방학은 캠핑으로 시작하여 끝이 났다. ‘텐트, 코펠, 라면, 통기타, 그리고 …’. 그렇게 뒹굴고 소리치며 놀아도 지치지 않았다. 무슨 그리 할 일이 많았는지?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칫솔하나로 돌아가며 이를 닦고, 악동들은 추억을 쌓느라 하루가 모자랐다. 개학을 하면 그 바람을 진정시키느라 한참을 힘들어 해야 했다.

 

 ‘가는 바람’은 약하게 솔솔 부는 바람이다. ‘간들바람’은 부드럽고 가볍게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며 ‘강쇠바람’은 첫가을에 부는 동풍을 일컫는다. ‘골바람’은 골짜기에서부터 산꼭대기로 부는 바람인데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매서운 겨울바람의 아픈 추억을 담고 살고 있으리라. ‘골바람’이 얼굴에 부딪히면 절로 눈물이 났다. 핑계 김에 서러움을 담아 울던 겨울을 잊을 수가 없다. ‘높새바람’이 있다. ‘동북풍’을 달리 이르는 말로 주로 봄부터 초여름에 걸쳐 태백산맥을 넘어 영서 지방으로 부는 고온 건조한 바람으로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

 

 바람을 기다려 본 경험이 있는가?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면 손수 만든 연을 들고 언덕배기에 올라섰다. 달리며 놓아버린 연이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긴 연줄이 곡선을 그리며 저만치 한 점이 되어 버렸다. 돛단배를 띄운 뱃사공이 반갑고 반가운 것이 강바람이다.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버드나무의 향연을 본적이 있는가? 한차례 소낙비가 지나간 후 바람결에 흔들리는 미루나무 잎에 ‘반짝거림’을 실눈을 뜨고 바라본 적이 있는가? 나무는 바람을 타고 잎을 흔들며 대화를 나눈다.

 

 한적한 깊은 산속 숲 소리와 바람의 빛깔을 알 수 있다면 자연의 언어인 바람을 통해 우리는 더 풍요로운 인생의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1. No Image

    때 이른 성공

    신동이란 어린 나이에 별스런 재주를 나타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지식은 물론, 예 · 체능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할때에 그런 명칭이 붙는다. 일단 그를 낳은 부모들이 자긍심을 느끼고, 주위 사람들의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시대에도 신...
    Views4555
    Read More
  2. No Image

    발가락 시인

    이흥렬 씨. 그는 선천적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에게 가장 큰 애로사항은 언어소통이다. 사람을 만나면 힘겹게, 너무도 힘겹게 말을 이어가야 한다. 말들은 쉽사리 그의 입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한동안 그의 온 몸을 휘젓고 다닌 끝에야 가까스로 그...
    Views4353
    Read More
  3. No Image

    나는 멋진 사람

    대부분 핸드폰을 열면 가족사진이나 풍경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독특하게 내 폰은 배경이 나다. 언젠가 가족모임을 가지면서 독사진을 찍었는데 내 웃는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이다. 며칠 전, 지인과 대화 중에 내 핸드폰을 보며 “특이하시네요. 핸드폰 ...
    Views4341
    Read More
  4. No Image

    미치겄쥬? 나는 환장하겄슈!

    인생은 초보부터 시작한다. 처음은 다 어설프고 우수꽝스러워 보이지만 인생은 다 초보부터 시작하였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초보」하면 생각나는 것이 운전이다. 장애인이기에 운전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했는데 누가 “한국도 장애인들...
    Views4369
    Read More
  5. No Image

    생명의 신비

    장애인에게 결혼은 넘어가야 할 큰 장벽이다. 보통 청년들은 자연스럽게 짝을 만나고 결혼을 한다. 하지만 장애라는 아픔을 안고 사는 장애인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장애인사역을 하는 분들이 나누는 명언 아닌 명언이 있다. “여자 천사...
    Views4475
    Read More
  6. No Image

    가정을 한 글자로

    장성하여 혼기가 차면 짝을 찾아 결혼을 한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이미 긴 세월 결혼생활을 해 온 분들에게 묻고 싶다. ‘만약 지금의 배우자가 아닌 그 시점에서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어떤...
    Views4605
    Read More
  7. No Image

    누구나 장애인

    초청받은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예배 후 친교를 시작하면 하나둘 내 곁에 모여든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목사님, 저도 장애인입니다.”이다. 일단 거부감이 들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장애가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누군가...
    Views4484
    Read More
  8. No Image

    어차피 인간은 외로운 존재인가?

    한국에 가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함이다. 물론 목사이기에 여러 교회를 다니며 설교를 하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고국의 품이 그리워 찾아가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회귀본능이 고개를 든다. 어린 나이에 이민을 온 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Views4671
    Read More
  9. No Image

    그 이름 그 사람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다. 사실 이름은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붙여지는 고유명사이다. 이름은 태어나서만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태에 잉태된 순간에 붙여지는 이름도 있다. 바로 ‘태명’(胎名)이다. 태명이 태명으로 끝나는 경...
    Views4583
    Read More
  10. No Image

    웃으면 행복해져요!

    사람과 짐승이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만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는 웃지 못한다. 사람만이 다양한 소리를 내며 웃을 수 있다. 하기에 웃음을 “만국공통어”라고 한다. 웃음소리만 들어서는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구분이 안...
    Views4638
    Read More
  11. No Image

    죽고 싶은 당신에게

    택시를 탔다. 기사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뜬금없이 “자신이 자살 시도를 세 번이나 했었다”고 털어놓는다. 저으기 당황하며 이유를 물었다. “나이 어린 젊은 진상 손님들로 인해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었습니다.” 상상이 갔다. 줄곧...
    Views4452
    Read More
  12. 아, 청계천!

    나는 지금 한국 방문 중이다. 중요한 일정 중에 하나는 한국 장애인의 날에 나의 모교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채플에서 설교를 하는 귀한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20일(수) 오전 11:30분. 강단에 올라 무릎을 꿇었다. 가슴 한켠에서 무언가 ‘울컥&rsqu...
    Views4662
    Read More
  13. No Image

    생일이 뭐길래?

    평범한 주부의 고백이다. 며칠 전에 생일을 지나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고 했다. 하필 전날이 작은 딸의 생일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을 위해 미역국을 끓이고 딸 친구들을 초대하여 자그마한 파티도 열어주었다. 즐겁고도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Views4499
    Read More
  14. No Image

    산다는 건 그런거지!

    감동 없이 사는 삶은 형벌이다. 사람들은 만나면 습관적으로 묻는다. “요즈음 재미가 어떠세요?” 혹은 “신수가 훤한 것을 보니 재미가 좋으신가봐요?” 재미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삶에는 모름지기 재미가 있고 감동이 있어야 한다...
    Views4609
    Read More
  15. No Image

    몸은 영혼을 담은 그릇

    사람은 영혼과 육체를 가지고 있다. 영혼은 그냥 영(靈)이라고하고 육체는 몸이라고 한다. 몸은 “모음”의 준말이다. 다 모여 있다는 말이다. AI 시대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뇌는 못 따라간다. 뇌에서 Enter를 치면 몸은 그대로 움직인다. ...
    Views4744
    Read More
  16. No Image

    인생의 평형수

    만물은 항상 평형을 유지하려는 본성을 지닌다. 때로 외부로부터 충격이 가해지며 평형상태가 무너질 때가 있는데 이 찰나에 미미하나마 다시 평형상태로 되돌아가려는 힘을 복원력이라고 한다. 복원력이 가장 중요하게 적용되는 것이 물위에 배이다. 급격한 ...
    Views4284
    Read More
  17. No Image

    도랑

    서종(양평)에서 나는 3년동안 초등학교를 다녔다. 지제, 강상, 양평초등학교를 거쳐 아버지의 인사이동을 따라 산골 깊이 서종초등학교로 전학을 해야 했다. 지금은 카페촌이 들어서고 골짜기마다 분위기 좋은 별장이 즐비한 곳이 되었지만 당시는 촌(村)이었...
    Views4474
    Read More
  18. No Image

    너는 자유다!

    오래전 “Who am I ?”라는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에 “정글만리”를 펴낸 조정래 선생이 출연하였다. 노구의 비해 낭랑한 목소리와 소년의 미소가 정겹게 다가왔다. 강연 내내 푸근하게 떠올라 있는 미소와 너그러움이 참 편안하게 느껴...
    Views4701
    Read More
  19. No Image

    아내의 존재

    내가 어릴때는 아버지의 존재가 너무도 커보였다. 형제끼리 이방 저방을 오가며 장난을 치고 호들갑을 떨며 어수선하다가도 아버지가 퇴근을 하고 집에 오시면 일순간 조용해 졌다. 식사 중에 대화를 하면 “밥풀이 튄다”고 절제를 시켰고, 밥숟가...
    Views4683
    Read More
  20. No Image

    시각 장애 반장

    장애를 안고 통합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는 특수학교가 인기가 있었다. 종로에 “명휘원” 광진구에 있는 “정립회관”이 그곳이다. 어떤 면에서 장애를 가진 학생들끼리 편견없이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Views493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