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7.12.22 22:21

깡통차기

조회 수 5214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시골길.jpg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나서며 찌그러진 깡통 하나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장난삼아 툭툭치고 가다가 시간이 지나며 사명감’(?)에 차고 나가고, 나중에는 오기가 발동하면서 집에 올 때까지 깡통차기는 계속된다. 잘못차서 논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던지? 아니면 지나가는 버스나 트럭이 납작하게 뭉개놓기까지는 차고 또 차댔다. 불편한 다리를 가지고도 비틀거리며 깡통을 차대던 추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오로지 깡통에 몰두하며 차다보면 걷는 지루함도 잊을 수 있었고 은근히 쌓인 스트레스도 풀어지는 듯하였다. 열심히 차대는 과정 속에서 결코 깡통은 깡통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간혹 깡통을 찬다는 것이 돌부리를 걷어차서 한참이나 발을 붙들고 신음소리를 내야하지만 그래도 그 시절에는 그만한 놀이가 없었다. 깡통은 나름대로 씀씀이가 다양했다. 냇가에서 고기를 잡아 담아오기도 하고 보름날 깡통에 송송구멍을 뚫어 나뭇가지를 넣고 불을 붙여 돌리면 천하를 다 가진듯한 쾌감이 있었다. 저만치 돌려대는 승수의 불 깡통과 내 것이 조화를 이루며 추운 겨울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불놀이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동리 어른들이 쌓아놓은 거대한 집단에 불이 붙으며 장관은 연출되었다.

 

 

 나는 약간 외골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 먼 거리를 초지일관 깡통을 차댄 것을 보면 무언가에 꽂히면 무섭게 직진하는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면 끝까지 하고 안하려면 처음부터 시작을 말고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조금은 느슨해 지는듯하지만 아직도 그 근성은 남아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다 나 같지 않다는 것이다. 시작은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 헐렁해지고 책임감 없이 유야무야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깡통을 차다가 금방 그만두는 타입이랄까? 처음과 끝이 일관된 사람을 찾는 일은 힘든 것 같다.

 

 

 이민사회를 들여다보면 모임이 참 많다. 학교 동문 모임, 그 유명한 해병대로부터 3군 모임, 향우회 모임, 같은 업종 모임 등. 외로운 타국에서 친목하며 교제하는 그룹들이 많다. 나도 그 모임 가운데 고문이나 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술을 돌리고 사담을 하다 헤어지는 모임은 나중에 시들해지는 것을 발견한다. 내가 고문을 맡고 있는 모임은 비록 소수가 모이지만 예배를 드리고, 현안을 의논하고 회비를 모아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바람직한 일들을 추구하며 30년의 세월을 끈끈하게 이어오고 있다.

 

 

 시작은 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관심이 줄어드는 것은 어찌 보면 인지상정’(人之常情)일수도 있다. 하지만 방향을 바람직하게 잡고 회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줄때에 그 모임은 역동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모임을 결성하고도 적극성을 띠지 못하는 회원들로 인해 얼마 못가서 사라져간 모임이 이민사회에 수두룩하다. 안타깝다. 결국 인생에서 남는 것은 사람인데 말이다. ‘초지일관’(初志一貫)하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이다. 그것은 책임감과도 직결된다. 책임지지 않는 사회가 오늘날의 병폐이다.

 

 

 일단 눈에 들어온 깡통을 놓치지 않고 차고 또 차서 마지막 집 앞 쓰레기통에 집어넣듯이 일단 시작을 하고 약속을 했으면 끝까지 진행하는 끈기가 아쉬운 세상이 되었다. 나도 이래저래 몸담은 모임이 많다. 모임을 이어가다보면 돌발행동을 하는 팀원에게 저으기 실망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에 휘둘리다보면 모임은 이어질 수가 없다. 항상 다른 것을 인정하고 묵묵히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깡통얘기를 하다가 엉뚱한 곳으로 글이 흐르는 것 같지만 그 사람의 한 가지 행동이 전인격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이 되는 듯하다. 바람직한 방향이라면 한번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함께 가야하지 않을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족도 말이다. 이왕 차기 시작한 깡통을 집까지 몰고 가는 일념으로 오늘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작은 성의가 필요하다.

  인생은 직진 아닐까?

 


  1. No Image

    때 이른 성공

    신동이란 어린 나이에 별스런 재주를 나타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지식은 물론, 예 · 체능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할때에 그런 명칭이 붙는다. 일단 그를 낳은 부모들이 자긍심을 느끼고, 주위 사람들의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시대에도 신...
    Views4555
    Read More
  2. No Image

    발가락 시인

    이흥렬 씨. 그는 선천적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에게 가장 큰 애로사항은 언어소통이다. 사람을 만나면 힘겹게, 너무도 힘겹게 말을 이어가야 한다. 말들은 쉽사리 그의 입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한동안 그의 온 몸을 휘젓고 다닌 끝에야 가까스로 그...
    Views4351
    Read More
  3. No Image

    나는 멋진 사람

    대부분 핸드폰을 열면 가족사진이나 풍경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독특하게 내 폰은 배경이 나다. 언젠가 가족모임을 가지면서 독사진을 찍었는데 내 웃는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이다. 며칠 전, 지인과 대화 중에 내 핸드폰을 보며 “특이하시네요. 핸드폰 ...
    Views4341
    Read More
  4. No Image

    미치겄쥬? 나는 환장하겄슈!

    인생은 초보부터 시작한다. 처음은 다 어설프고 우수꽝스러워 보이지만 인생은 다 초보부터 시작하였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초보」하면 생각나는 것이 운전이다. 장애인이기에 운전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했는데 누가 “한국도 장애인들...
    Views4369
    Read More
  5. No Image

    생명의 신비

    장애인에게 결혼은 넘어가야 할 큰 장벽이다. 보통 청년들은 자연스럽게 짝을 만나고 결혼을 한다. 하지만 장애라는 아픔을 안고 사는 장애인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장애인사역을 하는 분들이 나누는 명언 아닌 명언이 있다. “여자 천사...
    Views4475
    Read More
  6. No Image

    가정을 한 글자로

    장성하여 혼기가 차면 짝을 찾아 결혼을 한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이미 긴 세월 결혼생활을 해 온 분들에게 묻고 싶다. ‘만약 지금의 배우자가 아닌 그 시점에서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어떤...
    Views4605
    Read More
  7. No Image

    누구나 장애인

    초청받은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예배 후 친교를 시작하면 하나둘 내 곁에 모여든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목사님, 저도 장애인입니다.”이다. 일단 거부감이 들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장애가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누군가...
    Views4484
    Read More
  8. No Image

    어차피 인간은 외로운 존재인가?

    한국에 가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함이다. 물론 목사이기에 여러 교회를 다니며 설교를 하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고국의 품이 그리워 찾아가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회귀본능이 고개를 든다. 어린 나이에 이민을 온 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Views4671
    Read More
  9. No Image

    그 이름 그 사람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다. 사실 이름은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붙여지는 고유명사이다. 이름은 태어나서만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태에 잉태된 순간에 붙여지는 이름도 있다. 바로 ‘태명’(胎名)이다. 태명이 태명으로 끝나는 경...
    Views4583
    Read More
  10. No Image

    웃으면 행복해져요!

    사람과 짐승이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만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는 웃지 못한다. 사람만이 다양한 소리를 내며 웃을 수 있다. 하기에 웃음을 “만국공통어”라고 한다. 웃음소리만 들어서는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구분이 안...
    Views4638
    Read More
  11. No Image

    죽고 싶은 당신에게

    택시를 탔다. 기사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뜬금없이 “자신이 자살 시도를 세 번이나 했었다”고 털어놓는다. 저으기 당황하며 이유를 물었다. “나이 어린 젊은 진상 손님들로 인해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었습니다.” 상상이 갔다. 줄곧...
    Views4452
    Read More
  12. 아, 청계천!

    나는 지금 한국 방문 중이다. 중요한 일정 중에 하나는 한국 장애인의 날에 나의 모교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채플에서 설교를 하는 귀한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20일(수) 오전 11:30분. 강단에 올라 무릎을 꿇었다. 가슴 한켠에서 무언가 ‘울컥&rsqu...
    Views4662
    Read More
  13. No Image

    생일이 뭐길래?

    평범한 주부의 고백이다. 며칠 전에 생일을 지나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고 했다. 하필 전날이 작은 딸의 생일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을 위해 미역국을 끓이고 딸 친구들을 초대하여 자그마한 파티도 열어주었다. 즐겁고도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Views4499
    Read More
  14. No Image

    산다는 건 그런거지!

    감동 없이 사는 삶은 형벌이다. 사람들은 만나면 습관적으로 묻는다. “요즈음 재미가 어떠세요?” 혹은 “신수가 훤한 것을 보니 재미가 좋으신가봐요?” 재미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삶에는 모름지기 재미가 있고 감동이 있어야 한다...
    Views4609
    Read More
  15. No Image

    몸은 영혼을 담은 그릇

    사람은 영혼과 육체를 가지고 있다. 영혼은 그냥 영(靈)이라고하고 육체는 몸이라고 한다. 몸은 “모음”의 준말이다. 다 모여 있다는 말이다. AI 시대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뇌는 못 따라간다. 뇌에서 Enter를 치면 몸은 그대로 움직인다. ...
    Views4744
    Read More
  16. No Image

    인생의 평형수

    만물은 항상 평형을 유지하려는 본성을 지닌다. 때로 외부로부터 충격이 가해지며 평형상태가 무너질 때가 있는데 이 찰나에 미미하나마 다시 평형상태로 되돌아가려는 힘을 복원력이라고 한다. 복원력이 가장 중요하게 적용되는 것이 물위에 배이다. 급격한 ...
    Views4284
    Read More
  17. No Image

    도랑

    서종(양평)에서 나는 3년동안 초등학교를 다녔다. 지제, 강상, 양평초등학교를 거쳐 아버지의 인사이동을 따라 산골 깊이 서종초등학교로 전학을 해야 했다. 지금은 카페촌이 들어서고 골짜기마다 분위기 좋은 별장이 즐비한 곳이 되었지만 당시는 촌(村)이었...
    Views4472
    Read More
  18. No Image

    너는 자유다!

    오래전 “Who am I ?”라는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에 “정글만리”를 펴낸 조정래 선생이 출연하였다. 노구의 비해 낭랑한 목소리와 소년의 미소가 정겹게 다가왔다. 강연 내내 푸근하게 떠올라 있는 미소와 너그러움이 참 편안하게 느껴...
    Views4699
    Read More
  19. No Image

    아내의 존재

    내가 어릴때는 아버지의 존재가 너무도 커보였다. 형제끼리 이방 저방을 오가며 장난을 치고 호들갑을 떨며 어수선하다가도 아버지가 퇴근을 하고 집에 오시면 일순간 조용해 졌다. 식사 중에 대화를 하면 “밥풀이 튄다”고 절제를 시켰고, 밥숟가...
    Views4683
    Read More
  20. No Image

    시각 장애 반장

    장애를 안고 통합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는 특수학교가 인기가 있었다. 종로에 “명휘원” 광진구에 있는 “정립회관”이 그곳이다. 어떤 면에서 장애를 가진 학생들끼리 편견없이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Views493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