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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의 여름은 한국처럼 끈적거리거나 따갑지 않아서 좋다. 가는 곳마다 울창한 숲이 우거져있고 간간히 숲을 적시는 빗줄기가 있기에 그렇다. 한낮에는 기온이 치솟다가도 밤중에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처음 미국 서부로 이민을 와서 화창한 날씨는 마음에 들었지만 가끔은 가슴을 적시는 빗소리가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다가 필라에 와서 그리운 빗줄기를 만났다. 그해 여름은 희한했다. 낮에는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다가도 밤이면 시원하게 소낙비가 쏟아져 대지를 식혀주었다. 아침 출근길에 마주하는 필라의 풍경은 얼마나 싱그러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필라델피아에 젖어 산지 이제 9년차에 접어든다. 수십 년 전에 이민을 오셔서 자리를 잡고 사는 분들에 비하면 햇병아리지만 이젠 나도 어엿한 필라 사람이다. 어쩌다 타주에 출타했다가 필라 공항에 내리면 편안해 지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한곳에 정을 주고 사람들을 사귀고 삶의 이야기를 이어간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인 것 같다. 그것도 미국 땅에서 필라델피아에 자리를 잡고 이웃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그렇지 아니한가!

그렇게 세월이 흘러 선뜻 가을 문턱에 서있다. 새벽에 일어나면 이제 귀뚜라미 소리가 적막을 깨는 것을 보면 가을이 성큼 창밖에 서있음을 느낀다. 젊은 날에는 가을이 오는 것이 기대가 되고 가슴이 설레었는데 이제는 가을이 오면 한해의 끝자락이 보이면서 나이가 더해지는 날이 가까워옴이 너무도 두렵다. 가을은 원래 “갈“에서 왔다. 그 말처럼 금방 지나가버리는 것이 ”가을“이리라! 세월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지 말라고 가을은 그 막바지에 화려한 가을 옷을 보여주며 우리를 현혹한다. ”단풍“이라는 것이 사실 초록이 지쳐 만들어진 나무 편에서 보면 슬픈 자화상임에도 그 황홀한 모습에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세월의 흐름을 잠시 잊어버린다.

한국의 가을녁은 온통 황금물결이다. 익어가는 벼이삭 위로 참새 떼는 먹을 것을 찾아 군무를 춘다. 논 가운데 서있는 허수아비의 모습이 너무 인자로워인지 참새들은 겁 없이 곡식을 축내고 있다. 둥근 호박은 붉은빛을 띄우며 조화를 이루고 서서히 잎새들을 떠나보내며 알알이 익어가는 ‘감’이야말로 예술 그 자체이다. 부지런한 농부들의 손길이 갖가지 농산물을 어루만지며 가을은 풍요로움을 더해 간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모두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지었다. 굴뚝을 타고 나오는 연기가 자욱이 마을을 감싸고 나무 타는 냄새와 구수한 밥 냄새가 코끝을 스치며 기분 좋은 현기증을 일으켰다. 산마루에 걸린 석양과 어우러져 어린 가슴에 동화를 심었다. 그렇게 내 가슴은 부자가 되어 이제 필라에서 그 가을 이야기를 토해내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면 마당 한가운데를 맴도는 고추잠자리를 만난다. 잡힐듯이 잡히지 않는 고추잠자리 떼는 그렇게 돌고 돌고 또 돌며 가을을 돌려댔다.

인생은 계절과 같다. 어린 시절을 봄이라고 한다면 청장년시절은 싱그러운 여름이다. 그러고보면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가는 우리세대는 “가을”이다. 가을은 아름답다. 가을은 풍요롭다. 가을은 가꾼 사람의 가슴에 열매를 안겨준다. 그러면서도 가을은 냉정하다. 젊은 날에 땀을 흘리고 최선을 다해 달려온 만큼만 결과를 돌려주기 때문이다. 가을을 즐기기 전에 가을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에게나 가을은 온다. 아직 자신이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래서 언젠가 찾아올 가을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가을을 지나고 있는 분들은 이 가을을 즐겨야 한다. 왜냐하면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기 때문이다.

일년 사계절을 지내면 한해가 다 지나가듯이 인생의 사계절이 흐르고 나면 우리는 내세를 준비해야 한다. 이 세상이 결코 끝이 아니다. 이 세상이 끝나면 반드시 저 세상이 다가온다. “천국이냐, 지옥이냐?” 그것은 내게 생명이 존재하고 있을때에 이미 결정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고 천국을 준비하고 사는 사람에게는 이 가을이 더 의미있고 행복한 계절이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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