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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05:36

덕구의 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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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선교단 설립 25주년을 기념하는 연극 “빈방있습니까?”가 지난 주간 나흘동안 이어졌다. “덕구”는 연극 “빈방있습니까?”의 주인공 이름이다. 그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 지능이 현저히 낮고 말이 어눌하다. 성탄절이 다가오며 그가 다니는 교회 고등부에서 성탄극 “빈방있습니까?” 공연을 기획하게 된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자신에게 어떤 배역을 줄 것인가?’에 관심을 모은다. 은근히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이 그 시절에 아이들에게 있는 공통된 욕심이다. 기대했던 배역이 주어지지 않아 속상해 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은 곧 선생님의 결정에 순응하게 된다.

문제는 선생님이 여관 주인 역에 “덕구”를 배정하면서 시작된다. 아이들은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직접적으로 “덕구”를 비하하지는 못하지만 은근히 반대하는 입장을 내비춘다. “덕구”를 가슴으로 사랑하는 선생님은 아이들의 강력한 반대를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그에게 배역을 맡기게 되고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게 된다. 이미 예측은 했지만 지적장애인 “덕구”가 연극을 소화해 내는 것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끝까지 믿어주고 서로를 배려하며 연습은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덕구”역은 극단 <증언>의 대표인 “박재련 장로”가 맡아 열연을 한다. 20대 후반부터 무려 31년 동안 오직 “덕구”역을 감당해 온 그가 몹시 존경스러웠다. 그는 현재 동숭교회의 시무장로이며 <서울예술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그의 커리어를 모두 내려놓고 장애인 “덕구”가 되어 관중들을 끌고 다닌다. 천연덕스러운 바보연기를 하면서도 절제된 연기력으로 사람들의 눈에서 결국 하얀 액체를 뽑아내고야 만다. “덕구”를 연기하며 그의 청춘은 흘러갔고 내년이면 환갑을 맞이하는 시간에 도달하는 그는 실로 달인이요, 장인이었다.

연극을 지켜보며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또한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예뻐하시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행복했다. 함께 움직이는 극단 <증언>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엄청난 부피와 무게의 소품가방을 나르고 묵묵히 무대장식을 하고 땀을 흘리며 연기를 하고는 또다시 소품을 챙기는 그들의 노고가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웠다. 무려 네 번이나 같은 연극을 보면서 친해질대로 친해진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열연을 펼칠때에 나는 어두운 예배당 한구석에서 동포들과 함께 웃다가 눈물을 훔쳐냈다. 우리 밀알선교단에는 “덕구”가 많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마음은 앞서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몸이 건강한 사람들과 똑 같은 소망이 그들에게도 있건만 그 꿈을 이루는 것은 요원할 뿐이다. 극중 만삭의 마리아를 대동한 요셉이 여관주인인 “덕구”에게 묻는다. “주인장, 빈방있습니까?” 그 물음에 대한 대사는 오로지 “빈방 없습니다.”이다. 하지만 “덕구”는 예수님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외친다. “빈방이 있습니다.” 결국 연극은 엉망이 되고 말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덕구”는 되뇌인다. “어떻게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에게 ‘방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연극이지만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동은 인생관 자체를 바꾸어 놓을 수 있음을 깨달 았다. “덕구”의 순수한 모습은 혹시 잃어버리고 살았던 우리의 정서를 일깨워 주는 역할을 했으리라! 인생은 어차피 연극이 아닐까? 맡겨진 배역에 충실하면서도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며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삶이라면 얼마나 이상적일까? 추운 겨울밤에 공연장을 찾아와 연극 “빈방 있습니까?”를 관람한 분들의 가슴 한켠에 숨겨져 있던 겨자씨만한 믿음이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오염된 내 모습을 발견하고 정화하는 귀한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들은 공연을 마치고 떠나갔다. 내 가슴에 구멍하나를 뚫어놓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1월에 가슴 떨리는 크리스마스를 또다시 경험하였다. 나는 장애인들이 예쁘다.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장애인들이 그들의 배역에 감사하며 내가 서있는 그 자리에서 예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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