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7.10.21 13:56

감성 고뇌

조회 수 5599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가을.jpg

 

 가을이 왔는가보다 했는데 한낮에 내리쬐는 햇살의 농도는 아직도 여름을 닮았다. 금년은 윤달이 끼어서인지 가을이 더디 오는 듯하다. 따스한 기온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가을 정취에 흠뻑 취하고 싶어 하는 감성적인 사람들에게는 은근히 방해가 되는 것 같다. 나는 감성적인 성격을 소유하고 있다. 그것은 워낙 걸음걸이가 느려서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빨리 걷지 못하는 약점이 감성으로 나를 몰아간 것 같다. 항상 천천히 그리고 쉬면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음미하던 습성이 풍부한 감성을 소유하게 만들었다.

 

 감성욕구를 채우기 위해 총각시절에는 일주일에 한번 영화 한편을 보아야했고 야구장을 찾았다. 음악회나 미술관을 둘러보는 일도 일상이었다. 특히 성탄절이 지나고 나면 연말여행을 떠났다. 겨울바다를 그래서 자주 찾았고 아무 생각 없이 한해의 삶의 찌꺼기를 걸러내고는 아무 일 없었던 듯 새해 사역에 복귀하였다. 하지만 결혼을 하며 그 모든 것은 접어야만했다. 일단 아내와 나는 취향이 일치하지 않았고, 담임목회는 나에게 감성을 추구할 여유를 용납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감성보다는 현실적응에 우선순위를 두어야했다.

 

 지금도 가을이 오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이 치고 올라온다. 그럴 때 찾아가는 곳이 "New Hope"이다. 낭만적인 목조다리를 건너가면 오른편에 자그마한 카페가 드리워있다. 창 쪽 테이블을 마주하고 진한 향에 커피를 마신다. 다양한 피부의 사람들이 오고가고 그들의 표정에서 계절의 움직임을 읽는다. 금년에는 단풍이 늦게 찾아오는 듯하다. 각양각색의 단풍이 눈처럼 날리는 숲속을 달리고 싶다. 감미로운 음악을 틀어놓고 질주하며 가을에 취하고 싶다. 필라의 가을은 그래서 정겹고 푸근하다.

 

 그런데 문제는 삶은 감성이 안 통한다는 것이다. 공부를 해도, 사업을 해도, 회사업무를 감당해도 이지적이어야 한다. 간혹 사업을 해서는 안 될 사람이 손을 대었다가 낭패를 당하는 모습을 본다. 비즈니스 마인드가 없는 사람은 절대 사업에 손을 대면 안 된다. 그런데 당뇨환자가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라면, 자장면’이 자꾸 땡기듯이 은사가 없는 사람이 사업에 집착하는 희한한 장면을 목격한다. 감성을 용납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사업이다. 지나치게 표현하면 현실은 냉혹하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만이 사업을 경영할 수 있다.

 

 왜 연예인들에게 결혼파탄이 쉽게 찾아올까? 감성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감성의 산출이다. 다 사랑해서 결혼을 한다. 연애감정을 평생 유지할 수 있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아니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결혼 1년차는 남자는 말하고 여자는 듣는다. 결혼 2년차가 되면 여자가 말하고 남자가 듣는다. 결혼이 3년차에 접어들면 둘 다 말하고 이웃이 들어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낭만, 애틋, 그윽한 눈빛, 안보이면 보고 싶어 견디지 못하는 부부는 소설에나 등장하는 픽션이다. 따라서 감성적인 사람은 결혼생활을 이어가기가 힘들다.

 

 언젠가 막차를 탄 듯한 부부를 상담했다. 아내는 음악전공자이고, 남편은 건실한 직장인이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컴맹이던 아내가 자판에 익숙해지더니(피아노를 치는 사람이라 금방 익힘) 채팅으로 한 남자를 만났다. 가슴이 ‘뻥’ 뚫리는 대화가 너무 좋았다. 결국 감성이 풍부한 그 남자에게 가고 싶어 했다. 상황을 직시하도록 논리를 펴며 설득해 보아도 그 여인은 전혀 요동하지 않았다. 들리는 이야기가 결국 남남이 되었단다.

감성론자들은 고뇌하며 오늘도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에 머리는 차게 가슴은 뜨겁게 창조하셨다. 냉정한 이성은 현실감각을 발달시킨다. 하지만 때로는 잡히지 않지만 다가오는 무언가에 손을 내어밀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

 감성과 현실의 골은 너무도 깊다. 틈바구니에서 고뇌하는 그대를 위로하고 싶다.


  1. No Image

    시각 장애 반장

    장애를 안고 통합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는 특수학교가 인기가 있었다. 종로에 “명휘원” 광진구에 있는 “정립회관”이 그곳이다. 어떤 면에서 장애를 가진 학생들끼리 편견없이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Views4930
    Read More
  2. No Image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작가의 삶과 작품은 연관성을 갖는다. 내 글에 내 인생의 체취가 묻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책 이름이 하도 특이해서 손에 잡았고, 흥미진진하게 단숨에 읽어 나아갔다. 작가 전민식은 실로 꼬인 인생을 살았다. 한마디로 되는 일이 없는 사나이였다. 그러던 ...
    Views4784
    Read More
  3. No Image

    군밤

    모처럼 한국 친구 목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친구야, 용인에서 먹던 <묵밥>이 먹고 싶다.” 외쳤더니 한참을 웃다가 “너는 기억력도 좋다. 언제든지 와 사줄게.”하는 대답이 정겹게 가슴을 파고든다. 30대였을거다. 추운 겨울날에 친...
    Views5087
    Read More
  4. No Image

    어른이 없다

    아버지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던 시대에 나는 자라났다. 학기 초 학교에서 내어준 가정환경조사서의 호주 난에는 당연히 아버지의 이름 석자가 자리했다. 간혹 엄마의 목소리가 담을 넘는 집도 있었지만 그때는 대부분 아버지가 가정의 모든 의사결정을 주도하...
    Views5262
    Read More
  5. No Image

    명절이 더 외로운 사람들

    지난 1월 22일은 우리나라 고유명절인 설날이었다. 명절은 누구에게나 기대감과 설레임을 안긴다. 하지만 일부 장애인에게는 해당이 안되는 것 같다. 안타까운 소식은 매년 100여명의 장애인이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버려진 장애인들은 ‘장애와 고...
    Views5501
    Read More
  6. No Image

    잊혀져 간 그 겨울

    겨울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날씨는 음력이 정확하게 이끌어 주는 것 같다. 설(22일)을 넘어 입춘(2월 4일)이 한주 앞으로 바싹 다가서고 있다. 불안한 것은 눈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별걱정을 다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겨울이 겨울답지 않...
    Views5128
    Read More
  7. No Image

    백수 예찬

    젊었을때는 누구나 쉬고 싶어한다. ‘언제나 마음놓고 쉬어볼까?’하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삶에 열중한다. 아이들의 재롱에 삶의 시름을 잊고 돌아보니 중년이요, 또 한바퀴를 돌아보니 어느새 정년퇴직에 접어든다. 한국 기준으로 보통 60세가 ...
    Views5389
    Read More
  8. No Image

    겨울에도 꽃은 핀다

    사람의 처지가 좋아지면 꽃이 피었다고 표현한다. 여성을 비하한다는 위험성이 있지만 한때는 여성들을 곧잘 꽃에 비유했다. 바라만 보아도 그냥 기분 좋아지는 존재, 다르기에 신비로워서일까? 꽃을 보며 인상을 쓰는 사람은 없다. 어여쁜 꽃을 보면 누구나 ...
    Views5832
    Read More
  9. No Image

    돋는 해의 아침 빛<2023년 첫칼럼>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해돋이를 위해 산이나 바다로 향한다. 따지고 보면 같은 태양이건만 해가 바뀌는 시점에 바라보는 태양의 의미는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목사이기에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며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모습이요, 삶이 된 것 같다. ...
    Views5827
    Read More
  10. No Image

    그래도 가야만 한다<송년>

    밀알선교단 자원봉사자 9학년 남학생에게 물었다. “세월이 참 빠르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란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그렇구나, 세월이 안간다’고 느끼는 세대도 있구나! 그러면서 그 나이에 나를 생각해 보았다. 경기도 양평...
    Views6144
    Read More
  11. 명품

    누군가는 명품 스포츠용품만 애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흔히 신는 운동화 하나가 그렇게 고가인 줄은 전혀 몰랐다. 20년 전,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을 때이다. 한국에서 절친이 찾아왔는데 갑자기 “‘로데오거리’를 구경하고 싶다&rdquo...
    Views5864
    Read More
  12. 겨울 친구

    겨울의 차디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그래도 실내에 들어서면 온기가 충만하고 차에 올라 히터를 켜면 금방 따스해 지니 다행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겨울은 너무도 추웠다. 지금보다 날씨가 더 추웠는지 아니면 입은 옷이 시원치 않아서 그랬는지 그때는 ...
    Views5899
    Read More
  13. 누가 ‘욕’을 아름답다 하는가?

    사람은 만나면 말을 한다. 조용히, 어떨 때는 큰 소리로, 부드럽게 말을 할 때도 있지만 거칠고 성난 파도가 치듯 말을 하기도 한다. 말 중에 해독이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욕’이다. 세상을 살면서 욕 한마디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나는 비기...
    Views6326
    Read More
  14. 인연

    어느새 2022년의 끝자락이다. 3년의 길고 지루했던 팬데믹을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금년 세모는 서러운 생각은 별로 안드는 것 같다. 돌아보니 금년에도 바쁘게 돌아쳤다. 1월 새해 사역을 시작하려니 오미크론이 번지며 점점 연기되어 갔다. 2월부터 ...
    Views5640
    Read More
  15. 인생을 살아보니

    젊을때는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스쳐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달려 나가는 청춘은 힘겹고 모든 것이 낯설다. 넘어지고 깨어지고 실수하지만 멈출 수도 없다. 학업, 이후의 취업. 그리고 인륜지대사 결혼. 이후에는 더 높은곳을 향...
    Views6292
    Read More
  16. 웃는 모습이 아름다워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인생에게 주어진 은총이다. 태어나 요람에 누우면 부모의 숨결, 들려주는 목소리가 아이를 만난다. “엄마해 봐, 아빠 해봐” 수만번을 어우르며 외치다 보면 드디어 아이의 입이 열린다. 말을 시작하며 아이는 소통을 시작한...
    Views6304
    Read More
  17. 결혼의 신기루

    연거푸 토요일마다 지인의 자녀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분주하게 보내고 있다. 바야흐로 결혼 시즌이다. 코발트색 가을하늘. 멋진 턱시도와 눈부신 웨딩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신랑 신부의 모습은 진정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영롱하다. 필라에는 정말 멋진 야외 ...
    Views6502
    Read More
  18. 기다려 주는 사랑

    누구나 눈을 뜨면 외출을 한다. 사업이나 직장으로, 혹은 사적인 일을 감당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누군가 출입문을 나설때면 배웅을 해준다. 덕담을 곁들여서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께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깍듯이 인사를 하고 등교를...
    Views6243
    Read More
  19. 완전할 수 없는 인간의 그늘

    사람은 생각할수록 신비로운 존재이다. 우선 다양성이다. 미국에 살기에 실감하지만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를 뿐 아니라 문화가 다르다. 따라서 대화를 해보면 제스추어도 다양하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정적이다. 대부분 목소리 톤이 낮다. 끄덕이며, 반...
    Views6341
    Read More
  20. 존재 자체로도 귀한 분들

    이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부모를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일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뿌리이다. 부모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없다. 묻고 싶다. “과연 나는 나의 부모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학력, 인격, 경제력, 기타 어떤 조건을 ...
    Views606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