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3813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월급봉투.png

 

  서민들에게 월급봉투는 생명 줄과 같다. 애써 한 달을 수고한 후에 받는 월급은 성취감과 새로운 꿈을 안겨준다. 액수의 관계없이 월급봉투를 받아드는 순간의 희열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안다. 세대가 변하여 이제는 온라인으로 급여를 받는다. 편리할지는 모르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손맛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다. 월급이 통장에 오래 머물러 주면 얼마나 좋을까? 많이 벌면 어찌 그리 지출항목은 많고 많은지. 실로 월급은 통장을 스쳐지나갈 뿐이다. 야속하기 그지없지만 한 달 만에 또다시 찾아오는 월급을 받아들며 삶의 시름을 잠시 잊는다.

 

 나의 아버지는 경찰공무원이셨다. 멋진 제복에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그려진 모자를 쓰시면 그 누구보다 보무당당하고 멋지셨다. 매달 말이 되면 아버지는 거나하게 취한 모습으로 퇴근을 하셨다. 가슴팍에 노오란 봉투를 담고 말이다. 마중하는 어머니를 향해 아버지는 그 봉투를 내어 미셨고 살림 잘해요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봉투를 받아들고 어머니가 항상 하시는 말 이 월급가지고 할 살림이 어디 있어요?” 그래도 월급봉투를 받아드는 어머니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알았다. 여자는 돈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어머니는 안방에 들어가셔서 봉투에 든 월급을 쏟아놓고서 외상값 계산부터 하셨다. “이것은 쌀집에 주고, 가게에, 이것은 계돈내고 등등그러다가 어머니 입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애고~ 이것 갖고 어떻게 살아야지?” 어린 내 눈에는 저렇게 많은 돈을 앞에 두고 근심 섞인 표정을 짓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호기심 많은 나는 엄마 옆에 앉아 아버지가 가져온 월급봉투에 적힌 명세서를 읽어 내려간다. 봉급, 수당 조항부터 뜻 모를 항목이 깨알 같이 박혀있었다. 그 당시에는 월급봉투를 어머니에게 건네는 아버지가 꽤나 존경스러웠다.

 

  대학에 떨어진 후 한동안 백수로 살아야 했다. 장애가 있어 남들처럼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재수할 형편도 못되어 기타와 라디오를 벗 삼아 긴긴 하루를 보내야 했다. 아마 그때가 내 생애 가장 더디 간 긴 시간으로 기억된다. 고교 동창 절친 장배는 일찌감치 아버지가 다니는 대한항공에 취업을 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참 부러웠다. 그 친구의 월급날이 되면 내가 오히려 바빴다. 모처럼 맛있는 저녁도 먹고 술 한 잔도 기울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백수인 나를 여전히 챙기는 친구의 의리가 행복했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을 그가 가끔은 그래서 그립다.

 

  22살 하나님의 강권적인 섭리로 신학대학에 들어갔다. 신학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지만 내가 갑자기 성자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학년이 올라가며 유년주일학교 전도사 임명을 받았다. ‘내가 전도사님이라고?’ 열심히 한 달을 사역 한 후 담임 목사님이 교역자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내어 민 노오란 봉투. 사례비였다. 내 생애 처음으로 받아보는 봉급이었다. 집에 와서 세어보니 7만원이었다. 그때 기분은 하늘을 날았다. 성직이기에 사례비이지 월급이었다. 미국은 주급이 익숙하지만 월급봉투를 기다리며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스텔라 장이라는 가수가 있다. 중학교 때 프랑스로 유학을 갈 정도로 음악의 귀재이다. 얼마 전에 그녀가 발표한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이라는 노래가 가슴에 들어왔다. “어서 와요 곧 떠나겠지만 잠시나마 즐거웠어요 잘 가세요 하지만 다음엔 좀 오래오래 머물다가요/ 난 매일 손꼽아 기다려 한달에 한번 그댈 보는 날 가난한 내 마음을 가득히 채워 줘/ 눈 깜짝하면 사라지지만 난 그대 없인 살 수 없어 왜 자꾸 나를 두고 멀리 가 가난한 내 마음을참 요사이 젊은이들의 감성은 천재적이다.

 

  받아들 월급을 기대하고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그대가 있어 세상은 오늘도 순조롭게 순항되고 있다. 스치는 월급이 아니라 한동안 머물러줄 때가 오기를 고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래서 행복하다.

 


  1. No Image

    아내의 존재

    내가 어릴때는 아버지의 존재가 너무도 커보였다. 형제끼리 이방 저방을 오가며 장난을 치고 호들갑을 떨며 어수선하다가도 아버지가 퇴근을 하고 집에 오시면 일순간 조용해 졌다. 식사 중에 대화를 하면 “밥풀이 튄다”고 절제를 시켰고, 밥숟가...
    Views5480
    Read More
  2. No Image

    시각 장애 반장

    장애를 안고 통합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는 특수학교가 인기가 있었다. 종로에 “명휘원” 광진구에 있는 “정립회관”이 그곳이다. 어떤 면에서 장애를 가진 학생들끼리 편견없이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Views5679
    Read More
  3. No Image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작가의 삶과 작품은 연관성을 갖는다. 내 글에 내 인생의 체취가 묻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책 이름이 하도 특이해서 손에 잡았고, 흥미진진하게 단숨에 읽어 나아갔다. 작가 전민식은 실로 꼬인 인생을 살았다. 한마디로 되는 일이 없는 사나이였다. 그러던 ...
    Views5503
    Read More
  4. No Image

    군밤

    모처럼 한국 친구 목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친구야, 용인에서 먹던 <묵밥>이 먹고 싶다.” 외쳤더니 한참을 웃다가 “너는 기억력도 좋다. 언제든지 와 사줄게.”하는 대답이 정겹게 가슴을 파고든다. 30대였을거다. 추운 겨울날에 친...
    Views5797
    Read More
  5. No Image

    어른이 없다

    아버지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던 시대에 나는 자라났다. 학기 초 학교에서 내어준 가정환경조사서의 호주 난에는 당연히 아버지의 이름 석자가 자리했다. 간혹 엄마의 목소리가 담을 넘는 집도 있었지만 그때는 대부분 아버지가 가정의 모든 의사결정을 주도하...
    Views6062
    Read More
  6. No Image

    명절이 더 외로운 사람들

    지난 1월 22일은 우리나라 고유명절인 설날이었다. 명절은 누구에게나 기대감과 설레임을 안긴다. 하지만 일부 장애인에게는 해당이 안되는 것 같다. 안타까운 소식은 매년 100여명의 장애인이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버려진 장애인들은 ‘장애와 고...
    Views6352
    Read More
  7. No Image

    잊혀져 간 그 겨울

    겨울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날씨는 음력이 정확하게 이끌어 주는 것 같다. 설(22일)을 넘어 입춘(2월 4일)이 한주 앞으로 바싹 다가서고 있다. 불안한 것은 눈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별걱정을 다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겨울이 겨울답지 않...
    Views5788
    Read More
  8. No Image

    백수 예찬

    젊었을때는 누구나 쉬고 싶어한다. ‘언제나 마음놓고 쉬어볼까?’하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삶에 열중한다. 아이들의 재롱에 삶의 시름을 잊고 돌아보니 중년이요, 또 한바퀴를 돌아보니 어느새 정년퇴직에 접어든다. 한국 기준으로 보통 60세가 ...
    Views5995
    Read More
  9. No Image

    겨울에도 꽃은 핀다

    사람의 처지가 좋아지면 꽃이 피었다고 표현한다. 여성을 비하한다는 위험성이 있지만 한때는 여성들을 곧잘 꽃에 비유했다. 바라만 보아도 그냥 기분 좋아지는 존재, 다르기에 신비로워서일까? 꽃을 보며 인상을 쓰는 사람은 없다. 어여쁜 꽃을 보면 누구나 ...
    Views6482
    Read More
  10. No Image

    돋는 해의 아침 빛<2023년 첫칼럼>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해돋이를 위해 산이나 바다로 향한다. 따지고 보면 같은 태양이건만 해가 바뀌는 시점에 바라보는 태양의 의미는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목사이기에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며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모습이요, 삶이 된 것 같다. ...
    Views6676
    Read More
  11. No Image

    그래도 가야만 한다<송년>

    밀알선교단 자원봉사자 9학년 남학생에게 물었다. “세월이 참 빠르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란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그렇구나, 세월이 안간다’고 느끼는 세대도 있구나! 그러면서 그 나이에 나를 생각해 보았다. 경기도 양평...
    Views6957
    Read More
  12. 명품

    누군가는 명품 스포츠용품만 애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흔히 신는 운동화 하나가 그렇게 고가인 줄은 전혀 몰랐다. 20년 전,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을 때이다. 한국에서 절친이 찾아왔는데 갑자기 “‘로데오거리’를 구경하고 싶다&rdquo...
    Views6843
    Read More
  13. 겨울 친구

    겨울의 차디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그래도 실내에 들어서면 온기가 충만하고 차에 올라 히터를 켜면 금방 따스해 지니 다행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겨울은 너무도 추웠다. 지금보다 날씨가 더 추웠는지 아니면 입은 옷이 시원치 않아서 그랬는지 그때는 ...
    Views6628
    Read More
  14. 누가 ‘욕’을 아름답다 하는가?

    사람은 만나면 말을 한다. 조용히, 어떨 때는 큰 소리로, 부드럽게 말을 할 때도 있지만 거칠고 성난 파도가 치듯 말을 하기도 한다. 말 중에 해독이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욕’이다. 세상을 살면서 욕 한마디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나는 비기...
    Views7123
    Read More
  15. 인연

    어느새 2022년의 끝자락이다. 3년의 길고 지루했던 팬데믹을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금년 세모는 서러운 생각은 별로 안드는 것 같다. 돌아보니 금년에도 바쁘게 돌아쳤다. 1월 새해 사역을 시작하려니 오미크론이 번지며 점점 연기되어 갔다. 2월부터 ...
    Views6468
    Read More
  16. 인생을 살아보니

    젊을때는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스쳐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달려 나가는 청춘은 힘겹고 모든 것이 낯설다. 넘어지고 깨어지고 실수하지만 멈출 수도 없다. 학업, 이후의 취업. 그리고 인륜지대사 결혼. 이후에는 더 높은곳을 향...
    Views6996
    Read More
  17. 웃는 모습이 아름다워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인생에게 주어진 은총이다. 태어나 요람에 누우면 부모의 숨결, 들려주는 목소리가 아이를 만난다. “엄마해 봐, 아빠 해봐” 수만번을 어우르며 외치다 보면 드디어 아이의 입이 열린다. 말을 시작하며 아이는 소통을 시작한...
    Views7096
    Read More
  18. 결혼의 신기루

    연거푸 토요일마다 지인의 자녀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분주하게 보내고 있다. 바야흐로 결혼 시즌이다. 코발트색 가을하늘. 멋진 턱시도와 눈부신 웨딩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신랑 신부의 모습은 진정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영롱하다. 필라에는 정말 멋진 야외 ...
    Views7298
    Read More
  19. 기다려 주는 사랑

    누구나 눈을 뜨면 외출을 한다. 사업이나 직장으로, 혹은 사적인 일을 감당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누군가 출입문을 나설때면 배웅을 해준다. 덕담을 곁들여서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께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깍듯이 인사를 하고 등교를...
    Views6940
    Read More
  20. 완전할 수 없는 인간의 그늘

    사람은 생각할수록 신비로운 존재이다. 우선 다양성이다. 미국에 살기에 실감하지만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를 뿐 아니라 문화가 다르다. 따라서 대화를 해보면 제스추어도 다양하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정적이다. 대부분 목소리 톤이 낮다. 끄덕이며, 반...
    Views709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