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6.01.22 21:18

박첨지 떼루아!

조회 수 6072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박첨지.jpg

 

 내가 어린 시절에는 볼거리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에게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장난감이었다. 학교를 오가며 논길에 들어서면 거의 모든 것을 훑고 지나다녔다. 강아지풀을 잡아채어 입에 물고 다니는 것으로 시작하여 막 피어나는 도라지꽃을 터뜨리는 재미. 잠자리, 매미는 물론 개구리를 잡아 다양한(?) 방법으로 가지고 놀았다. 이제 막 밑둥에 푸른빛을 띄며 익어가는 ‘무’는 우리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강변에 깔려있는 땅콩과 참외밭, 수박밭은 좋은 표적이었다. 교문을 나서며 발견한 깡통을 이리저리 차며 집에까지 몰고 올 정도로 아이들은 놀이에 목말라했다.

 

 전기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해가 뜨면 일어나 움직이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이장 집에서 연결한 라디오 스피커에서는 오로지 KBS 국영방송만 울려 퍼졌다. 단조롭고 딱딱한 내용이었지만 사람들은 ‘지직’거리며 들려오는 방송내용에 울고 웃었다. 어린 우리들이 좋아하던 것은 오후 6시에 나오는 “국군의 방송”이었다. 씩씩한 군가로 시작하다가 연속극이 나오는데 전우애가 물씬 풍길 뿐만 아니라 전투장면에 터지는 폭탄과 총소리에 악동들은 매료되었다. 방송을 듣지 않으면 학교에 가서 대화에 낄 수 없기에 항상 줄거리를 꾀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박첨지 떼루아!”라는 인형극이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동네에는 달변에 손재주가 뛰어난 한분이 계셨다. 동네사람들에게는 조금 “괴짜”로 취급을 당했던 것 같다. 누가 뭐라고 하던지 그분은 매일 나무 인형을 깎으며 공연을 준비하셨다. 그분이 개발을 한 것인지? 아니면 전승되어 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박첨지 떼루아!”가 공연될 때면 어머니는 나를 대동하고 구경을 가셨다. 커다란 마당에 사람들이 모이면 앞쪽에 쳐진 천막위로 인형들이 떠오르며 극은 시작된다.

 

 천막 뒤에서는 그분과 변사들이 숨어 대사를 이어가는 “박첨지 떼루아!”는 볼거리가 없던 동네사람들에게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다. 잘 다듬어지거나 고운 모양의 인형이 아니었다. 투박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모양이었다. 그 나무 인형들이 번갈아 나와 변사들의 대사에 맞추어 ‘기우뚱’거리며 반응을 한다. 한창 공연을 하다가 “박첨지 떼루아!”하고는 옆의 인형에 박치기를 하면 다른 인형이 ‘쏙’ 들어가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내용은 거의 ‘권선징악’(勸善懲惡)이었고 그 당시 “박첨지 떼루아!”는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큰 역할을 했다. “박첨지 떼루아!” 공연이 끝나면 아이들은 한동안 그 흉내를 내며 다녔다. “박첨지 떼∽루∽아!”하고는 다른 친구의 머리를 박았다. 그 모습에 아이들은 또한번 자지러진다. 얼마 후 우리는 아버지의 인사이동으로 “서종”으로 이사를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부지런히 친구를 사귀고 부모님이 집안일로 포천에 가신 날. 나는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보았다. 어느새 안방은 아이들로 가득차고 “박첨지 떼루아!” 첫 공연이 시작되었다.

 

 각본을 내가 직접 쓰고 인형대신 아이들을 지도하여 연극을 준비했다. 막은 한창 유행하던 국방색 담요 끝에 줄을 매어 사용했다. 공연이 시작되며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배꼽을 잡았다. 그날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마지막에 특유의 억양을 넣어 “박첨지 떼∽루∽아!”를 합창하며 연극은 막을 내렸다. 그 끼와 재능은 젊은 전도사 시절, 교회 중고등부를 지도하며 “문학의 밤”을 진행하며 빛을 보았고 지금도 “밀알의 밤”을 연출하며 도움이 되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장인(匠人)을 보았다. 주위의 시선과 평판을 묵묵히 견뎌내며 “박첨지 떼루아!” 공연을 진행하는 그분은 거인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분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언뜻 들리는 소문에 그분은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어 <한국민속촌>에서 공연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역시! 한 우물을 파던 어르신의 모습이 아스라이 그려진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게다가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장인이요. 거인이다. 게다가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많은 사람이 행복해 진다면 더할 나위없는 값진 인생이 아닌가!


  1. 존재 자체로도 귀한 분들

    이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부모를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일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뿌리이다. 부모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없다. 묻고 싶다. “과연 나는 나의 부모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학력, 인격, 경제력, 기타 어떤 조건을 ...
    Views6778
    Read More
  2. 지금합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사정이 생기거나 여유가 있다고 생각되면 지금 할 일을 나중으로 미루게 된다. 그것이 흔한 일상이지만 사소한 게으름이 인생의 기회를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경험을 ...
    Views6900
    Read More
  3. 받으면 입장이 달라진다

    사람이 이 땅에 산다는 것은 “관계”를 의미한다. 숙명적인 “가족 관계”로부터 자라나며 “친구 관계” “연인 관계” 장성하여 가정을 꾸미면 “부부관계”가 형성된다. “인생은 곧 관계”...
    Views6749
    Read More
  4. 사랑, 그 아름답고 소중한 얘기들

    우리시대 최고의 락밴드 <송골매>가 “전국 공연을 나선다”는 소식을 들으며 저만치 잊혀졌던 추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송골매가 결성된 것이 1979년이니까 40여년 만에 노장(?)들이 무대에 함께 서는 것이다. 공연 테마가 “열정”이...
    Views6788
    Read More
  5. “밀알의 밤”을 열며

    가을이다. 아직 한낮에는 햇볕이 따갑지만 습도가 낮아 가을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가을은 상념의 계절이다. 여름 열기에 세월 가는 것을 잊고 살다가 스산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스치면 비로소 삶의 벤치에 걸터앉아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이제 곧 ...
    Views6851
    Read More
  6. 느림의 미학

    얼마 전, 차의 문제가 생겨 공장에 맡기고 2주 동안이나 답답한 시간을 지내야만 하였다.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친구 목사의 전화였다. “내가 데리러 갈테니까 커피를 마시자”는 내용이었다. 친구의 차를 타고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대...
    Views6637
    Read More
  7. 내 나잇값

    나는 젊어서부터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철학이 있다. “세부류와는 절대 싸워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불신자, 여자, 연하이다. 목사이다보니 신앙이 없는 사람을 이길 확률이 없다. “당신 목사 맞아” 그러면 끝이다. 여자를 이기려고 ...
    Views6648
    Read More
  8. 또 다른 “우영우”

    지난 23일. 대구에서 30대 엄마가 자폐 증세가 있는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2살 아들을 흉기로 살해한 뒤 아파트 베란다 아래로 뛰어내려 숨진 것이다. 집 안에서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라는 내용을 담은 유서가 발견되...
    Views6620
    Read More
  9. 시간이 말을 걸어 올 때까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70년대만 해도 선교사를 파송하면 현지에서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였다. 불타는 열정으로 선교지에 도착하였다 하더라도 6개월은 아무일도 못하게 한다. 답답해도 참아야 한다. 그 기간이 차면 서서히 선교활동을 시작한다. ...
    Views6616
    Read More
  10. 바람길

    무덥던 여름 기운이 기세가 꺾이며 차츰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그렇게 한 계절이 바람을 타고 바뀌어 가고 있다. 무척이나 차가웠던 겨울바람, 그리고 가슴을 달뜨게 하던 봄바람의 기억이 저만치 멀어져 갈 무렵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게 만드...
    Views6731
    Read More
  11. 거울 보고 가위 · 바위 · 보

    거울을 보고 가위, 바위, 보를 해보라! 수백 번을 해도 승부가 나질 않는다. 계속 비길 수밖에. 그런데 평생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부류가 있다. 바로 부부이다. 갈등없이 살아가는 부부가 있다. 모든 것이 너무 잘 맞아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부부말이다. ...
    Views7053
    Read More
  12. 영옥 & 영희

    장애아를 둔 학부모들은 일평생 무거운 돌에 짓눌려 있는 듯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옆집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자라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기대임을 실감하면서 말이다. 소중한 내 아이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보다 진하다. 남들 눈에는 어떻게 ...
    Views7134
    Read More
  13. 아이스케키

    한 여름 뙤약볕이 따갑다. 목이 말라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마시다가 문득 어린 시절에 추억이 떠올랐다. 나는 초등학교 때 시골에서 살았다. 날씨가 더워지면 냇가로 멱(수영)을 감으러 가서 더위를 식혔다. 배가 고프면 주로 감자나 옥수수를 먹었다...
    Views7197
    Read More
  14. 해방일지 & 우리들의 블루스

    한 교회에서 35년을 목회하고 은퇴하신 목사님이 “이 목사님, 드라마 안에 인생사가 담겨있는 줄 이제야 알겠어요”라고 말해 놀랐다. 일선에서 목회할 때에는 드라마를 볼 겨를도 없었단다. 게다가 그런 것은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보는 것 정도로...
    Views7169
    Read More
  15. 다섯손가락

    얼마 전 피아니스트 임윤찬군의 쾌거 소식을 접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나이로 우승하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그 연주자다. 18살 밖에 안된 소년이 세계적인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나...
    Views6771
    Read More
  16. 행복한 부부생활의 묘약

    세상에 그냥 되는 일은 없다. 남녀가 만나면 feel이 통하고 그래서 사랑을 하고 무르익으며 결혼을 한다. 결혼은 시작이다. 그런데 많은 부부들이 결혼을 하면 다 된 줄 안다. 젊은 부부를 만나면 노파심에 하는 말이 있다. “노력 없이는 부부생활은 어...
    Views7530
    Read More
  17. 은총의 샘가에서 현(絃)을 켜다

    “엄마… 같이 죽자!” 어린 신종호는 면회 온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엄마의 눈동자가 커지더니 눈이 빨개졌다. 장애가 있어 외할머니 등에 업혀 학교를 다녔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생업에 매달려 바쁜 가족들에게 더 이상 짐이 될 수 없...
    Views7306
    Read More
  18.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사람들마다 자아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 느끼는 방향과 다른 사람을 통해 받는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한국에 나가 대학 동창을 만났다. 개척하여 성장한 중형교회를 건실하게 목회해 왔는데 무리를 했는지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어 작년 말....
    Views6729
    Read More
  19. 오디

    날마다 출근하는 아내가 오늘따라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조금 더 기다리다보니 현관문이 열리고 아내가 무언가 잔뜩 담긴 용기를 내어민다. “이거 드셔!” “뭔데?” 들여다보니 ‘오디’였다. &...
    Views7052
    Read More
  20. 파레토 법칙

    <파레토 법칙>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 이 용어는 개미를 소재로 한 과학실험에서 나온 말이다. 19세기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 1848∼1923)가 개미를 관찰하여 연구하는 중에 개미의 20%만이...
    Views782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