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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5 14:27

윤슬 =2024년 첫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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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png

 

 아버지는 낚시를 즐기셨다. 공직생활의 여유가 생길때마다 도구를 챙겨 강을 찾았다. 지금처럼 세련된 낚시가 아닌 미끼를 끼워 힘껏 강으로 던져놓고 신호를 기다리는 방울낚시였다. 고기가 물리면 방울이 세차게 울린다. 아버지는 잽싸게 낚시줄을 잡아채며 끌어당긴다. 고기의 몸부림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서서히 다가온다. 그때 느끼는 환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과묵한 아버지도 탄성을 지르며 어깨에 힘이 들어가셨다. 하지만 그런 광경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가끔 물고기가 낚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루해하며 돌수제비를 할라치면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낚시는 세월을 낚는거란다!”

 

  강변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 윤슬”(달빛이나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 일어난다. 아침에 보면 고기들이 튀어 올라 향연을 펼치는 것처럼 눈이 부시다. 어린 내 눈에는 윤슬이 고기비늘이 햇볕에 반사되는 것처럼 보였다. 윤슬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양, 색깔, 느낌이 달라진다. 아침에는 신선한 느낌을 준다. 서서히 달아오르는 오후가 되면 감청색 강물이 시원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윤슬의 강한 매력은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저녁 무렵이다. 황혼에 물들어 일렁이는 윤슬은 신비감을 준다. 저만치 미지의 세계가 그려지듯 윤슬은 하루에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가슴에 품고 어둠 속으로 잠이 든다.

 

  새해가 밝았다. 마치 아침녘 강물처럼 눈부신 윤슬이 다가온 것이다. 언젠가 함께 식사를 나누던 후배가 물어왔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먹던 내게 갑자기 던져진 진지한 질문에 움찔했다. “아니, 뜬금없이 인생이 무엇이냐고?” “나이 50이 깊어 가니 불현듯 인생이 무엇인지 의구심이 들어서요후배는 결혼을 일찍했다. 그래서인지 어느새 아들이 결혼을 해서 아이가 둘이다. 밑에 여동생이 지난 5월 아들을 낳았다.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가 손자가 세명이 된 것이다. 그 와중에 인생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대답했다. “인생? 그냥 사는 거야싱거운 대답에 우리는 함께 마주 보며 웃었다. 청량리 노숙자들이 나의 소중한 친구 밥퍼 최일도 목사가 끓여준 라면을 한창 먹고 있었다. 밤새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자던 그들에게 라면 국물은 해장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외쳤다. “, 삶은 무엇인가?”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곁에 있던 두목인듯한 사나이가 숟가락으로 그의 머리를 내려치면서 말했다. “삶은라면이지 뭐야?” 질문은 던진 그는 , 삶은라면이지하고 그냥 먹더란다. 웃픈 이야기다.

 

  인생이 무얼까? 농담이 아니고 그냥 사는거다. 아침햇살에 눈부시게 반사되는 윤슬처럼 인생은 다 거창한 꿈을 안고 출발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 꿈을 이루어가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인생들은 나이가 들어가며 서서히 꿈의 범위와 기대치가 낮아지고 어느 순간 물흐르듯 평범히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새해가 무엇일까? 따지고 보면 달력을 갈아 걸뿐이다. 20231231일과 202411일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연도, , 세월이 약간 바뀌었을 뿐이다. 새해가 왔다고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결국 새해는 내 마음에 있다. 나이 든 청춘이 있고, 젊은 늙은이가 있다. 대나무가 비바람에도 부러지지 않고 곧게 높이 자라는 이유를 아는가? 첫째 곁가지가 없어서 그렇고, 둘째는 매듭을 지어서 그렇다. 어느 정도 자라면 멈추고 마디를 만들어서 매듭을 지은 덕분에 강한 태풍에도 부러지지 않는 유연성이 생기는 것이다.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삶의 매듭을 짓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월요일 새해 11일을 시작했다. 주말에 한 주간을 마무리한다. 그러다가 30일이 차면 달의 이름을 바꾼다. 자라고 매듭짓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인생이다. 나는 지금 어디만큼 가고 있는 것일까? 어느 정도 성숙한 삶을 살고 있을까? 내 계획과 결심이 내 인생에 어느 정도의 파급효과를 주는 것일까? 돌아보니 별 효과가 없다. 주어진 오늘을 그냥 사는 것이다. 윤슬이 해의 각도에 따라 모양과 분위기를 달리하듯 우리는 오늘도 같은 장소, 환경이지만 새로운 인생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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