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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07:13

건빵 1/28/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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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식을 즐겨하는 편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우직하게 세끼 식사에 집착하는 편이다. 그런데 가끔은 입이 궁금할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시장기가 돌았고 불현듯 생각 난 것이 건빵이었다. 60년대만 해도 간식은 고사하고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의 생활수준이 확연히 드러난다. 가난한 아이들은 “옥수수 죽”을 타먹었다. 줄을 서서 각자가 준비한 약간 노란색깔의 “철변또”(도시락)를 갖다 대면 당번이 커다란 국자로 변또가 넘치도록 옥수수 죽을 부어주었다.

나는 아버지가 경찰이셨기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별로 없었다. 사람 심리가 이상하다. 나는 아이들이 타먹는 그 옥수수 죽이 그렇게 맛있어 보였다. 짝을 설득(?)하여 옥수수 죽과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바꾸어 먹는 일이 종종 있었다. 꿀맛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옥수수 죽은 옥수수 빵으로 진화하게 된다. 경제성장이라는 것이 사람의 체형까지 바꾸어 놓는 것을 실감한다. 내가 어릴 때는 양식이 부족해서인지 말라깽이들이 많았다. 오죽하면 교실마다 “왕갈비”(하도 말라 갈비뼈가 드러난 아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다.

후배목사가 군목으로 부임하면서 “원통”에 있는 부대에 나를 강사로 초청해 주었다. 집회를 인도하며 알게 되었다. 군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쵸코파이”라는 것을 말이다. 군목과 군종들이 하는 중요한 일중에 하나는 야간행군을 하는 장병들에게 쵸코파이를 나눠주는 일이다. “쵸코파이”가 인기가 있는 것은 일단 달아서 좋고 작아도 칼로리가 높은 식품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도 롯데보다는 “오리온” 것을 더 선호한다나.

내가 어릴 때는 먹을 것이 없었다. 아마 그 시절에 “쵸코파이”가 있었다면 대단한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대신 건빵이 있었다. 건빵은 그 시절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주의할 것은 급하게 먹어서는 안 된다. 목이 메이기 때문이다. 하나씩 음미하며 먹다보면 달고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히 채워지게 된다. 예비군이 창설되며 파출소에는 예비군들이 상주하게 되었고 그들을 위해 건빵이 배급되었다. 이름 하여 “예비군 건빵”이었다. 예비군 마크가 새겨진 예비군 건빵은 봉투색깔이 얼룩색이어서 조금은 부티가 났다. 크기도 맛도 통상의 것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건빵이었다.

아버지 덕분에 우리 집에는 “예비군 건빵”이 끊어지질 않았다. 일종의 비리라고나 할까? 그러다가 나온 것이 별사탕 건빵이다. 자그마한 형형색색의 별사탕이 봉지 안에 들어있었고 담백한 건빵을 먹다가 ‘아삭아삭’ 별사탕을 곁들여 먹으면 단맛이 더해지는 별미 중에 별미였다. 건빵을 물에 붉혀 먹기도 하고 때로는 붉힌 건빵을 다시 불에 구워먹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건빵을 먹어댔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었다. 건빵을 들여다보면 꼭 구멍이 두 개 뚫어져 있었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가열 할 때에 증기의 압력이 너무 높아지면 건빵이 터져서 엉크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적당하게 구멍을 뚫어 반듯한 모양으로 만들어 내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세상에는 다 이치와 원리가 있는 것을 깨닫는다. 이렇게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가 올 줄은 미처 몰랐다. 살이 찌는 것을 고민하며 음식을 절제해야하는 시대가 올 줄은 정말 몰랐다. 각종 운동기구부터 체중을 줄여준다는 약까지 현란한 광고가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이제는 간식의 종류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건빵을 먹어도 옛날 맛이 아니다. 건빵 한 봉지만 들면 부러울 것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건빵을 먹으며 우리들의 이야기도 쌓여갔고 친구간의 우정도 깊어갔다. 건빵뿐이 아니다. 짜장면, 라면, 호떡, 고구마 모두 옛날처럼 감칠맛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풍요로운 것은 좋은 일이지만 옛 맛을 찾을 수 없음이 서운하기 그지없다. 건빵을 함께 먹던 그 친구들은 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 어린 내게 건빵을 내어밀던 예비군 아저씨들은 이제 어떤 모습들이 되어있을지. 나는 지금 건빵을 사러 마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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