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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추억.jpg

 

 

 가을이 깊어간다. 푸르던 잎들이 각양각색의 색깔로 갈아입으면서 서서히 정든 나무를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무척이나 춥고 눈이 쏟아지던 겨울. 나무 속에 숨어 기다리던 새싹들이 호호불어대는 봄바람에 살포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나목에 옷을 입히며 어느새 하늘을 덮을 정도로 이파리가 번져갔다. 여기저기서 날아든 새들의 노래 소리와 온갖 친구들이 찾아오며 여름 나무속은 풍성한 이야기로 가득찼다. 입담 좋은 친구의 부풀려진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어대고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그 소식을 날려 보내며 언제까지 함께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차가운 가을 기운이 파고들며 분위기는 한산해졌다. 다양한 색깔을 머금고 떠나가는 낙엽의 외침에 나무는 무표정으로 작별을 고하고 있다.

 

  신계령은 <가을사랑>이란 노래에서 가을 가~~을 오면 가지 말아라!” 외치지만 사계절 중 왔다가 가장 짧게 머무르고 가는 것이 가을인 것 같다. 어느때부터인가? 석양이 가슴시리도록 좋아지기 시작했다. 강렬히 타던 태양이 그 빛을 사방에 분산시키며 서쪽 하늘로 넘어가는 그 모습이 왜 그리 정겨워지든지? 나이가 든 증거인 듯 하다. 가을은 삶을 자꾸 반추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잠시 저만치 잡힐듯한 시간으로 몰입해 들어갔다. 내가 20대에는 전화기가 귀하고 귀했다. 문제는 약속을 한 장소에 상대가 나타나지 않을 때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다방에서 엽차를 앞에 놓고 기다리는 그 시간은 길고도 지루하다. 30분이 지나도 안 나타난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그러다가 기다려운 시간이 아까워 또 기다린다. 참 난감한 시간이었다. 핸드폰이 없는 때이라 어쩔수 없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사람을 기다리며 오직 상대를 생각했던 그 순간이 그래도 좋았다. 거리마다 요소요소에 공중전화부스가 즐비했다. 사람마다 작은 전화번호가 적힌 포켓 혹은 수첩을 들고서 줄창 기다려야했다. 통화가 길어지면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눈치가 보이고 비밀이야기를 하려고 목소리를 낮추면 상대방이 못 알아듣기에 답답했다. 당시 내가 암송하는 전화번호가 300개는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제는 가족의 전화번호도 다 기억을 못한다. 핸드폰이 내 기억력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명동 선술집에서 얼큰히 술이 오르면 떠오르는 아이에게 공중전화를 붙들고 한없이 주절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실상 마주치면 움추러들면서 말이다. 물론 신학생이 되기전에 일이다. 당시에는 연인을 만나는 장소가 시계탑, 파고다 공원 앞 등등이었다. 다방보다는 지루함이 덜했고 다른 팀이 만나는 장면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만나면 분식집으로, 형편이 나은 커플은 경양식집에 들어가 청춘의 대화를 나누었다. 버스가 끊어질 때까지 함께 했던 그 시절이 정말 좋았다. 헤어지기 싫어 서로의 집을 오가며 나누었던 숱한 대화들 그 아이는 기억할까?

 

  난 머리가 복잡해지면 아무 시내버스나 올라탔다. 종점까지 그냥 가서 내려 걸었다. 70년대에는 서울외곽에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이 많았다. 지금은 들어선 빌딩과 주택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지만 말이다. 낯선 중국집 샷시문을 열고 들어가서 창가에 자리를 잡고 홀로 먹는 짜장면, 때맞추어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정겨운 대화는 가슴을 따뜻하게 데펴주는 그 시대의 난로였다.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그 시절은 실로 정()이 있는 때였다.

 

  이제 사람들은 실익을 위해 살고 있다. 아이도 어른도 다 바쁘게 살고 있다. 먹고 살기에 바쁘고 돈을 좇아 헤매이고 있다. 다들 무언가 잡으려고 달려가지만 성취하는 그 시점에 다다르면 허무만이 맴돌 뿐이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 삶에만 너무 집착하며 사는 개인주의가 당연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 가을! 넉넉하지 않았지만 사람 냄새가 나고 이웃을 챙겨주던 그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버튼 하나로 연결되는 세상이 아니라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그 사람을 생각하다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행복 해 하던 그 시절이 그래서 그립고 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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