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4.01.05 14:27

윤슬 =2024년 첫 칼럼=

조회 수 299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윤슬.png

 

 아버지는 낚시를 즐기셨다. 공직생활의 여유가 생길때마다 도구를 챙겨 강을 찾았다. 지금처럼 세련된 낚시가 아닌 미끼를 끼워 힘껏 강으로 던져놓고 신호를 기다리는 방울낚시였다. 고기가 물리면 방울이 세차게 울린다. 아버지는 잽싸게 낚시줄을 잡아채며 끌어당긴다. 고기의 몸부림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서서히 다가온다. 그때 느끼는 환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과묵한 아버지도 탄성을 지르며 어깨에 힘이 들어가셨다. 하지만 그런 광경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가끔 물고기가 낚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루해하며 돌수제비를 할라치면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낚시는 세월을 낚는거란다!”

 

  강변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 윤슬”(달빛이나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 일어난다. 아침에 보면 고기들이 튀어 올라 향연을 펼치는 것처럼 눈이 부시다. 어린 내 눈에는 윤슬이 고기비늘이 햇볕에 반사되는 것처럼 보였다. 윤슬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양, 색깔, 느낌이 달라진다. 아침에는 신선한 느낌을 준다. 서서히 달아오르는 오후가 되면 감청색 강물이 시원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윤슬의 강한 매력은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저녁 무렵이다. 황혼에 물들어 일렁이는 윤슬은 신비감을 준다. 저만치 미지의 세계가 그려지듯 윤슬은 하루에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가슴에 품고 어둠 속으로 잠이 든다.

 

  새해가 밝았다. 마치 아침녘 강물처럼 눈부신 윤슬이 다가온 것이다. 언젠가 함께 식사를 나누던 후배가 물어왔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먹던 내게 갑자기 던져진 진지한 질문에 움찔했다. “아니, 뜬금없이 인생이 무엇이냐고?” “나이 50이 깊어 가니 불현듯 인생이 무엇인지 의구심이 들어서요후배는 결혼을 일찍했다. 그래서인지 어느새 아들이 결혼을 해서 아이가 둘이다. 밑에 여동생이 지난 5월 아들을 낳았다.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가 손자가 세명이 된 것이다. 그 와중에 인생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대답했다. “인생? 그냥 사는 거야싱거운 대답에 우리는 함께 마주 보며 웃었다. 청량리 노숙자들이 나의 소중한 친구 밥퍼 최일도 목사가 끓여준 라면을 한창 먹고 있었다. 밤새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자던 그들에게 라면 국물은 해장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외쳤다. “, 삶은 무엇인가?”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곁에 있던 두목인듯한 사나이가 숟가락으로 그의 머리를 내려치면서 말했다. “삶은라면이지 뭐야?” 질문은 던진 그는 , 삶은라면이지하고 그냥 먹더란다. 웃픈 이야기다.

 

  인생이 무얼까? 농담이 아니고 그냥 사는거다. 아침햇살에 눈부시게 반사되는 윤슬처럼 인생은 다 거창한 꿈을 안고 출발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 꿈을 이루어가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인생들은 나이가 들어가며 서서히 꿈의 범위와 기대치가 낮아지고 어느 순간 물흐르듯 평범히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새해가 무엇일까? 따지고 보면 달력을 갈아 걸뿐이다. 20231231일과 202411일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연도, , 세월이 약간 바뀌었을 뿐이다. 새해가 왔다고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결국 새해는 내 마음에 있다. 나이 든 청춘이 있고, 젊은 늙은이가 있다. 대나무가 비바람에도 부러지지 않고 곧게 높이 자라는 이유를 아는가? 첫째 곁가지가 없어서 그렇고, 둘째는 매듭을 지어서 그렇다. 어느 정도 자라면 멈추고 마디를 만들어서 매듭을 지은 덕분에 강한 태풍에도 부러지지 않는 유연성이 생기는 것이다.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삶의 매듭을 짓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월요일 새해 11일을 시작했다. 주말에 한 주간을 마무리한다. 그러다가 30일이 차면 달의 이름을 바꾼다. 자라고 매듭짓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인생이다. 나는 지금 어디만큼 가고 있는 것일까? 어느 정도 성숙한 삶을 살고 있을까? 내 계획과 결심이 내 인생에 어느 정도의 파급효과를 주는 것일까? 돌아보니 별 효과가 없다. 주어진 오늘을 그냥 사는 것이다. 윤슬이 해의 각도에 따라 모양과 분위기를 달리하듯 우리는 오늘도 같은 장소, 환경이지만 새로운 인생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1. 2022년 새해 첫칼럼 / 인생열차

    ​ 2022호 인생열차가 다가왔다. 사명을 다한 2021호 기차를 손 흔들어 보내고 이제 막 당도한 기차에 오른다. 어떤 일들이 다가올지 알 수 없지만 오로지 기대감을 가지고 좌석을 찾아 앉는다. 교회에 나가 신년예배를 드림이 감격스러워 성찬을 받는 손길에 ...
    Views9103
    Read More
  2. 새로운 것에 대하여

    오늘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분기점이다. 여전히 팬데믹은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실로 평범이 그리워지는 시점이다. 마스크 없이 누구와도 아무 거리낌 없이 만나고 활보하던 일상이 그립다. 그런때가 언제나 올...
    Views9403
    Read More
  3. Merry Christmas!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이제 7일만 지나면 2021년은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져 갈 것이다. 팬데믹의 동굴을 아직도 헤매이고 있지만 한해를 보내는 마음은 아쉽기만 하다. 미우나고우나 익숙했던 2021년을 떠나보내며 웃을 수 있음은 성탄절이 있기 때문...
    Views9849
    Read More
  4. 불편했던 설레임

    사람에게는 누구나 첫시간이 있다. 아니 첫경험이 있다. 그 순간은 두렵고 긴장되고 실수가 동반된다. 처음 교회에 나갔을때에 난처했다. 다들 눈을 감은 채 사도신경을 줄줄 외우고, 성경, 찬송가를 척척 찾아 부르는 것을 보면서 모멸감이 느껴졌다. &lsquo...
    Views9869
    Read More
  5. 홀로 산다는 것

    나이가 들어가는 청년들을 만났을 때 “언제 결혼하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상꼰대이다. 시대가 변했다. 결혼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스팩을 쌓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대가족 시대였다. 식사 때가 되면 3대가 온 상에 ...
    Views10227
    Read More
  6.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실로 세월은 덧없이 흐르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기도 버겁건만 난데없는 역병이 엄습하면서 여전히 사람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백신효과가 나타나면서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가 했는데 여기저기서 돌파감염자가 나오며 한숨만 높아간다. 도...
    Views10080
    Read More
  7. 짜증 나!

    사람마다 특유의 언어 습관이 있다. 어떤 사람은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정말?”이라고 묻는다. 일이 답답하고 풀리지 않을 때 “와, 미치겠네” 혹은 “환장하겠네”라고 내뱉는다. 10년 이상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남성이 있다...
    Views10584
    Read More
  8. 역할

    사람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실감하게 되는 때는 바로 내 역할을 깨닫는 시점이다. 매사에 조건과 배경을 따지면서 우열을 가리는 세태가 되면 삶이 피곤 해 진다. 우리 세대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입시를 치러야 했다. 야속한 것은 우리...
    Views10308
    Read More
  9. 신혼 이혼

    나이가 들어가는 선남선녀들의 소중한 꿈은 결혼이다. 인생의 초반은 혼자 살아가지만 장성하면 짝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법칙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정을 나누고 평생을 부부가 되어 살아가기를 결심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Views10611
    Read More
  10. 어느 자폐아 어머니의 눈물

    우리 밀알선교단은 매주 토요일마다 발달장애아동을 Care하는 <토요사랑의 교실>을 운영한다. 어느새 30년이 가까워오며 이제 아동이란 명칭을 쓰기가 어색하다. 팬데믹으로 거의 1년반을 모이지 못하다가 지난 9월부터 본격적인 대면모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Views11143
    Read More
  11. 저만치 잡힐듯한 시간

    가을이 깊어간다. 푸르던 잎들이 각양각색의 색깔로 갈아입으면서 서서히 정든 나무를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무척이나 춥고 눈이 쏟아지던 겨울. 나무 속에 숨어 기다리던 새싹들이 ‘호호’ 불어대는 봄바람에 살포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
    Views10730
    Read More
  12. 표정만들기

    나는 항상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사역 자체가 사람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만나온 사람도 있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사람을 처음 만날때에 주력하는 것은 첫인상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첫인상의 촉이...
    Views11222
    Read More
  13. 엄마와 홍시

    엄마는 경기도 포천 명덕리에서 태어나셨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경우가 바른 엄마의 성품은 시대가 어려운 때이지만 조금은 여유가 있는 외가의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외가에 산세는 수려했다. 우아한 뒷산의 정취로부터 산을 휘감아 돌아치는 시냇물은 ...
    Views11474
    Read More
  14. 부부는 싸우면서 성숙한다

    “부부싸움을 왜 해요? 우리는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어요” 간혹 이런 외계인 부부를 만난다.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사랑을 할 때는 소위 ‘도파민’이 샘솟듯 나오며 거의 미친 듯이 서로를 갈망한다. 이...
    Views10969
    Read More
  15. 장애아 반장

    “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선생님 핸드폰께 경례!” 조기훈(12)군이 우렁차게 외치자 친구들이 까르르 웃는다. 기훈이는 서울 목동 신서초등학교 6학년 6반 학급회장이다. ‘경례’를 하기 전까지 기훈이는 휴대전화가 ...
    Views11973
    Read More
  16. 생각하는 갈대

    인간은 약하다. 하지만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위대하다. 성장하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날 때에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왜 너는 생각이 없냐?”였을 것이다. 그 시기에는 몸이 생각보다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하면 멈출수 있다. ...
    Views11452
    Read More
  17.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가?

    카메라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사진을 찍는 것이 너무도 소중하고 귀했다. 사진관에 가서 카메라를 빌리고 촬영한 필름을 다시 맡겼다가 나온 사진을 찾으러 가는 날은 가슴이 퉁탕거렸다. 흑백사진이었지만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기에 정말 행복...
    Views11379
    Read More
  18. “아침밥” 논쟁

    ‘오늘’이라는 시간은 ‘어제’라고 하는 시간의 연장선상에서 존재한다. 내일 역시 ‘오늘’이라는 시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의 오늘은 그 사람의 어제가 만들고 있다. 배우자의 어린 시절을...
    Views11823
    Read More
  19.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우리 밀알선교단에는 다수의 장애아(障礙兒)들이 있다. 토요일마다 귀한 친구들을 보살핀 세월이 어느새 25년이다. 어리디어리던 아이들이 이제는 거의 성인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장애아라고 부르는 것은 지능지수와 적응하는 반응을 기준으로 삼기 ...
    Views12630
    Read More
  20. 베이비부머

    어느 순간부터 세대를 구별짓는 명칭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사실 이 구분은 미국식이다. 처음 생겨난 세대를 ‘베이비부머’라고 한다. 1955년~1963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칭한다. 1965~1980년에 태어난 부류를 ‘X세대’라고 한다. 관...
    Views1224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