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3.01.27 09:08

잊혀져 간 그 겨울

조회 수 633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겨울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날씨는 음력이 정확하게 이끌어 주는 것 같다. (22)을 넘어 입춘(24)이 한주 앞으로 바싹 다가서고 있다. 불안한 것은 눈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별걱정을 다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겨울이 겨울답지 않은 것이 마음 한켠에 아쉬움을 준다. 계절은 계절에 걸맞는 온도와 풍경이 있는 법인데 말이다. 겨울은 차갑고 색깔은 흰색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누군가가 어떤 계절이 좋으냐?”고 물어온다면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계절마다 특징이 있고 매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때 겨울이 좋을때가 있었다. 우선 내뱉는 입김의 자취가 좋았고, 매섭지만 얼굴을 스치는 찬 바람의 애무가 정겨워서였다. 차가운 기운이 젊은 날의 아픔을 감추어줄 것 같아 겨울이 고마웠다.

 

  양희은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중에 가랑비야 내 얼굴을 거세게 때려다오 슬픈 내 눈물이 감춰질 수 있도록.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음~”하는 가사가 있다. 넘 아파서 눈물이 흐를 때 소낙비를 홈빡 맞으며 걸어본 경험이 있는가? 젊은 날의 초상은 겨울의 찬바람과 더불어 묘한 위로를 받았다. 그냥 내가 싫었다. 항상 기우뚱거리며 걷는 것, 병들어 안방 아랫목에 누워 투병하고 있는 아버지, 모든 면에서 밝은 빛은 전혀 새어 들어 올 가망성이 없는 내 삶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렇게 외친다. “20대가 그립기는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돌아보면 손에 잡힐듯한데 일찍이 하늘로 떠난 아버지의 나이를 넘어선 지 오래이다. 그래서 나를 항상 응원해 주던 그분의 체취가 그립다. 불어오는 찬바람을 핑계 삼아 실눈을 떠본다. 왜 이리 세월은 빨리 흐르는지? 속절없이 추억은 멀어져만 가는지? 그 해 그 겨울. 아스팔트에 뒹굴던 마로니에 잎의 잔영이 내 가슴에 남아있다. 길거리 전파상에서 울려 퍼지는 감미로운 음악에 발걸음을 멈추고 군밤과 호빵 냄새를 맡으며 다가올 봄의 따스함을 기대했다. 여기는 미국. 오랜 세월을 그렇게 해가 바뀌고 새롭게 다가오는 겨울 냄새를 맡으며 살고 있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 시작을 찾아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덧 마음이 넉넉해진다. 사는 것이 힘겹고 되알지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시작할 때를 더듬어보면 살며시 미소가 올라온다. 나는 계절을 냄새로 느낀다. 겨울은 무취라서 좋다. 차갑지만 정신을 맑게 해 주어 싱그럽다. 밤새 눈이 와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마당을 지나 초막 속에 고이 묻어놓은 장독 뚜껑을 열어 새빨간 김장 김치를 꺼내는 엄마의 머리 수건이 정겨웠다. 별 양념없이 담근 동치미의 시원한 맛이 겨울과 어우러져 나를 부자로 만들었다. 화로에 구워 먹는 고구마, 감자, 옥수수. 그리고 차가운 다락에서 꺼내와 먹던 다식과 밥풀강정, 단단한 엿이 겨울 밤의 대화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눈이 펑펑 오는 날이었다. 기다리던 버스는 한참을 오지 않았고, 하늘하늘 떨어지는 해파리 같은 눈송이들이 촘촘히 쌓여가고 있는 버스 정류장에는 그리 많지 않은 승객들이 빼꼼이 고개를 내어밀며 집에 데려다줄 버스를 기다렸다. 추었지만 춥지 않았던 이유는 그 시절에는 이웃간의 끈끈한 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해가 되었지만 쏟아지는 뉴스는 희망보다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고통을 예고하고 있다. 고정희 시인의 피맺힌 시, ‘야훼전상서가 떠오른다. “신도보다 잘사는 목회자를 용서하시고, 사회보다 잘 사는 교회를 용서하시고, 제자보다 잘사는 학자를 용서하시고, 독자보다 배부른 시인을 용서하시고, 백성보다 살쪄 있는 지배자를 용서하소서!” 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모순덩어리인 사회의 경종을 울리는 듯 하다.

 

  겨울이 깊을수록 봄은 가까워 온다. 고통이 심할수록 평안의 따스한 손길은 다가오고 있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 추위를 견딘만큼 봄을 맞이하는 환희는 배가 되기 때문이다. 바람이 드셀수록 산천초목은 강인하게 버티며 봄을 봄답게 맞이할 수 있다. 모두의 겨울이 부디 춥고 외롭지 않기를. 서로의 쓸쓸한 어깨에 따스한 목도리를 둘러 줄 수 있는 그런 겨울이 되기를 기도한다.

 


  1. 장애의 벽 넘어 빛나는 졸업장

    한국은 바야흐로 졸업시즌이다. 하지만 금년은 COVID-19 여파로 빛이 바랬다. 4년의 학업을 마치고 졸업하는 모습은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의 눈에도 귀해 보이거니와 스스로도 커다란 성취감을 맛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험난한 시국을 만나 영상으로...
    Views17469
    Read More
  2. 장애아의 자그마한 걸음마

    누구나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다. 오가며 만나는 아이들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날 것’을 기대하다가 임신 소식을 듣는 순간 신기함과 감격이 밀려온다. 출산을 준비하고 막상 태어난 아이가 장애를 안고 나왔을 ...
    Views10069
    Read More
  3. 장애아 반장

    “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선생님 핸드폰께 경례!” 조기훈(12)군이 우렁차게 외치자 친구들이 까르르 웃는다. 기훈이는 서울 목동 신서초등학교 6학년 6반 학급회장이다. ‘경례’를 하기 전까지 기훈이는 휴대전화가 ...
    Views13075
    Read More
  4. 장애를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 1/13/2011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비단 당사자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 형을 둔 어떤 분이 어린 시절 “형 때문에 화장실에 들어가 운적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할 때 필자의 가슴은 아려왔다. 사람들은 필자를 만나기만하면 물었다. 아주 조심스...
    Views75907
    Read More
  5. 장애 여동생을 향한 마음 11/30/2011

    언젠가 장애를 가진 여동생을 둔 한분과 긴 시간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여동생의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견디기 힘든 시간이 많았다.”는 고백부터 “그 여동생을 한국에 남겨두고 미국에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싫어질 때가 많다.&...
    Views77202
    Read More
  6. 장모님을 보내며

    수요일 오후 급보가 날아들었다. 근간 몇 년 동안 숙환으로 고생하시던 장모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난감한 것은 월요일에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있었다. 장모님이기에 한국에 나가긴 해야 하는데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월요일 뉴욕에서 열리는 행...
    Views33631
    Read More
  7. 잘못 태어난 인생은 없다 12/5/2014

    이렇게 기구한 삶을 산 여인이 있을까? 단지 딸이라는 이유로 술에 취한 아버지는 갓난아이를 방바닥에 내던져버렸다. 그 아이는 결국 척추를 다친 장애인이 되었다. 갓난아기의 키는 더디 자랐다. 공부는 초등학교가 끝이었다. 아버지의 자살, 정신질환을 앓...
    Views72866
    Read More
  8. 잘 되는 나 5/16/2015

    이것은 ‘긍정의 힘’의 저자 조엘 오스틴이 내놓은 역작의 제목이다. 너무 노골적이지만 현대인들은 그런 취향에 익숙해 진지 오래이다. 조엘 오스틴의 책을 접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음을 나도 느낀다. 아마 그것은 정식으로 신학을 하...
    Views72501
    Read More
  9. 잘 되는 나 12/8/2011

    이것은 ‘긍정의 힘’의 저자 조엘 오스틴이 내놓은 역작의 제목이다. 너무 노골적이지만 현대인들은 그런 취향에 익숙해 진지 오래이다. 조엘 오스틴의 책을 접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음을 나도 느낀다. 아마 그것은 정식으로 신학을 하...
    Views66678
    Read More
  10. 자녀는 선물이다 5/28/2011

    지금은 장애인사역에 전념하느라 가정 사역은 한켠으로 밀어놓은 상태이지만 가정을 살리는 일처럼 소중한 우선순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내적치유를 인도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가정의 달에 갑자기 뇌리를 스친 사람은 2번이나 자연 유산을 한 30...
    Views77954
    Read More
  11. No Image

    잊혀져 간 그 겨울

    겨울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날씨는 음력이 정확하게 이끌어 주는 것 같다. 설(22일)을 넘어 입춘(2월 4일)이 한주 앞으로 바싹 다가서고 있다. 불안한 것은 눈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별걱정을 다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겨울이 겨울답지 않...
    Views6338
    Read More
  12. No Image

    있을 수 없는 일?

    가끔 정신이 ‘멍’해지는 뉴스를 접할때가 있다. 상상이 안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있을 수 없는일이 벌어졌다”고 말한다. 밀알선교단 창립 45주년 행사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지인과 서울을 오가다가 성수대교를...
    Views3704
    Read More
  13. 있을 때 잘해!

    한 부부가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어왔다. 주유소 직원은 기름을 넣으면서 차의 앞 유리를 닦아준다. 기름이 다 들어가자 직원은 부부에게 다 되었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남편이 “유리가 아직 더럽네요. 한 번 더 닦아주세요.”라...
    Views50448
    Read More
  14. 잃어버린 나의 40년 7/9/2013

    소록도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K목사 앞에 일흔이 넘어 보이는 노인이 다가와 섰다. “저를 이 섬에서 살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느닷없는 노인의 요청에 K목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에게는 모두 열 명의 자녀가 있었지요.&rdqu...
    Views67038
    Read More
  15. 일곱번째 방향 10/3/2012

    아메리카 인디언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신께서 이 세상을 처음 지을 때에 원래는 일곱 방향을 만드시기로 했다. 먼저는 보이는 ‘동, 서, 남, 북, 위, 아래.’ 그렇게 여섯 방향을 먼저 만들었다. 그리고 ‘한 방향을 어디에 둘까?...
    Views66374
    Read More
  16. 인연

    어느새 2022년의 끝자락이다. 3년의 길고 지루했던 팬데믹을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금년 세모는 서러운 생각은 별로 안드는 것 같다. 돌아보니 금년에도 바쁘게 돌아쳤다. 1월 새해 사역을 시작하려니 오미크론이 번지며 점점 연기되어 갔다. 2월부터 ...
    Views6853
    Read More
  17. No Image

    인생의 평형수

    만물은 항상 평형을 유지하려는 본성을 지닌다. 때로 외부로부터 충격이 가해지며 평형상태가 무너질 때가 있는데 이 찰나에 미미하나마 다시 평형상태로 되돌아가려는 힘을 복원력이라고 한다. 복원력이 가장 중요하게 적용되는 것이 물위에 배이다. 급격한 ...
    Views5457
    Read More
  18. 인생의 자오선- 중년

    인생의 세대를 나눈다면 유년, 청년, 중년, 노년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유년은 철모르고 마냥 뛰어노는 시기이고, 청년은 말 그대로 인생의 푸른 꿈을 안고 달리는 시기이다. 그 이후에 찾아오는 중년, 사람들은 그렇다. 나도 그랬다. 자신의 삶에는 중년...
    Views88142
    Read More
  19. 인생의 나침반 어머니

    5월이다. 싱그럽다. 아름답다. 온갖 꽃들이 피어나 향연을 벌이고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마주 보고 있는 5월. 추웠던 겨울과 다가올 무더운 여름 틈새에 5월은 자리하며 계절의 여왕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 5월의 한...
    Views21524
    Read More
  20.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란다

    어린 시절 나는 시골에서 살았다. 여름 이맘때가 되면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며 폭우가 쏟아졌다. 밤새 공포에 떨다가 날이 밝고 화창해진 아침, 들녘에 나가보면 곡식들이 내 키만큼 자라나 있는 것을 발견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번개가 치면 하늘에서 수...
    Views4601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