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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역.jpg

 

 

 미국에 처음 와서 이민선배들(?)로부터 많은 말을 들었다. 어떤 말은 “맞아!”하며 맞장구가 쳐지지만 선뜻 이해가 안가는 말 중에 하나는 “누구나 자신이 이민을 온 그 시점에 한국이 멈춰져 있다.”는 말이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수십 년간 한국을 방문하지 않은 분들은 그럴 수 있다지만 종종 드나드는 사람은 ‘그럴 리가 없다.’는 의구심을 가졌다. 그러면서 이민을 온지 오래된 분들과 이제 갓 이민을 온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갭’이 있음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미국의 역사와 이민자들의 애환을 그래서 많이도 들었다. 조심해야 할 부분들도 넌지시 감사하게 받았다.

 

 미국생활이 수십 년을 넘어가는 분들은 미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특히 환경적으로나 사람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는 최고의 수준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지금의 삶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반면 한국에서 갖 이민을 온 ‘이민새내기’(?)들은 낙후된 옛날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모든 면에서 발전된 한국의 모습과 위상을 강조하며 “한국이 훨씬 좋다.”며 입에 거품을 문다. 2000년 이후 한국방문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2001년에 개항한 인천공항의 우수성을 예로 들며 “꼭 한국에 가보시라!”며 거드름을 피운다.

 

 한국은 우리가 이민을 온 시간과 관계없이 모든 것이 발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고 우리가 간직하고 싶은 열망을 무시한 채 가는 곳마다 부수고 바꾸며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신적 세계는 옛 생각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나는 다를 줄 알았다. 금년 4월에도 한국을 찾았다. 서울에서 시작하여 부산, 진주, 대전, 용인을 거쳐 서울에서 여정을 마무리하였다. 유행가 가사처럼 여기저기를 찍고 다닌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새삼 깨달은 사실이 있다.

 

 어디를 가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건만 정작 내 머릿속에 그곳은 그냥 그대로였다. 아니 그대로여만 하였다. 스스로 놀랐다. 나는 서울에서 30년을 살았다. 10대를 홍릉(청량리)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청량이 경찰서” 앞에서부터 청량리 로터리까지 펼쳐진 마로니에는 어린 나에게 4계절 감성을 불어 넣어주었다. 사대부고가 서있던 자리에는 공무원훈련장이 들어오더니 언제부터인가 아파트가 즐비하게 올라가고 이제는 고층 상가가 그 추억을 지워버렸다. “대왕코너”가 서있던 자리에는 “롯데백화점”이 그 위용을 과시하며 서있다. 백화점 밑으로 전철과 국철이 연결되어 어디든 갈수 있는 교통의 “허브”가 되어있다.

 

 하지만 내 머리에는 10대에 거닐던 청량리로 각인되어있다. 청량이 역 앞에는 시계탑이 있었다. 1985년 가을, 그 시계탑 밑에서 묘령의 여인과 첫 만남을 가졌고 지금 그 여인은 내 곁에서 아내로 30년을 함께 살고 있다. 역 앞 “대왕코너”에 처음으로 “에스컬레이터”가 개통 되었을 때에 악동들은 핑계 김에 그것을 타려 학교가 파하면 대왕코너로 향했다. 동일극장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2층에 우리가 드나들던 ‘단골분식센터’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분식센터에도 <뮤직박스>가 있어 DJ가 음악을 틀어주었다. 그 곁에는 “나포리다방”이 자리하고 있었다.

 

 1972년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어 호기심에 첫 열차에 승차했고 그 차표는 지금도 내 앨범에 가지런히 꽂혀있다. “대왕코너”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대왕코너는 이상하게 화재가 많이 발생하여 희생자도 많이 냈다. 우여곡절을 겪었고 “맘모스 백화점”으로 변하더니 이제는 “롯데백화점”으로 바뀌었다. 번잡스럽기는 했지만 대왕코너, 동일 극장이 마주한 로터리의 정취는 아직도 내 가슴에 살아있다. 그 자취는 이미 다 사라져 버렸는데 말이다.

 

 종로에 나간 날,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 뛰어 들어가 비닐우산을 사야만했다. 6,000원이었다. 한국 편의점에는 없는 것이 없다. 구입한 우산을 쓰고 빗속을 거닐었다. 이내 마주한 친구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이제 나도 진짜 이민자가 되었나봐!’ 뜻 모를 내 말에 친구는 이유를 물어왔다. 장황한 설명을 하고는 외쳤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음 좋겠다. 아니 그냥 그랬으면 좋겠어!” 친구도 동감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비 내리는 창밖을 응시했다. 갑자기 내 눈앞이 뿌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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