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6.07.01 17:26

음악은 발이 없잖아!

조회 수 6138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순정 친구.jpg

 

 

 여름방학은 누구에게나 무한한 꿈을 안기며 시작된다. 그 추억을 회상하게 만드는 영화가 “순정”이다. 1991년,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곳곳에 흩어져 유학(?)을 하던 소꿉친구들이 고향인 전라남도 고흥. 섬마을 “청록도”에 모여 든다. 그 섬에는 청초한 외모에 “수옥”이 애타게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범실, 길자, 개독, 산돌, 그리고 수옥”은 그렇게 만나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 가게 된다. 친구만큼 커다란 자산이 또 있을까? 순수한 10대들의 우정. 그리고 “수옥”을 향한 애잔한 범실의 사랑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를 이룬다.

 

 “수옥”은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해녀였던 엄마가 물질을 하다가 해류에 휩쓸려 세상을 떠난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말이다. 장애 때문에 진학도 못한 “수옥”은 방학을 하면 고향을 찾아오는 친구들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다. 다리를 몹시 저는 수옥을 친구들이 돌아가며 업고 가는 장면에서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도 어릴 때부터 많은 사람의 등에 업혀 다녀야 했다. 물론 가장 많이 업혔던 곳은 엄마 등이다. 엄마는 나를 등에 업고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러면서 “재철아, 너는 크게 될거야!” 덕담도 들려주셨다. 그것이 내 재산 1호인지도 모른다.

 

 수옥이 친구들에게 업혔듯이 나를 등에 업고 다녔던 친구들이 많기도 많았다. 수옥이 업혀가는 장면에서 불현 듯 내가 잊고 있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내가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빚을 지며 살아왔는지. 수옥은 지나치리만큼 음악을 좋아한다. 그녀의 꿈은 커서 방송 DJ를 하는 것이다. 친구들이 물었다. “너는 왜 그리 음악을 좋아하니?” 수옥이 대답한다. “응. 음악은 발이 없잖아. 어디든지 갈수 있잖아!” 수옥의 말 한마디가 가슴을 아리게 했다. 아하! 그래서 나도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백수시절. 내 유일한 친구는 음악이었다. 음악의 장르는 다양했다. 클래식, 팝송, 가요 등. FM 라디오를 눈을 뜨자마자 켜면 잠들 때까지 하루 종일 들은 날이 많았다. 음악은 나를 가지 못하는 어디든 인도해 주었다. 음악을 들으며 꿈을 꾸었고, 음악을 통해 상상되는 온갖 판타스틱 한 장면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지금도 기타를 잡으면 나는 금방 청춘으로 돌아간다. 수옥의 꿈은 마음껏 걸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약점을 이용하는 보건소 선생님의 농간을 알아차리고 “수술을 받아도 완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에 수옥은 낙심하여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다.

 

 동네이장을 비롯한 섬마을 사람들은 “미성년자의 장례는 바다 사람들에게 재앙을 불러온다.”는 설을 내세우며 수옥의 장례를 외면한다. 결국 네 친구들이 어설픈 상여를 만들어 장례를 치르게 된다. 상여 앞에 올려놓은 오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Dust in the Wind”(Kansas)가 잔잔한 파고로 듣는 사람의 내면을 잠식해 간다. 진정 인생은 ‘바람 속에 흩날리는 먼지’런가? 그렇게 수옥은 한줌의 재로 사라져 간다. 영화의 흐름은 옛사랑에 대한 회상이지만 한 장애 소녀의 짧은 생애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돌아보면 나에게도 많은 고비가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며 현저히 달라지는 다리의 차이를 보며 좌절했고 남들처럼 걷지도 뛰지도 못하는 모습에 비애를 느꼈다. 나이가 들수록 장애의 무게는 나를 짓눌렀고 “죽고 싶다”는 절망감과 무던히 싸워야만 하였다.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목사님 말씀 때문에 그곳으로는 시선도 두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 이상의 기쁨과 환희가 나를 반겼다. 물론 신앙이라는 기초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절망 앞에서 ‘수옥’처럼 스스로 죽음에 자신을 내어주기보다 그 벽 앞에 죽을힘을 다해 도전해 보는 것이 인생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푸쉬킨)

 

 

 


  1. 관중 없는 올림픽

    모두의 염려 속에 개막한 올림픽이 연일 드라마를 연출하며 막을 내렸다. 승리하여 메달을 딴 선수는 인생 최고 환희의 순간을 만끽했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선수는 눈물을 흘리며 일찌감치 짐을 싸야만 했다. 스포츠 매니아라 할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시...
    Views12800
    Read More
  2. 그들의 우정이 빛나는 이유

    한 여고 점심시간, 두 학생이 식당에 들어선다. 한 학생은 휠체어를 타고 있다. “의자 당겨서, 앉아있어.” 한 여학생이 식판 2개를 들고 배식을 받는다. 뇌병변 장애로 두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는 친구 최주희 양을 위해 6년간 학교에서 최 양의...
    Views12926
    Read More
  3. 미안하고 부끄럽고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가고 싶을 때 가는 사람도 없다. 어느날 나는 지구별에 보내졌고 피부 색깔로 인해, 언어, 문화, 생활양식에 의해 분류되어 살아간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은 언제 행복할까? 소통이 잘 될 때이...
    Views13617
    Read More
  4. 사는게 영화다

    어느 시대나 그때그때마다 삶의 버거움을 벗겨주는 스타가 있었다. 요즈음의 대세는 BTS, 레드벨벳이라지만 아날로그 시절에는 고달픈 인생을 위로해 주는 청량음료 같은 스타들이 때마다 등장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스타는 프로레슬러 김일이었다. 어쩌다 경...
    Views13128
    Read More
  5. 징크스

    사람은 누구나 묘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 ‘그렇게 될 것’이라는 신념(?)이 은연중에 생기는 것이다. 바로 징크스이다. 징크스란 ‘불길한 일 또는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운명적인 일’을 뜻한다. 어원은 일반...
    Views13640
    Read More
  6. 이마고(IMAGO)를 아십니까?

    현세에 일어나는 위기는 다양하다. 경제적 공황, 불신, 고립, 이제는 역병까지. 하지만 가장 큰 위기는 가정이다. 가정은 삶의 최전선이다. 가정이 흔들리니 관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고 사회 전반의 구조가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전 세계의 기독...
    Views13952
    Read More
  7. 동병상련(同病相憐)

    나에게는 소중한 제자들이 많이 있다. 철없던 20살, 반사를 하며 가르쳤던 주일학교 아이들부터, 22살 교육전도사가 되어 지도하던 학생들. 26살부터 지도했던 중 · 고등부 청소년들. 그리고 30이 넘으며 지도하던 청년대학부까지 많기도 많다. 하지만...
    Views13622
    Read More
  8. 이사도라

    아직 젊다고 우기면 우길 수도 있는 나이지만 생을 되돌아보면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아련한 추억이 있다.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이 나이가 들수록 실감이 난다. ‘나이 들어감’에 대해 이젠 체념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왜 살...
    Views14071
    Read More
  9. 미나리 & 이민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 환경과 상황에 적응하게 되면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민은 삶의 축을 흔드는 엄청난 결단이다. 일단 이민을 왔으면 이곳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오랜 세월 ...
    Views13904
    Read More
  10. 아름다운 그림

    내 주위에는 효자가 많다. 늙으신 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그들의 효성(孝誠)에 가슴이 저며온다. 만난지 38년 된 박 목사는 그 시대에 최고 인테리 부모 밑에서 교육을 받고 7남매 속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그는 성격이 푸근하다...
    Views14023
    Read More
  11. 사과나무는 심어야 한다

    인생은 앞날이 보장되지 않은 삶을 산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갑자기 생을 마감하는 분들을 보며 그 사실을 실감한다. 정말 시한부 인생이다. 하지만 오늘 해야 할 일을 죽을까봐 안한다면 그것은 비겁하고 무책임하다. “비록 내일 지구의 ...
    Views13972
    Read More
  12. 그 만남이 내 수준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만남으로 생이 이어진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다. 같거나 비슷한 부류끼리 어울리는 것을 뜻한다.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어쩌면 그런그런 아이들끼리 그렇게 어우러지는 것을 보았다. 대화의 수준도 그랬다. 그래서 부모...
    Views14311
    Read More
  13. 개똥 같은 인생?

    요즈음 아이들은 스타가 되고 싶어한다. 마침 불어닥친 한류열풍으로 한낮 꿈이 아닌 인기와 돈이 동시에 보장된 그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예술을 하면 배가 고팠다. 하지만 진정성은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표출되었다. 가슴을 파고드는 노래, ...
    Views130975
    Read More
  14. 그냥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셨다. 반가웠다. 그러다가 꿈속에서도 스스로 되뇌였다. ‘엄마는 돌아가셨는데…’ 번뜩 잠이 깬 내 귀에 창문을 두드리는 봄비 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나는 평생 그분을 “엄마”라고 불렀다. 한번도 &lsq...
    Views14620
    Read More
  15.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케이크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케이크. ‘I ♡ YOU’! 빨간 초가 인상적인 이 케이크는 내로라하는 파티쉐가 만든 것보다 더 먹음직스럽고 아름답다. 그리 화려하지 않지만 남다른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케이크를 만든 주인공은 ...
    Views14129
    Read More
  16.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인생이 가볍다는 말은 없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를수록 생의 무게는 버겁기 그지없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이 마냥 즐거웠다. 어쩌다 먹는 짜장면, 별것도 아닌 음식이 우리를 흥분시켰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은 항상 정겨웠다. 저녁을 든든히 먹은 후 ...
    Views16409
    Read More
  17. 영혼의 서재를 거닐다

    사람은 누구나 지성, 이성, 감성을 가지고 있다. 이 성향이 얼마나 조화로우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성이 드러난다. 사람들은 눈과 귀, 촉감을 통해 판단하고 결정한다. 너무도 불확실한 것임에도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생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위에 ...
    Views15093
    Read More
  18. 나빌레라

    딸에게서 톡이 왔다. “아빠, 아빠가 좋아할 듯한 드라마 소개할께요. 나빌레라” 일단 “댕큐”라고 답을 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 드라마를 보았다. 금방 빠져들었다. 주인공 노인이 발레에 도전하는 획기적인 줄거리였다. 연기파 박인환...
    Views15025
    Read More
  19. 시장 인생

    나는 시장 영상을 즐겨본다.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없이 때로는 놀라는 표정으로,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장 분위기를 감상한다. 무엇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서 좋고,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다양한 직종의 시장 사람들이 날마다 똑같은 패턴으...
    Views15704
    Read More
  20. 시각장애인의 아픔

    “버스정류장의 안내 음성이 들리지 않아 버스를 잘못 탄 적이 있습니다. 민원에 따라 소리를 줄이면 시각장애인인 저는 출근을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서울시에 거주하는 제모(32세· 시각1급)씨는 2년 전부터 출근길이 불안하기만 하다. ...
    Views1534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