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4.01.19 18:38

'무’(無)

조회 수 296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한 왕이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무’(無)라고도 하고 ‘영’(靈)이라도 했다. ‘그’라고 부르기는 하겠지만 그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다. 형체도 모양도 없었다. 실제는 그의 이름도 없었다. ‘무’(無)가 이 땅에 온 것이다. 그는 이전에 살았던 어느 누구도 아니고 앞으로 태어날 그 누구와도 달랐다. ‘무’(無)는 아주 독특했고 유일했다. 복사본이 아니고 원본이고, 베스트가 아니고 온리원이었다. 그러나 ‘무’(無)는 자기의 모습을 스스로는 볼 수가 없었다. 자신을 돌보는 사람들의 눈에 비쳐진 모습이 바로 자기인 줄 알고 살게 된다.

 

 무는 정말 운이 없었다. 그를 돌보는 사람들이 소경은 아니었지만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들도 그 안경을 자기들이 쓰고 싶어서 쓴 것은 아니었다. 대개가 ‘무’(無)처럼 그를 키운 사람들이 씌워 준 안경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안경에는 색이 칠해져 있었고 굴절이 있어 제대로 비춰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무’(無)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무’(無)를 자기들이 보는 색깔대로 보고 자기들이 보는 모양대로 보도록 갖은 수단을 통해 길들이고 가르쳤다.

 

 자기들처럼 보는 ‘무’(無)는 사랑을 받고 칭찬을 받았다. ‘무’(無)는 성장하면서 조금씩 깨닫기 시작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내가 진짜 내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보는 것이 일그러져 있고 모자이크된 것이며 색이 칠해져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알게 된다. 그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방황도 한다. 그러자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비난을 한다. 심지어는 “위험하다”고 정죄까지 하고 “미쳤다”고 감금까지 한다.

 

 견디다 못한 ‘무’(無)는 편히 살기로 작정을 한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사는대로 그렇게 살아가기’로 작정을 한다. 같은 색깔의 안경을 맞추어 나간다. 같이 모자이크 된 안경을 찾는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를 보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보는 것과 일치하게 만든다. 그럴수록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퇴근길이나, 저녁노을이 질 때에, 한 밤중에 잠을 깨어 자신의 숨소리를 스스로 들으며 상념에 잠긴다. 병상에 누워 있는 친구를 위로하고 돌아서 나올때면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이게 나인가?’하는 의심이 올라온다. ‘이게 진짜 나의 목소리이고, 이게 진짜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인가?’하는 물음을 되풀이 한다. ‘무’(無)는 그 물음에 답을 못한다. 점점 답답하고 외로워진다.

 

 무엇을 해도 속이 ‘텅’비어 있고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를 않는다. 안개 속을 달려 봐도, 커피를 마셔 보아도 ‘빈 노트’이다. 그때 만난 것이 ‘돈’이고 ‘권력’이고 ‘술’이고 ‘담배’이다. ‘도박’이고 ‘스포츠’이고 ‘화학물질’이고 ‘섹스’이고 ‘일’이다. 이런 것들로 ‘무’(無)는 그 공허감을 채워 간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공허감을 잠시 채워 주는 듯하더니 혼돈은 그 깊이를 더해간다. ‘무’(無)는 강도를 더해 더 많은 돈과 권력과 술과 마약, 일을 찾게 된다. 이젠 이런 것들이 없이는 한시도 살지 못하는 ‘무’(無)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무’(無)의 마음이 고요해지거나 홀로 있게 될 때에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 아주 깊은 데서 들려오는 한 음성이 있었다. “나를 봐주세요. 나를 잊지 말고 제발 나를 기억해 줘. 나를 다시 찾고 기억해줄 사람은 나 밖에 없는데. 내가 나를 잊고 사니 내가 어떻게 되겠어.”

 

 끝내 ‘무’(無)는 자기를 자기의 눈으로 보아주지 못한다. 끝내 ‘무’(無)는 나를 알지 못했다. ‘무’(無)는 술에 취하거나 일을 할 때도 심지어는 그토록 원하는 성공을 하고서도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면서 ‘무’(無)도 다른 사람들처럼 살았다고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그 ‘무’(無)가 당신이다. 나는 원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런데 자라나며 색깔, 냄새, 위치, 별난 옷이 입혀지며 그런 존재인 줄 알고 산다. 찾아야 한다. 나를! 주님은 물으신다.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


  1. 베이비부머

    어느 순간부터 세대를 구별짓는 명칭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사실 이 구분은 미국식이다. 처음 생겨난 세대를 ‘베이비부머’라고 한다. 1955년~1963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칭한다. 1965~1980년에 태어난 부류를 ‘X세대’라고 한다. 관...
    Views12394
    Read More
  2. 남 · 녀는 뇌가 다르다

    태어나면 성별(Gender)을 구분 짓는다. 성장하며 그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남자아이들은 도전과 모험에 사로잡혀 산다. 반면 여아들은 안정과 가꿈에 집착한다. 현저한 차이는 언어영역이다.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탁월한 언어습득 능력을 발휘한다. 남자는...
    Views13294
    Read More
  3. 관중 없는 올림픽

    모두의 염려 속에 개막한 올림픽이 연일 드라마를 연출하며 막을 내렸다. 승리하여 메달을 딴 선수는 인생 최고 환희의 순간을 만끽했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선수는 눈물을 흘리며 일찌감치 짐을 싸야만 했다. 스포츠 매니아라 할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시...
    Views13207
    Read More
  4. 그들의 우정이 빛나는 이유

    한 여고 점심시간, 두 학생이 식당에 들어선다. 한 학생은 휠체어를 타고 있다. “의자 당겨서, 앉아있어.” 한 여학생이 식판 2개를 들고 배식을 받는다. 뇌병변 장애로 두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는 친구 최주희 양을 위해 6년간 학교에서 최 양의...
    Views13452
    Read More
  5. 미안하고 부끄럽고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가고 싶을 때 가는 사람도 없다. 어느날 나는 지구별에 보내졌고 피부 색깔로 인해, 언어, 문화, 생활양식에 의해 분류되어 살아간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은 언제 행복할까? 소통이 잘 될 때이...
    Views13974
    Read More
  6. 사는게 영화다

    어느 시대나 그때그때마다 삶의 버거움을 벗겨주는 스타가 있었다. 요즈음의 대세는 BTS, 레드벨벳이라지만 아날로그 시절에는 고달픈 인생을 위로해 주는 청량음료 같은 스타들이 때마다 등장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스타는 프로레슬러 김일이었다. 어쩌다 경...
    Views13587
    Read More
  7. 징크스

    사람은 누구나 묘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 ‘그렇게 될 것’이라는 신념(?)이 은연중에 생기는 것이다. 바로 징크스이다. 징크스란 ‘불길한 일 또는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운명적인 일’을 뜻한다. 어원은 일반...
    Views14053
    Read More
  8. 이마고(IMAGO)를 아십니까?

    현세에 일어나는 위기는 다양하다. 경제적 공황, 불신, 고립, 이제는 역병까지. 하지만 가장 큰 위기는 가정이다. 가정은 삶의 최전선이다. 가정이 흔들리니 관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고 사회 전반의 구조가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전 세계의 기독...
    Views14283
    Read More
  9. 동병상련(同病相憐)

    나에게는 소중한 제자들이 많이 있다. 철없던 20살, 반사를 하며 가르쳤던 주일학교 아이들부터, 22살 교육전도사가 되어 지도하던 학생들. 26살부터 지도했던 중 · 고등부 청소년들. 그리고 30이 넘으며 지도하던 청년대학부까지 많기도 많다. 하지만...
    Views13914
    Read More
  10. 이사도라

    아직 젊다고 우기면 우길 수도 있는 나이지만 생을 되돌아보면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아련한 추억이 있다.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이 나이가 들수록 실감이 난다. ‘나이 들어감’에 대해 이젠 체념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왜 살...
    Views14374
    Read More
  11. 미나리 & 이민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 환경과 상황에 적응하게 되면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민은 삶의 축을 흔드는 엄청난 결단이다. 일단 이민을 왔으면 이곳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오랜 세월 ...
    Views14119
    Read More
  12. 아름다운 그림

    내 주위에는 효자가 많다. 늙으신 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그들의 효성(孝誠)에 가슴이 저며온다. 만난지 38년 된 박 목사는 그 시대에 최고 인테리 부모 밑에서 교육을 받고 7남매 속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그는 성격이 푸근하다...
    Views14371
    Read More
  13. 사과나무는 심어야 한다

    인생은 앞날이 보장되지 않은 삶을 산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갑자기 생을 마감하는 분들을 보며 그 사실을 실감한다. 정말 시한부 인생이다. 하지만 오늘 해야 할 일을 죽을까봐 안한다면 그것은 비겁하고 무책임하다. “비록 내일 지구의 ...
    Views14387
    Read More
  14. 그 만남이 내 수준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만남으로 생이 이어진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다. 같거나 비슷한 부류끼리 어울리는 것을 뜻한다.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어쩌면 그런그런 아이들끼리 그렇게 어우러지는 것을 보았다. 대화의 수준도 그랬다. 그래서 부모...
    Views14822
    Read More
  15. 개똥 같은 인생?

    요즈음 아이들은 스타가 되고 싶어한다. 마침 불어닥친 한류열풍으로 한낮 꿈이 아닌 인기와 돈이 동시에 보장된 그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예술을 하면 배가 고팠다. 하지만 진정성은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표출되었다. 가슴을 파고드는 노래, ...
    Views131417
    Read More
  16. 그냥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셨다. 반가웠다. 그러다가 꿈속에서도 스스로 되뇌였다. ‘엄마는 돌아가셨는데…’ 번뜩 잠이 깬 내 귀에 창문을 두드리는 봄비 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나는 평생 그분을 “엄마”라고 불렀다. 한번도 &lsq...
    Views14962
    Read More
  17.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케이크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케이크. ‘I ♡ YOU’! 빨간 초가 인상적인 이 케이크는 내로라하는 파티쉐가 만든 것보다 더 먹음직스럽고 아름답다. 그리 화려하지 않지만 남다른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케이크를 만든 주인공은 ...
    Views14460
    Read More
  18.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인생이 가볍다는 말은 없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를수록 생의 무게는 버겁기 그지없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이 마냥 즐거웠다. 어쩌다 먹는 짜장면, 별것도 아닌 음식이 우리를 흥분시켰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은 항상 정겨웠다. 저녁을 든든히 먹은 후 ...
    Views16805
    Read More
  19. 영혼의 서재를 거닐다

    사람은 누구나 지성, 이성, 감성을 가지고 있다. 이 성향이 얼마나 조화로우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성이 드러난다. 사람들은 눈과 귀, 촉감을 통해 판단하고 결정한다. 너무도 불확실한 것임에도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생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위에 ...
    Views15454
    Read More
  20. 나빌레라

    딸에게서 톡이 왔다. “아빠, 아빠가 좋아할 듯한 드라마 소개할께요. 나빌레라” 일단 “댕큐”라고 답을 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 드라마를 보았다. 금방 빠져들었다. 주인공 노인이 발레에 도전하는 획기적인 줄거리였다. 연기파 박인환...
    Views15391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