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4.01.19 18:38

'무’(無)

조회 수 295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한 왕이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무’(無)라고도 하고 ‘영’(靈)이라도 했다. ‘그’라고 부르기는 하겠지만 그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다. 형체도 모양도 없었다. 실제는 그의 이름도 없었다. ‘무’(無)가 이 땅에 온 것이다. 그는 이전에 살았던 어느 누구도 아니고 앞으로 태어날 그 누구와도 달랐다. ‘무’(無)는 아주 독특했고 유일했다. 복사본이 아니고 원본이고, 베스트가 아니고 온리원이었다. 그러나 ‘무’(無)는 자기의 모습을 스스로는 볼 수가 없었다. 자신을 돌보는 사람들의 눈에 비쳐진 모습이 바로 자기인 줄 알고 살게 된다.

 

 무는 정말 운이 없었다. 그를 돌보는 사람들이 소경은 아니었지만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들도 그 안경을 자기들이 쓰고 싶어서 쓴 것은 아니었다. 대개가 ‘무’(無)처럼 그를 키운 사람들이 씌워 준 안경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안경에는 색이 칠해져 있었고 굴절이 있어 제대로 비춰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무’(無)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무’(無)를 자기들이 보는 색깔대로 보고 자기들이 보는 모양대로 보도록 갖은 수단을 통해 길들이고 가르쳤다.

 

 자기들처럼 보는 ‘무’(無)는 사랑을 받고 칭찬을 받았다. ‘무’(無)는 성장하면서 조금씩 깨닫기 시작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내가 진짜 내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보는 것이 일그러져 있고 모자이크된 것이며 색이 칠해져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알게 된다. 그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방황도 한다. 그러자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비난을 한다. 심지어는 “위험하다”고 정죄까지 하고 “미쳤다”고 감금까지 한다.

 

 견디다 못한 ‘무’(無)는 편히 살기로 작정을 한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사는대로 그렇게 살아가기’로 작정을 한다. 같은 색깔의 안경을 맞추어 나간다. 같이 모자이크 된 안경을 찾는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를 보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보는 것과 일치하게 만든다. 그럴수록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퇴근길이나, 저녁노을이 질 때에, 한 밤중에 잠을 깨어 자신의 숨소리를 스스로 들으며 상념에 잠긴다. 병상에 누워 있는 친구를 위로하고 돌아서 나올때면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이게 나인가?’하는 의심이 올라온다. ‘이게 진짜 나의 목소리이고, 이게 진짜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인가?’하는 물음을 되풀이 한다. ‘무’(無)는 그 물음에 답을 못한다. 점점 답답하고 외로워진다.

 

 무엇을 해도 속이 ‘텅’비어 있고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를 않는다. 안개 속을 달려 봐도, 커피를 마셔 보아도 ‘빈 노트’이다. 그때 만난 것이 ‘돈’이고 ‘권력’이고 ‘술’이고 ‘담배’이다. ‘도박’이고 ‘스포츠’이고 ‘화학물질’이고 ‘섹스’이고 ‘일’이다. 이런 것들로 ‘무’(無)는 그 공허감을 채워 간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공허감을 잠시 채워 주는 듯하더니 혼돈은 그 깊이를 더해간다. ‘무’(無)는 강도를 더해 더 많은 돈과 권력과 술과 마약, 일을 찾게 된다. 이젠 이런 것들이 없이는 한시도 살지 못하는 ‘무’(無)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무’(無)의 마음이 고요해지거나 홀로 있게 될 때에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 아주 깊은 데서 들려오는 한 음성이 있었다. “나를 봐주세요. 나를 잊지 말고 제발 나를 기억해 줘. 나를 다시 찾고 기억해줄 사람은 나 밖에 없는데. 내가 나를 잊고 사니 내가 어떻게 되겠어.”

 

 끝내 ‘무’(無)는 자기를 자기의 눈으로 보아주지 못한다. 끝내 ‘무’(無)는 나를 알지 못했다. ‘무’(無)는 술에 취하거나 일을 할 때도 심지어는 그토록 원하는 성공을 하고서도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면서 ‘무’(無)도 다른 사람들처럼 살았다고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그 ‘무’(無)가 당신이다. 나는 원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런데 자라나며 색깔, 냄새, 위치, 별난 옷이 입혀지며 그런 존재인 줄 알고 산다. 찾아야 한다. 나를! 주님은 물으신다.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


  1. 시장 인생

    나는 시장 영상을 즐겨본다.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없이 때로는 놀라는 표정으로,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장 분위기를 감상한다. 무엇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서 좋고,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다양한 직종의 시장 사람들이 날마다 똑같은 패턴으...
    Views16023
    Read More
  2. 시각장애인의 아픔

    “버스정류장의 안내 음성이 들리지 않아 버스를 잘못 탄 적이 있습니다. 민원에 따라 소리를 줄이면 시각장애인인 저는 출근을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서울시에 거주하는 제모(32세· 시각1급)씨는 2년 전부터 출근길이 불안하기만 하다. ...
    Views15677
    Read More
  3. 습관

    사람은 누구나 독특한 습관이 있다. “피는 못 속인다”고. 대를 이어 가는 습관도 있다. 알코올에 찌들어 살던 아버지로부터 그렇게 상처를 받고 살았으면서 그 추한 모습을 대물림한다. 도박에 빠진 아버지를 그렇게 증오하던 자식이 여전히 그 ...
    Views15062
    Read More
  4. 아무리 익숙해 지려해도 거절은 아파요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으로 이어진다. 반복되면 능숙해지기도 하련만 고비를 넘어서면 더 높은 능선이 길을 막는다. 그 과정을 거치며 때로는 성취감에 행복해하기도 하지만 실패의 아픔을 겪으며 뒹굴어야만 한다. 거절과 실패는 익숙해질 수 없는 끈질긴 친...
    Views277705
    Read More
  5.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세월

    세월의 흐름은 두려울 정도로 빠르다. 팬데믹에도 한해가 바뀌고 또다시 봄기운이 움트고 있다. 눈과 강풍, 날마다 번져가는 역병. 살면서 이렇게 답답하고 곤고한 때가 있었을까? 초반에는 당황함으로, 시간이 지나며 현실을 받아들이며 체념하다가도 희망의...
    Views16210
    Read More
  6. 장애의 벽 넘어 빛나는 졸업장

    한국은 바야흐로 졸업시즌이다. 하지만 금년은 COVID-19 여파로 빛이 바랬다. 4년의 학업을 마치고 졸업하는 모습은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의 눈에도 귀해 보이거니와 스스로도 커다란 성취감을 맛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험난한 시국을 만나 영상으로...
    Views16649
    Read More
  7. 저만치 다가오는 그해 겨울

    눈이 온다. 근래 큰 눈이 오지 않아 푸근한 겨울을 꿈꾸었건만 2월에 접어들며 벼르기라도 한 듯 폭설이 일주일 간격으로 퍼붓고 있다. 나는 처음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왔다. 낯선 미국 땅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 희미하게 잊혀졌던 사람을 먼 미국 땅에...
    Views16834
    Read More
  8. 금수저의 수난

    지난 2월 5일. 변창흠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 당사자로 나서게 되었다. 김희국 의원이 물었다. “지금 버스 · 택시 요금이 얼마입니까?” 장관이 즉각 답변을 못하면서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나중에는 “카...
    Views16610
    Read More
  9. 아내 말만 들으면

    우리 세대는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아버지의 존재는 실로 무소불위였다. 가정 경제의 키를 거머쥐고 모든 결정을 아버지가 내렸다. 엄마는 뒤에서 뭔가 궁시렁거릴 뿐 그 권세 앞에 아무 힘도 쓰질 못했다. 그 기세가 아들인 우리들에게도 이어질 줄...
    Views15741
    Read More
  10. 다리없는 모델 지망생 “구이위나”

    사람이 위대한 것은 어떤 장벽도 넘어설 수 있음을 꿈꾸며 도전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가 있다. 불가능한 일은 아예 엄두도 내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탓하며 주저앉는...
    Views15978
    Read More
  11. 삶은 소중한 선물

    신년벽두 아가 ‘정인’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천진난만한 미소로 재롱을 부리는 아가의 모습, 겨우 18개월밖에 살지 못하고 떠나간 생명을 보며 세상이 얼마나 악해졌는가를 실감했고 그렇게 태어나 떠나가는 아이들이 더 있...
    Views16960
    Read More
  12. 나만 몰랐다

    “김치만 먹는 개”라는 영상을 보았다. 개는 늑대의 후손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먹고 남은 찌꺼기를, 이제는 사료를 먹지만 개는 사실 육식동물이다. 그런데 이 개는 김치만 먹는다. 그것도 아주 매운 김치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그 이유가...
    Views17164
    Read More
  13. 군불

    새벽녘에 잠이 깨었다. 무서운 꿈을 꾼 것도 아닌데 갑자기 단잠이 달아나 버렸다. 추적거리며 내리는 겨울비가 금방 잠이 깬 내 의식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불현듯 고향 사랑방 아궁이가 화면처럼 다가왔다. 어린 시절, 나는 방학만 하면 고향으로 향했다. ...
    Views16881
    Read More
  14. 시간을 “먹는다”와 “늙는다”

    새해가 밝은지 8일 째다. 비상시국이기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림으로 새해맞이를 하였다. 이럴때는 내가 목사라는 것에 자긍심을 느낀다. 성찬식도 거행했다. “지난 한해동안 성찬을 전혀 대하지 못했다.”는 딸의 말이 마음에 걸렸...
    Views16424
    Read More
  15. 2021년 첫칼럼 / 마라에서 엘림으로!

    새해가 밝았다. 듣도 보도 못한 역병이 창궐하며 지난해는 암흑으로 물들여졌었다. 사람들은 물론이요, 어느 장소, 물건을 가까이 할 수 없는 희한한 세월을 보냈다.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를 절박한 상황이 새해라는 희망...
    Views17233
    Read More
  16. 세월은 쉬어가지 않는다

    나는 어린 시절 남한강 줄기에서 자랐다. 강은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과 느낌을 달리한다. 언덕 위에서 볼 때는 마냥 푸르고 잔잔해 보이지만 모래사장에 내려서면 잔잔히 출렁이는 물결이 건너편을 저만치 밀어낸다. 물가에서 보면 만만해 보이지만 일단 몸...
    Views16532
    Read More
  17. 테스형

    지난 추석 KBS는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라는 야심 찬 기획을 세운다. 무려 11년 동안 소식이 없던 그가 다시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이슈였다. 이혼과 조폭 연루설로 인해 힘들어하던 시기 대중 앞에서 “바지를 내리겠다”고 외치며 ...
    Views16728
    Read More
  18. It is not your fault!

    인생이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평생 그렇게 바쁘게 돌아치며 살고 있을까? 분명히 뭔가 잡으려고 그렇게 달려가는데 나중에는 ‘허무’라는 종착역에 다다르게 되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것을 원 없이 누렸던 솔로몬은 유언처럼 남긴 전도서에서 ...
    Views16942
    Read More
  19. 지연이의 효심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당사자도 고통스럽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사는 가족들의 아픔은 말로 표현이 안된다. 우연히 마트에서 손에 약봉지를 든 지인과 마주쳤다. “누가 아파요?” “제 아내가 루게릭병으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
    Views17454
    Read More
  20. 1회용

    바야흐로 1회용품이 상용화된 시대이다. 컵부터 시작하여 세면용품, 밴드, 도시락, 가운, 렌즈, 면도기, 카메라, 기저귀, 주사기, 다양한 모양의 그릇까지 요즘에는 일회용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없다. 실로 1회용품 홍수시대이다. 1회용품 중에는 한번 쓰고 ...
    Views1765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